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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조폭의 의리와 시민의 윤리

중앙일보 2016.04.12 01:04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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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봤다. 성직자들이 상습적으로 아동을 성추행하는데 다들 쉬쉬하며 덮는다. 밝히려는 이들은 온갖 방해를 받는다. 지역사회의 명예를 해친다며 불편해들 한다. 사람들은 자기 집단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는 더하다. 내부고발자는 영웅은커녕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고발이 진실이었고 공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밝혀져도 ‘저런 사람 무서워서 어디 누가 같이 일하겠어?’라며 수군거린다. 사회를 유교적 가족공동체로 바라보는 농경사회의 윤리관이다. 소속 집단은 가족과 같고 상사는 부모와 같으니 잘못은 숨겨 줘야 한다. 의리가 찬양되고 장세동의 무조건적 충성이 미담이 된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나, 그러는 너는 얼마나 깨끗한가 보자, 조직에서 혜택 받을 건 다 받고 딴 속셈으로 뒤통수를 치는 것일 거야. 슬픈 것은 대단한 나쁜 짓을 해 볼 기회도 없고 뒤가 구린 이득을 분배받는 공범씩이나 되지도 못하는 소시민들이 이런 식으로 배신당한 보스에게 감정이입을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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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비리 사건을 재판한 적이 있다. 사건을 제보한 사람은 이사장의 심복인데 횡령 사건을 일으켜 해고당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은 보스에게 앙심을 품은 것이다. 사건 초기에 교수와 학생들은 이사장을 감쌌다. 복마전 학교로 소문나면 본인들에게도 불이익이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나중에 밝혀진 실상은 가관이었다. 이사장 일가는 등록금은 물론 정부 지원금까지 횡령하여 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었고, 교육시설 공사비 중 상당 금액을 리베이트로 받아 부실공사를 자초했다. 제보자가 비열한 복수심으로 학교에 오명을 끼쳤다고 비난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깨닫고 나서야 뒤늦게 아우성치며 이사장의 엄벌을 탄원했다.

제보자는 진실을 밝히는 계기일 뿐이다. 한 점 티끌 없이 고결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가 어떤 동기를 가졌든 결과적으로 당신의 몫을 가로채며 당신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는 권력자들의 치부를 폭로하여 당신에게 득을 주는 사람이다. 누가 당신에게 이익을 주고 누가 당신에게 손해를 끼치는지 정신 차리고 보아야 한다. 내부고발자가 시민 이익의 대변자로 보호받고 보상받아야 권력자들이 긴장한다. 발각될 리스크를 고려에 넣도록 만들어야 대범한 도둑질을 못한다. 조심이라도 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감시다. 눈먼 의리가 아니다.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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