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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서커스·비트박스 섞어 ‘동네바보’들 세계인 웃기다

중앙선데이 2016.04.10 00:42 474호 14면 지면보기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 세계로 나간 개그맨들이 있다. 2007년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로 방송을 탔던 ‘옹알스’다. 덩치 큰 어른들이 옹알이를 하며 내복 바람으로 서커스 수준의 퍼포먼스를 펼쳐 신선한 충격을 줬지만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통상 코너가 끝나면 금세 다른 코너를 선보이는 것이 개그계 풍토지만, ‘옹알스’의 행보는 달랐다.



TV를 떠나 공연장으로,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향했다. 최근 5~6년간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 스위스 몽트뢰 코미디 페스티벌, 뉴질랜드 버스커 페스티벌, 호주 멜버른 코미디 페스티벌을 모두 섭렵했다. 멜버른에서는 2014년 아시아인 최초로 ‘디렉터스 초이스’ 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코미디 한류’의 선봉에 선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까지 받았고 개그맨으로서는 최초로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섰다.


해외서 잇단 러브콜, 논버벌 코미디팀 ‘옹알스’

지난달 국립극장 공연까지 성황리에 마친 이들은 다시 호주로 향했다. 3년 연속 초청받은 멜버른 코미디 페스티벌을 위한 한 달간의 여정이다. 4월 말에는 필리핀 공연이 예정돼 있고, 여름에는 에딘버러 프린지 주요 극장에 초대받았다. 내친김에 런던 웨스트엔드 진출까지 추진 중이다. 말한마디 하지 않는 한바탕 ‘몸개그’ 퍼포먼스가 어떤 장르의 공연보다 더 해외에서 사랑받는 비결은 뭘까. 출국 직전 사당동 연습실에서 조준우·조수원·채경선·최기섭을 만났다.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우리가 아는 외국 코미디언은 미스터빈과 찰리 채플린 두 명이죠.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기에 전세계인들이 모두 알아요. 그래서 우리도 말을 안합니다.”(조준우, 이하 ‘준’)



‘옹알스’를 처음 만난 건 3월 13일 국립극장 공연에서였다. 오래전 ‘개콘’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소 미심쩍은 마음으로 극장을 향했다. 현란한 말장난의 향연인 여타 개그와 다른 저들의 몸개그가 ‘애들용’이라는 인식 탓이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만국 공통어는 영어가 아닌 웃음’이란 이들의 슬로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1시간 넘게 경험한 퍼포먼스는 방송과 느낌이 전혀 달랐다. 살짝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여타 공연과 달리 ‘코흘리개 아이들’이라는 가장 낮은 위치로 몸을 낮춘 이들의 무대는 마냥 편안했다. 유난히 비중이 큰 관객 참여도 멀쩡한 어른이 ‘동네바보’에게 구박당하는 컨셉트였지만 묘한 쾌감이 있었다. 내복바람 코흘리개들이 서커스 뺨치는 묘기를 펼칠 땐 찡한 감동도 있었다.



전문적인 기획과 연출을 거쳐 세련되게 빚어낸 것이 아니라 주먹구구로 꾸려가는 무대지만, 그런 만큼 더 땀방울의 진정성이 묻어났다. 무대 뒤의 모습도 순수했다. 해외진출도 야심차게 계획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냥’하게 됐단다. 물론 남다른 계기는 있었다.



“개콘 활동할 때 선후배들이랑 복지관에 봉사활동을 갔어요. 불편한 아이들이 바닥에 누워서 관람하는, 좀 당황스러운 자리였죠. 돌아가면서 자기 코너를 하는데, 다른 코너에는 무덤덤하던 아이들이 우리가 하니까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그렇다면 ‘진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 앞에서 해보자’가 된 거죠.”(준)



2009년 무작정 에딘버러를 찾았다. 괜히 통역을 붙여 한두 마디 말을 했다가 역효과가 나는 등 ‘절반의 실패’였다. 버스 정류장 쓰레기통 옆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다가 행인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햄버거를 사먹기도 했다. “한국 개그맨이 외국인 상대로 공연하는 자체가 처음이라 어디 물어볼 수도 없었어요. 에딘버러 가는 팀은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풍문을 듣고 문의하니 ‘예술장르에 속하지 않는다’며 단칼에 잘리기도 했죠.”(채경선, 이하 ‘채’)



하지만 ‘별로 안 웃긴데 백인들이 박수치며 좋아하는’ 일본팀 공연에서 희망을 봤다. 이듬해 에딘버러 첫 공식 무대를 밟았고, 당시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일하던 전혜정 KADA대표가 이들을 알아봤다. 템즈 페스티벌 등 런던시 주최 행사에 이들을 초청해 멍석을 깔아줬다. 그가 발견한 옹알스의 경쟁력은 ‘장르 파괴’였다.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한국 공연팀이 많지만 연극·무용 등의 카테고리가 장벽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옹알스’가 해외 유수 페스티벌의 러브콜을 받는 이유는 코미디와 서커스, 비트박스까지 융합된 탈장르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장르 파괴가 세계 무대 경쟁력 “한국에선 집주인만 알아본다”(조수원, 이하 ?수?)는 이들은 이제 호주에선 유명인이다. 지난해 멜버른 페스티벌 갈라쇼가 전국 방송을 탄 뒤 길에서도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가 됐다. 올 초 동시에 진행했던 3월 국립극장 공연과 4월 멜버른 페스티벌 티켓 오픈도 호주 판매가 더 많았다.

