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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년 만의 한 표, 5일 더 기다리기 힘들어 사전투표했죠”

중앙일보 2016.04.12 03:02 종합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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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운암동 엠마우스복지관에 마련된 4·13총선 사전투표소에서 지난 8일 천노엘 신부가 투표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사진 엠마우스 복지관]

“59년을 기다려 온 일이지만 5일을 더 기다리기 힘들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투표장으로 갔죠.”

2월 특별귀화 84세 천노엘 신부
아일랜드 선교사로 한국 땅 밟아
광주서 장애인 돕는 그룹홈 운영
자신이 세운 복지관이 사전투표소

“정치인 욕할 때마다 찜찜했는데
투표했으니 이젠 맘 놓고 해야죠”

4·13 총선 사전투표일 첫날이었던 지난 8일은 천노엘(본명 오닐 패트릭 노엘·84) 신부에게 잊지 못할 날이 됐다. 그는 이날 처음으로 한국 선거에 ‘한 표’를 던졌다.

아일랜드 출신인 천 신부는 지난 2월 법무부로부터 특별귀화 허가를 받아 한국인이 됐다. 그가 선거권을 행사한 것은 1957년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지 59년 만의 일이다.

천 신부는 ‘그룹홈(장애인의 사회 적응을 위해 장애인·봉사자가 어울려 사는 집)’ 제도를 한국에 도입했다. 광주광역시에서 81년부터 그룹홈과 복지관, 일터를 마련해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돕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자립을 이끈 장애인은 1000여 명이다. 그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상(2011년)·청암봉사상(2014년) 등을 받았다. 그는 현재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천 신부가 87년에 광주시 운암동에 세운 엠마우스복지관은 이번 총선에서 사전투표소로 지정됐다. 장애인 시설의 특성상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였다. 천 신부는 “투표하고 싶은 맘을 하늘이 알았는지 내가 수시로 드나드는 곳에서 투표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천 신부는 장애인 복지 정책을 내놓는 정당과 소수자를 배려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기 위해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읽었다고 했다. “장애인들은 제대로 선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데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도 서툽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일반인들이 도와야 합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선교사로 활동했던 신학교 선배의 체험담을 듣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에 희망을 심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한국에 왔다. 전라남도 장성의 한 성당에 보좌신부로 부임했다. 이후 해남·광주 등으로 옮겨 다녔다. 외부 활동보다는 일반적인 사목(司牧)에 충실했다.

장애인을 돕는 일은 79년 광주 무등갱생원에서의 봉사활동을 계기로 시작했다. 그곳에서 천 신부는 열아홉 살 소녀 ‘요아’의 죽음을 접했다. 요아는 발달장애를 겪다가 꽃다운 나이에 급성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병원 측은 연고가 없는 요아의 장례비용을 모두 낼 테니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증해 달라고 했다. 그는 ‘살아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죽어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며 막아섰다. 이후 요아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장애인 관련 일을 해왔다.

그는 ‘한 표’가 절실했던 이유를 설명하며 5·18 민주화운동 때의 얘기도 꺼냈다. 광주 농성동 성당의 주임신부였던 그는 금남로에 나갔다가 시민들이 군홧발에 짓밟히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시민군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집집마다 돌며 부상자들을 돌봤다. 그러다 “외국인이 왜 쓸데없이 남의 나라 일에 참견이냐”는 말을 들었다. 그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진짜 한국인이라는 것을 그때 절감했다”고 말했다.

천 신부는 “국민으로서 투표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라면서 투표율을 걱정했다. 그는 “지난 19대 총선 투표율이 54%였는데 너무 낮은 것 아니냐”며 “이번 총선에선 투표율이 60%를 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투표를 마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정치인들 욕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찜찜한 게 있었는데 이제는 투표도 했으니 맘 놓고 해도 되겠죠?”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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