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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보는지 겉으론 몰라···교실서 'VR 우동' 돌려보는 학생들

중앙일보 2016.04.12 02:37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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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 A고교의 이모(34) 교사는 지난 4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점심시간에 2학년 교실에서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헤드셋을 얼굴 앞쪽으로 쓴 남학생 주위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교실이 소란스러워져 학생들에게 주의를 준 뒤 헤드셋 안을 봤다. 낯 뜨거운 음란물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는 헤드셋을 압수했다. 이 교사는 “성인 만화책이나 잡지를 갖고 있는 학생은 종종 있었지만 가상현실 음란물을 적발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한 편에 100~200원 온라인 거래
“애니메이션 내려받는 것만큼 쉬워”
VR 기기와 음란물 끼워팔기도

청소년들 자극적 영상에 취약
“건전한 활용 위한 교육 필요해”


서울 상도동에 사는 고교 1년생 박모(16)군은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야동(야한 동영상)’은 ‘우동’이다”고 말했다. ‘우동’은 네티즌이 만든 은어로 VR 포르노그래피를 뜻한다. 음식 이름과 표기가 같아 유해 검색어나 성인 인증을 받아야 검색할 수 있는 단어로 지정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박군은 “컴퓨터 모니터로 음란물을 보는 것과 달리 헤드셋을 착용하면 집의 거실에서도 가족에게 들킬 위험이 없다. 헤드셋을 공유해 우동을 돌려 보는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VR 포르노’가 청소년 사이에서 은밀하게 확산되고 있다. VR 포르노란 스마트폰을 VR 헤드셋에 결합해 시청하는 가상현실 음란물을 말한다. 국내의 파일공유(P2P) 사이트 세 곳을 11일에 살펴보니 VR 포르노가 수백 건씩 올라와 있었다. 30분 분량의 음란물이 100~2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음란물을 무료로 배포하거나 콘텐트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도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 사이트들은 대부분 성인인증 절차 없이 청소년도 쉽게 가입할 수 있다. 인천시 부평구의 B고교 1학년 임모(16)군은 “사이트에서 VR 음란물을 시청하는 것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내려받는 것만큼 쉽다”고 말했다.

청소년 이용자가 많은 한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엔 VR 기기와 음란물을 ‘끼워팔기’하는 판매자들까지 등장했다. 한 판매자는 “VR 포르노 64기가바이트(GB)를 첨부하고 성인 사이트 이용법을 A4용지에 자세히 정리했다”며 음란물과 자체 제작한 인쇄물을 기기에 얹어 팔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3만∼12만원의 VR 헤드셋이 많이 팔리고 있다.

최근 VR 포르노 유통이 급증한 것은 해외의 유명 성인 콘텐트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VR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방문 횟수만 연간 160억 건에 달하는 미국의 한 성인사이트는 지난달 25일 무료 VR 채널을 만들어 동영상을 배포하고 있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초기 인터넷 보급 때 음란물 유통이 봇물을 이뤘듯이 VR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빚어질 것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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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VR 포르노 확산이 청소년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의 뇌는 성인의 뇌보다 시각 중추자극에 민감하다. 또 충동을 억제하는 전두엽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VR 같은 적나라한 영상을 보고 강한 성적 충동에 휩싸일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음란물은 청소년들의 정서 발달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불안감도 커간다. 시민단체 ‘학부모정보감시단’의 이경화 대표는 “교육부와 일선 학교에서 VR 기기의 건전한 활용 지침을 마련하고 음란물의 해악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 2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교육적 활용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교에서 VR 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칙을 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과 관계자는 “VR 음란물을 유포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모니터링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차단을 건의할 계획이다. VR 음란물 판매·유포는 원칙적으로 처벌 대상이다”고 말했다.

손국희·백수진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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