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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애의 Hola! Cuba!] ⑪ 혁명의 태동지, 산티아고 데 쿠바

중앙일보 2016.04.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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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쿠바의 골목, 구시가지가 언덕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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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상대로 룸바 공연이 한창이다.


쿠바 근대사에서 가장 굵직한 사건은 ‘쿠바 혁명’이다. 쿠바를 완전히 변화시켰을 뿐더러 20세기 중반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쿠바 혁명은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에서 시작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수도였던 이곳은 지금, 쿠바 제2의 도시이다. 또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꼼빠이 세군도(Compay Segundo)의 고향이자 룸바(Rumba, 아프리칸 리듬의 쿠바 전통춤)의 도시이기도 하다. 바카디 럼의 원산지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22시간 버스를 타고 찾아간 도시

아바나에서 버스를 잘못 탄 바람에 22시간이나 걸려 산티아고 데 쿠바에 도착했다. 보통 16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직행 우등버스 가격을 내고도 버스가 고장이 나 완행버스를 탔다. 그럼에도 버스회사는 사과를 하거나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버스에서 거의 하루를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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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의 거리, 멀리 바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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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쑨시온 대성당 지붕이 반짝이는 산티아고 데 쿠바의 야경.


산티아고 데 쿠바는 아바나에서 남쪽으로 약 870㎞ 떨어져 있다. 거리도 멀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데도 많은 여행자가 기어코 산티아고 데 쿠바를 찾아간다. 춤, 음악 그리고 혁명이라는 키워드 때문이다. 지금은 그 명성을 수도 아바나에 빼앗겼지만, 여전히 산티아고 데 쿠바는 매력적인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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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디 럼을 성공시킨 에밀리오 바카디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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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쿠바 출신의 유명가수 꼼빠이 세군도의 묘.


쿠바 혁명을 말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고 2008년 1월까지 쿠바의 최고지도자였다. 그의 고향은 올긴(Holguin)이지만 산티아고 데 쿠바는 그에게 고향과 다름없는 곳이다. 학창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아바나에서 대학 졸업 후 혁명의 도화선이 된 ‘몬카다 병영 습격사건’을 일으킨 곳도 바로 산티아고 데 쿠바다. 몬카다 병영 습격 사건은 1953년,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정권에 항의했던 첫 번째 사건이다. 습격이 실패로 끝나면서 그는 15년 형을 선고받았고 법학을 전공한 그는 자신을 변호하며 장장 5시간에 걸친 연설을 했다. “역사가 나에게 무죄를 선고하리라(La historia me absolvera)”는 명 연설이 이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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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카다 병영, 지금은 일부만 박물관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학교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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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물건들이 빼곡한 어느 가게.



당시 피델의 나이는 27세였다. 이후, 동생 라울 카스트로와 함께 멕시코로 건너간 그는 체 게바라를 만났다. 1956년 혁명 용사 82명을 태운 그란마 호가 멕시코에서 출발해 쿠바에 도착해 침공을 기도했다. 이 또한 실패로 끝났지만 1959년, 마침내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켰다. 하여 산티아고 데 쿠바 곳곳에는 피델 카스트로와 당시 혁명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몬카다 병영은 일부를 박물관으로, 나머지는 학교로 사용하고 있다.
 


피델의 이웃집 누나, 마리아를 만나다

비가 내렸다. 언덕을 올라 피델 카스트로가 살았던 집에 도착한 날이었다. 피델이 살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쉬운 걸음을 돌리려 했는데, 쿠바인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이웃집을 가리키며 피델 카스트로의 옛 친구가 살고 있다고 알려줬다. 염치를 불구하고 그 집을 노크하고 피델 카스트로의 친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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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의 옆집 누나, 마리아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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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의 옆집 누나, 마리아 할머니.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나왔다. 그녀는 피델의 이웃집 누나, 마리아 에스떼야(Maria Estella)였다. 2003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곳 산티아고 데 쿠바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피델을 만났다. 그녀의 기억 속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독재자도 혁명가도 아닌 여섯 살 어린 동네 동생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내게도 보여주며 그녀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피델의 옆집 누나, 마리아 할머니였다.

바카디(Bacardí)는 럼(Rum)의 대표 브랜드다. 럼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다는 바카디의 고향이 바로 산티아고 데 쿠바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바카디 가(家)는 1862년 처음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럼 사업을 시작했다. 설립자의 아들 에밀리오 바카디(Emilio Bacardí)는 럼 사업을 크게 성공시킨 후 1899년 산티아고 데 쿠바의 시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1959년 혁명 이후, 쿠바 정부가 모든 기업을 국영화하려 하자 바카디는 본사를 버뮤다로 이전시켰다. 바카디가 떠난 뒤, 쿠바를 대표하는 럼의 자리는 ‘아바나 클럽(Havana Club)’이 차지했다.

1899년에 세워진 바카디 박물관(Museo Municipal Emilio Bacardí Moreau)은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다. 1층에는 바카디 가의 이야기가 잘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을 보며, 럼의 역사 뿐 아니라 쿠바의 치열했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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