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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100년 전 케인스의 통찰 “평화는 비싸다”

중앙일보 2016.04.16 00:02 종합 1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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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경제적 결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72쪽, 1만5000원

자본주의가 태동한 18세기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가 등장했다 사라졌다. 하지만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여전히 건재하다. 1930년대 미 대공황부터 최근 금융위기까지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역할 확대라는 케인스의 경제정책이 가장 효과 빠른 위기 처방전으로 꼽히고 있어서다.

이런 생명력은 거시적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본 케인스의 철학적 패러다임에서 비롯된다. 이게 무슨 얘기인지는 1919년 발표와 동시에 케인스를 일약 세계적인 거시 경제학자로 데뷔시킨 『평화의 경제적 결과』의 집필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해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린 파리평화회의에서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 협상단은 독일에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영국 대표단으로 참석한 케인스는 독일 응징에 초점을 맞춘 베르사유조약은 지속 가능한 평화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보고 현실적인 대안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케인스가 모든 자리에서 물러난 뒤 그의 연구실이 있던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2개월만에 내놓은 게 이 책이다. 그는 연합군의 방식대로는 평화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주장을 폈다.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하나의 체계로 움직이던 유럽에서 독일 경제가 초토화되면 유럽 경제가 붕괴될 것이란 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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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강화회의에서 케인즈 의견이 반영됐다면 유럽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사진 부글북스]


케인스가 구상한 평화조약의 기본 정신은 관용이었다. 이를 위해 연합국 간에 부채를 서로 탕감해주고 독일에 부과한 배상금 330억 달러(1320억 마르크)를 100억 달러 이하로 감축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평화의 비용을 지불하자는 얘기였다. 응징의 기운이 충만하던 때여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이 책은 출간 6개월 만에 12개 언어로 번역돼 10만권이나 팔려나가는 베스트 셀러가 됐다.

하지만 케인스의 주장은 응징이라는 정치 논리에 밀려 파묻히고 말았다. 케인스는 이를 지켜보면서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불행하게도 정치적 고려가 경제적 고려를 방해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케인스의 예상대로 프랑스와 독일은 끊임없이 배상금 문제로 티격태격했다. 독일에선 민족주의가 불타올랐고 아돌프 히틀러가 베르사유조약을 비판하면서 나치 정권을 앞세워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다시 단죄할 때 나온 ‘마셜 플랜’은 케인스가 제안한 내용과 매우 비슷해졌다. 1세기 전 케인스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에게 평화는 거저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어서다. 한국은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거액의 국방비를 치르고 강대국 틈에 끼여 어려운 외교적 결단을 내릴 때가 많다. 이 때 평화 유지 비용이 과하다 생각되면 케인스의 평화관(觀)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제 파워 꿰뚫어 본 케인스

케인스 하면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 떠오르지만 그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면 이보다 17년 앞서 나온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일독해볼 필요가 있다. 케인스는 이 책에서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경제 전체를 분석했다. 경제에 중요한 변수가 되는 인구 증가와 재정·무역 상황을 모두 살폈다. 케인스는 이런 거시적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봤기 때문에 유럽에서 차지하는 독일의 역할을 꿰뚫었다.

독일은 당시 급격한 산업화의 결과로 이미 유럽 경제의 핵심 엔진이 돼 있었다. 따라서 독일 경제를 거세하면 주변국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을 케인스는 이해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도 독일은 유럽 경제의 견인차로 자리잡고 있다. 독일이 내린 결정에 따라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같은 재정 취약국의 경제 운명이 왔다갔다할 정도다. 100년 전 케인스의 안목이 경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동호 논설위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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