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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어서 더 멋져” 국악·전통춤에 젊은 관객 몰려

중앙일보 2016.04.12 01:51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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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감각으로 무장한 전통 뮤지션이 ‘9시에 만나요’란 타이틀로 2주에 걸쳐 대학로 예술극장에 출연했다. 풍물을 스타일리시하게 재현한 유희컴퍼니.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오늘 밤, 우리 한번 껄떡대 보자고요!”

정장 입은 소리꾼, 재즈 접목한 국악
‘보존’ 틀 깨고 새 감각 더한 전통 창조
국립무용단 공연 2030대 관객이 63%
팬덤까지 등장, 전통문화 새 지평


9일 밤 10시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연극·무용 등을 하는 500석 규모의 공연장에 느닷없이 수백 개의 형광봉이 허공을 갈랐다. 반짝이는 안경을 쓴 이도 있었고, 머리핀·팔찌까지 오색찬란했다. 더구나 객석에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할 관객이 너나 할 것 없이 무대 위로 뛰쳐나갔다. 몸을 흔들고 소리를 질러대며 콘서트홀을 방불케 했다. 엄숙한 공연장이 흡사 홍대 클럽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누가 출연하길래 이 소란일까. 인디밴드? 힙합그룹? 아니었다. 바로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40)씨였다. 그가 사운드 아티스트 태요(39), 판소리 이승희(33), 해금 김남령(25)과 의기투합해 4인조 밴드를 구성한 것. 말끔한 흰색 정장을 차려입은 이들은 때론 걸쭉한 입담을, 한편으론 싸늘한 무표정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일렉트릭 사운드의 강렬한 비트를 배경으로 깔고, 노래엔 민요 특유의 슬픔이 그대로 묻어났다. 해금 연주까지 더해지자 몽환적 느낌마저 들었다.

이씨에게 “국악치고는 너무 나간 거 아닌가”라고 묻자 “전통 소리꾼 하면 매번 두루마기 걸치는 줄 아는데, 우리도 파스타 먹는다”란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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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문 프로젝트.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통이 젊어지고 있다.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달라지고 있다. “전통은 고리타분한 거 아니야”란 선입견은 옛이야기가 됐다. 전통에 스타일리시한 감각을 더한 아티스트가 새로움을 갈구하는 젊은 관객들과 만나며 ‘신(新) 전통’을 창출하고 있다.

우선 관객 증가가 가히 폭발적이다. 3년전 국립국악원을 찾은 관객은 12만 3000여 명. 하지만 2014년은 20만 2000여 명, 2015년은 29만 8000여 명으로 매년 약 40%포인트씩 늘어났다. 반면 관객 연령층은 낮아지고 있다. 국립무용단 전체 관객중 ‘20·30 관객’의 비율은 40%(2012년)→57%(2013년)→63%(2014년)으로 높아지고 있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4년전 국립창극단의 ‘장화홍련’, 국립무용단의 ‘단’ ‘묵향’ 등이 잇따라 히트하면서 고루함이 세련됨으로 진화했다. 변곡점이 됐다”고 분석했다.

왜 낡은 전통에 20대가 반응할까. 이날 공연장에서 만난 서울대생 김모(22)씨는 “낯설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통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른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이연수(28)씨는 “전통 공연 보러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멋진데’라고들 한다”고 말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손혜리 이사장은 “충성스런 팬덤이 형성되면서 전통음악 뮤지션 역시 자신의 행보를 더욱 과감하게 밟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보다 해외의 관심은 더 뜨겁다. 국악과 헤비메탈·재즈 등을 접목시킨 3인조 ‘잠비나이’는 10월까지 미주·유럽 공연이 60회 가량 예정돼 있다. 월드뮤직계의 새 바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악 듀오 ‘숨’ 역시 올해 뉴질랜드·프랑스·폴란드·스웨덴 등을 순회한다. 잠비나이 멤버 김보미씨는 “아무리 국악을 한다 해도 현대인의 DNA가 우리 몸 속에 있지 않겠나. 그걸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재미없지만 보전해야 한다는 양가적 감정에서 젊은층이 자유로워졌다. 전통의 새 지평이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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