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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애널리스트 탐방 막은 하나투어 … 결국은 주주 무시

중앙일보 2016.04.12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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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경제부문 기자

지난 7일 오전 금융투자협회 김준호 자율규제위원장이 오후 2시에 긴급 브리핑을 하겠다고 기자실에 알려왔다. 예정된 시간 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된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은 “증권사 리포트에 대해 누구든 반론과 비판은 제기할 수 있지만 업체가 해당 증권사의 향후 탐방을 막는 방식은 감정적인 처사였다”며 유감을 표했다. 이날 국내 3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도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서를 내놨다.

증권사 종목 리포트 내용에 반감
증권사 공동성명, 협회 유감 표명
“상장사 갑질, 객관적 정보 막는 셈”


이번 브리핑은 지난달 교보증권 애널리스트가 하나투어에 대한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는 리포트를 낸 게 발단이 됐다. 리포트 내용은 이렇다. ‘하나투어의 면세점 사업이 회사 전체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하나투어의 목표주가를 기존 20만원에서 11만원으로 낮췄다.

이 보고서를 본 하나투어 측은 분석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강하게 항의했고, 기업 탐방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 일이 알려지자 증권업계에서는 상장사의 ‘갑질’ 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하나투어의 갑질에 화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공동성명서로 맞섰다.

사실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한 상장사의 갑질 논란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1일에는 SK증권이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에 대한 인수합병(M&A) 리포트를 냈다가 SK브로드밴드 측 반발로 삭제했다. 지난해에는 현대백화점 부사장이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과 관련해 자사에게 불리한 리포터를 쓴 토러스투자증권 애널리스트에게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모든 증권사 리포트 말미에는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 없이 작성됐음을 확인합니다’라는 문구가 씌여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은 상장사의 외압, 독립성 침해가 이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증권사에서 상장사의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를 낮추는 리포트를 보기란 쉽지 않다. 금융투자협회에 공시된 ‘증권사별 리포트 투자등급’ 비율을 보면 지난해 국·내외 50곳 증권사 중 매도 리포트를 한 건도 내지 않은 증권사가 22곳으로 나타났다. 이 중 국내에서 영업 중인 16개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는 각 회사별로 전체의 10%가 넘는다. 매도 리포트가 한 건도 없는 증권사는 모두 국내 증권사란 얘기다.

국내 증권사들이 종목 매도 리포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증권사가 상장사들과의 거래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서다. A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이 주식이나 채권 등을 발행할 때 매도 리포트를 낸 증권사에겐 물량을 주지 않거나 기업 탐방 시 배제하는 등 불이익을 준다”고 말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업분석을 하는 것은 애널리스트 본연의 임무다. 지난해부터 금융당국과 금융투자협회는 매도 의견 리포트 비율을 증권사별로 공개하며 애널리스트가 소신대로 쓰도록 유도하고 있다.

상장사 입장에선 ‘매도 리포트’가 아플 수 있다. 그러나 리포트의 내용을 반박하는 수준을 넘어 애널리스트의 방문을 원천 봉쇄하는 건 객관적 정보를 원하는 투자자(주주)에 대한 도전 아닐까.

김성희 경제부문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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