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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네티즌 ‘입방아’ 앞에선 모두가 평등…대통령도 가십의 단골 소재

중앙일보 2016.04.16 00:18 종합 17면 지면보기
담배회사가 화났단다. 소주병은 예쁜 연예인들의 사진을 붙여 사랑을 받는데 담뱃갑에는 폐암 사진과 후두암 사진을 붙여 혐오하게 한다고. 생각해보면 바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이처럼 상황·조건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이중 잣대. 많이 보아왔다. 담배만이 아니다. 비슷한 이야기는 음주에 대해서도 있었다. 다른 범죄는 술에 취해 저지르면 심신미약 어쩌고 하면서 관대히 처벌하고 음주운전은 왜 가혹하게 처벌하느냐고.

인터넷 용어 중에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줄인 것인데 무엇이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자신에겐 관대한 인간 심리를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황에 따라 바뀌는, 이중적인 태도를 조롱하는 의미도 있다. 영화 제목에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감독 홍상수·2015)가 있다. 인터넷에는 이런 모순을 지적하는 글이 많다. 그런데 이런 항의, 즉 지배적 주장의 논리적 모순을 따질 수 있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과거 ‘말할 수 있는 권리’란 바로 권력을 뜻했다. 왕이 장황하게 생각을 말하면 신하들은 엎드려 듣다가 “황공하옵니다”고 읊조려야 했다. 장군이 전쟁에 목숨을 바쳐야 할 갖은 이유를 설명하면 부하들이 할 수 있는 말이란 “와”하고 외마디 함성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간혹 위와 다른 뜻을 갖고 ‘아니되옵니다’를 말하려면 도끼를 곁에 두고 “내가 틀리면 목을 치라”는 지부(持斧)상소를 해야 했으니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항의, 즉 ‘평등하게 말하기’란 쉽지 않았다.

인터넷의 등장은 이 말의 권력관계를 해체했다.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으면 ‘말’을 할 수 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메시지는 인터넷 네트워크에서 평등하게 전달된다. 인터넷은 이더넷(Ethernet)이라는 네트워크 기술규격을 이용하는데, 이더넷이란 빛을 전달한다고 여겨졌던 가상의 물질 에테르(ether)에서 온 말이다.

말할 수 있는 권리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대상도 평등해졌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재벌, 연예인, 의사, 검사 등 그들의 사회적 서열과 위계가 어떻게 되든 네티즌의 입방아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재료다. 적어도 인터넷 가십 분야에서 현대 권력은 이미 수평 사회가 된 듯하다.

요즘엔 우리나라를 벗어나 힐러리 클린턴, 버니 샌더스, 도널드 트럼프 같은 미국 대통령 경선 후보도 자주 언급된다. 한때 마초적 스타일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망언으로 악명 높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등 전·현직 일본 총리도 가십의 단골 소재였다. 요즘엔 아랍에미리트의 정치인이자 억만장자인 만수르 맨체스터시티 FC 구단주도 관심 대상이다. 연예인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국내는 ‘설현공화국’, 중국 등 해외에서도 ‘송중기 상사병’ 같은 단어가 인터넷을 덮었다.

유명인에 대한 관심과 사생활에 대한 잡담은 인간의 진화적 본능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리더십을 연구한 『빅맨(selected)』(저자 마크 판 퓌흐트, 안자나 아후자·2011년)이라는 책은 원시사회에서 인류가 ‘권력자에게 맞서기 위한 전략’으로 5가지를 발전시켰다고 본다. 그중 첫 번째 방법이 바로 험담과 소문내기다. 권력자의 비열한 행동이나 나쁜 성생활을 퍼뜨려 평판을 떨어뜨리고 결국 권력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의 스캔들에 관심 쏟고 가십을 말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인 셈이다.

인터넷의 잡담은 왕후장상이 펼치는 화려한 권력의 언어도 아니고, 고상한 선비와 재능 있는 예술가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권력자를 물고 뜯고 싸우며 토론을 익힌다. 유명인을 관찰하고 모순된 논리를 따지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끊임없이 살핀다. 수만 년 전 우리 조상이 원시시대부터 각인시켜 온 본능. ‘지배하기를 원하지만,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모두가 평등하기를 원한다’(인류학자 해롤드 슈나이더)가 인터넷에서 발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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