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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요정에서 아시아의 디바(Diva)로…가수 바다의 도전은 계속된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6.04.16 08:00
가수 바다는 한국 음악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아이돌 가수로 평가받는 스타다. 원조 아이돌 요정에서 뮤지컬 배우로 눈부신 성공을 거둔 그녀는 최근 중국 진출 후 아시아의 아이콘으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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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는 긍정적인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가수와 뮤지컬에 이어 예능프로그램에도 도전했다. [사진 JTBC]

한국 1세대 ‘원조요정’ ‘S.E.S’의 리드보컬 출신인 바다의 고향인 남녁에선 매년 4월이 되면 동네 어귀마다 연분홍 빛 복사꽃이 넘치게 피어났다. 창(唱)을 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틈만 나면 저 멀리 잔 섬들을 오가며 물방개질을 쳤다. “아버지는 거침없는 자연인이었어요. 편찮으셨다가도 물질 한번이면 생기를 되찾곤 하셨죠. 그 특별한 회복 탄력성을 제가 그대로 물려받았어요.”

열세 살이 될 무렵 가족과 함께 서해 바다 소래포구로 터전을 옮겼다. 한국의 ‘칠레’인양 시퍼런 포도밭이 펼쳐진 이곳에서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은 늘 바다 앞에서 구슬픈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춤을 추기도 하는 그녀를 ‘바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특별한 독립성과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이 무렵 형성됐다.

S.E.S 활동 당시 직접 쓴 가사에서 10대 소녀답지 않게 어떤 ‘비극의 감성’을 표현했는데, 어떻게 그런 가사를 쓸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일곱 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 친구 분인 시인 구자룡 선생님 댁에 자주 갔어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마당을 지나면 저 먼발치 하늘에서 노오란 햇볕이 쏟아졌어요. 두 분이 담소 나누는 동안 옆방 서재에서 온갖 시집을 다 접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때부터 글을 끄적이며 쓰게 됐던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게 저한텐 하나의 놀이였죠.
 
바다 앞에서 노래 부르던 소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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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바다는 JTBC <마녀사냥>에 출연해 솔직한 입담으로 시청률을 크게 올려놓았다.

바다의 데뷔 과정은 극적이다. 1996년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남자 아이돌그룹 ‘H.O.T’가 국내에서 초대박 성공을 거두자 세계적인 여자 아이돌그룹 결성을 추진한다. 1년 동안이나 전국을 돌며 가수지망생들을 샅샅이 뒤진 끝에 발견한 소녀가 바로 바다(본명 최성희)였다. 하지만 안앙예고 2학년생이었던 바다는 자신의 꿈이 아이돌보다는 ‘진짜 가수’라며 거대기획사의 ‘러브콜’을 단칼에 거절한다. 이 대표는 “언젠가 하고 싶은 음악을 꼭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삼고초려한 끝에 바다를 발탁할 수 있었다. 바다는 가수로 데뷔한 첫 주에 1위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S.E.S는 한국음악사에서 가장 앨범을 많이 판 여성그룹으로 기록돼 있다. S.E.S는 2002년 5집 앨범을 끝으로 해체됐다.

대형 기획사를 나와 홀로서기 해야 했을 때 두렵지 않았나?

저는 대형 기획사 안에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어요. 이수만 선생님은 저한테 은인과 같은 분이었고요. 안정된 환경이 제공돼서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편함이 내 자신을 부패시키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죠. 그래서 홀로서기에 도전하게 됐어요.

하지만 솔로 시절 반응은 S.E.S 시절보다 뜨겁진 않았다. 동년배의 다른 가수가 신드롬 격 인기를 구가했을 때 초조하진 않았는지.

무대 밑에서 관조하면서 얻는 깨달음이 있거든요. 자기 차례가 오기 전까지는 누구나 객석에 있는 거예요. 내 차례가 됐을 때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내 차례가 끝나면 다시 관객석에 내려와서 박수도 치는 거고요.

솔로 활동을 하면서 뮤지컬 창작극 <페퍼민트>에 출연하게 돼요. 갑자기 뮤지컬은 왜 시도했나요?

뮤지컬은 제가 원래 꿈꾸던 길이었고 여기에 도전했을 때도 ‘어렵더라도 포기 않고 늘 성장하는 모습을 후배에게 보여주자’ 그런 마음가짐이 있었죠. 문제는 그렇게 되기까지 가시덤불과도 같은 길을 걸어야만 했어요. 당시 아이돌 가수가 뮤지컬에 도전하는 경우는 없었거든요. (옥)주현이도 없었고, 아이비도 없었죠. 제가 처음이었어요.

바다는 뮤지컬에 도전한지 5년 만에 제3회 뮤지컬 어워즈에서 <노트르담드파리>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고등학교 1학 때까지 수녀가 될 준비를 했던 소녀는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 여주인공 ‘에스메랄다’를 접하고 어떤 운명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저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어요. 성당 앞에서 춤을 추는 여자라니, 딱 저잖아요.(웃음)”

바다는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는 긍정적인 도전”이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도전을 계속하면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있는 확률은 높아 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그녀는 뮤지컬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에도 도전했다.
 
JTBC <뉴스룸>에도 출연하고 싶어
JTBC <마녀사냥>에 출연해 솔직한 입담으로 시청률을 크게 올려놓았어요. 사생활을 털어놓으면서도 망가지지 않는 균형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아요.

‘나는 육감이 아니라 천감이 열리는 여자’, ‘남자친구에게 돈 빌려준 적 있다’는 말로 시선을 받은 건 맞아요.(웃음) 연예인이라면 적당한 선까지는 대중에게 보여드려야 해요.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반드시 솔직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만이 비로소 진정한 교감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JTBC 프로그램 중에 출연해 보고픈 작품이 있나요?

손석희 사장님을 만나보고 싶어요. <뉴스룸>에 출연하게 되면 <마녀사냥> 때보다 더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

바다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바다는 바다 건너 중국에 진출해 제 2의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지난 1월 중국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인기 음악프로그램 <마이왕정빠>에 한국 가수로는 처음 출연해 최종 2위를 차지했다.

음악은 바다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은 언제나 저를 특별하게 만들어줬어요. 음악은 제게 고향이고 친구죠. 예쁜 옷이면서 빛나는 유리구두이기도 해요.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쳐다봐주죠. 그렇게 음악이 있는 한 저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하늘에 별을 보면 변덕 없이 은은하게 빛나잖아요. 가장 사랑 받는 별 ‘북두칠성’도 늘 한결 같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공손하게 빛을 내고 있어요. 저는 그런 대중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래도 살면서 분명 힘든 일도 또다시 생길 텐데요.

힘든 일은 언제나 생길 수 있죠. 하지만 자기 환경은 자신이 만드는 거잖아요.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에서 이런 말이 나와요. ‘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결국 삶의 아름다움은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거죠.

- 글 김포그니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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