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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웅의 오! 마이 미디어] 선거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공표금지,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중앙일보 2016.04.12 02:06 종합 20면 지면보기
새누리당은 과연 의석수 과반을 얻을까?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의 광주 방문으로 호남 민심을 돌렸나? 도대체 서울 노원병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우리는 대답은커녕 짐작도 할 수 없다. 믿을 만한 여론조사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온갖 억측과 소문이 난무한다. 유권자는 자신의 한 표가 어느 정도 가치를 갖는지 가늠하지 못한 채 투표소에 가야 한다.

우리 선거법은 선거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보도할 수 없게 금지한다. 루마니아·페루·베네수엘라 수준이다. 홍콩대학의 한 학자가 2012년 조사해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표금지 기간이 7일 이상인 나라가 전체 조사 대상 85개국 중 17개였다. 이 문제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와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저개발국이며 민주주의에 대해 별로 배울 것이 없는 나라들이다.

프랑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선거 전 일주일간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97년 주요 신문사가 조사 결과를 스위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우회해 발표하자 금지조항은 유명무실해 버렸다. 2001년 프랑스 최고법원인 파기원은 여론조사 공표금지 조항이 유럽인권협약 제10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의 문제점은 잘 알려져 있다. 유권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데 필수적인 정치적 의견 형성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여론조사를 수행한 조사회사나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 이 때문에 정치인이 시민의 정치적 의지를 왜곡하거나 무시하기도 쉽다.

혹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조사 과정도 의심스럽고 결과도 엉터리 같은 여론조사를 알고 말고 할 권리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내가 보기에 이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본 것이다. 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기에 의심스러운 조사가 난무하고, 결과에 대한 검증이 부실한 까닭에 엉터리 여론조사를 퇴출시키지 못했다.

선거 여론조사는 사후에 정답을 맞춰볼 수 있는 유일한 조사다. 따라서 방법론을 검토해 개선할 수 있는 조사다. 특히 선거 직전에 표심을 굳히고 투표장에 갈지 결정한 유권자를 대상으로 제대로 수행한 여론조사는 자료적 가치가 높다. 최근 미국과 영국 같은 언론 선진국에서 선거보도가 체계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이뤄지는 이유는 여론조사 자료를 활용한 ‘자료 기반 저널리즘’이 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선거 여론조사를 믿을 수 있니 없니 하며 논란을 벌이는 수준이다. 착신전환, 할당위반, 거짓 응답률이 난무한다. 안심번호를 도입하고도 안심하지 못한다.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현행 제도 아래서 누가 이익을 보는지 따져보자. 내가 보기에 후보 지지율과 관련한 흑색선전을 동원해 표심을 유린하는 정치인이 가장 좋다. 자료적 근거도 없이 신문과 방송에 등장해서 제 맘대로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정치평론꾼들이 두 번째로 좋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동안 여론조사를 수행해 개표방송에서 결과를 터뜨리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세 번째로 좋다. 도대체 선거 정국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기어이 투표하겠다고 나선 유권자가 그 다음이겠다. 반면 최악은 이 같은 이유로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일 것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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