좌) 조준우 / 우) 채경선



“한국인은 코미디도 분석하잖아요. 예측한 게 맞으면 시시해 하고. 하지만 해외에서는 코미디라고 하면 화합이에요. 알고 있어도 그대로 즐기죠. 네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못하는 것이 화합되면서 웃어주고 리액션도 해주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오픈이 덜 된 것 같아요.”(수)



방송을 조기에 포기한 것도 그래서다. 무려 6개월간의 훈련 끝에 올린 코너 ‘외발자전거 가족’이 6주 만에 하차 통보를 받은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코미디는 한국 방송 실정과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매주 업데이트하는 게 아니라 깊이 있는 코미디를 하려면 관객이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준)



“코미디를 보는 시점이 달라요. 한국인은 외국 코미디를 보며 ‘왜 했던 거 또 하느냐’고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작품으로 숙성시키면서 깊어지죠. 같은 걸 하는데도 더 재밌어지고. 우리는 매일 다른 걸 연구하는데, 저들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마약 하냐고 묻더라고요(웃음).”(최기섭, 이하 ‘최’)



옹알스의 감동 포인트는 ‘동네바보’급 외모로 서커스와 마술, 비트박스 등을 전문가 수준으로 소화하는 데서 오는 의외성에 있다. ‘한국 저글링의 뿌리’를 자처하는 조준우가 동춘서커스단과 유럽 저글링컨벤션 등에서 6년 이상 연마한 서커스 기본기를 멤버들에게 전수했다.



“제가 실제로 한국 저글링 1세대예요. 광대나 마임하는 분, 바텐더까지 가르쳤죠. 병돌리기를 저한테 배워서 라스베이거스에서 바텐더로 활동하는 친구도 있어요. 외발자전거는 멤버들과 6개월 걸려 마스터했구요.”(준)



“힘들었어요. 자기와의 싸움이거든요. 초기엔 ‘이런 걸 왜 하느냐’고 묻던데, 우린 ‘그냥’이라고 대답했어요. 남들은 뭔가를 얻기 위해서 하지만 우린 그냥 시작된 게 많아요. 에딘버러에 간 것도 그래요. 잘 안되면 다른 걸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갔죠.”(수)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한 시간 넘게 땀흘리며 공연하는 모습에서 ‘저걸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가 감동으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채)



“10년 봐도 웃을 수 있는 코미디 할 터” 해외에서 사랑받는 ‘장르 초월 퍼포먼스’다 보니 최근 경쟁력있는 융복합 콘텐트 육성에 나선 정부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문화창조융합센터에서 선보인 쇼케이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큰 웃음을 사 청와대의 재계 17대 총수 오찬모임에도 초청받았다.



“저한테 ‘그 풍선묘기는 어떻게 하신 겁니까’ 물으시더라고요. ‘따로 불러주시면 알려드리겠다’고 했더니 정말 불러주신 거예요.”(준)



“뉴스에 나오는 분들이 다 앉아 있어 깜짝 놀랐죠.”(최)



“대통령께서 ‘지금 나이에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한번 크게 웃으시라고 준비했다’고 소개하시고는, 총수들 반응이 신경쓰이셨는지 저희보다 더 긴장하시던데요(웃음).”(수)



그 후 공연을 영상기술과 접목해 발전시키자는 솔깃한 제안도 있었지만 “몸으로 할 수 있는 걸 다 해본 다음 기계 힘을 빌리자”며 고사했다. “관심은 있죠. ‘태양의 서커스’의 카쇼나 오쇼처럼 복합적인 것도 하고 싶지만 전용관이 있어야 가능해요. 더 많은 분들과 즐기려면 나중에는 기계의 힘도 빌려야겠죠.”(최)



“지금은 작은 극장에서 표정으로 대화하는 아날로그 단계니까요. 아날로그는 눈물 흘리게 할 수 있지만 기계는 눈물 흘리게 못하잖아요. 카쇼보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어요.”(준)



이들은 이제 개그맨을 넘어 희극배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빵’ 터뜨려야 하는 개그맨보다 오랜 땀과 눈물로 연마한 연기로 평가받는 느낌 때문이다. “진정성에서 오는 감동은 디지털의 화려함이 절대 못 따라옵니다. 주변에서는 10년 했으면 좀 바꾸라고 하는데, 10년 보면서도 웃게 만드는 게 코미디언이라 생각해요. 오래된 것도 새로운 것처럼 연기하는 게 우리 사명인 거죠.”(수)



이들의 ‘청개구리’ 행보는 또 있다. 항간에 “돈 밝힌다”고 소문날 정도로 행사 초청비를 세게 부르지만 장애인 무료 봉사에도 열심이다. 서울대병원, 삼성의료원 등을 꾸준히 찾고 있고 해외에 나가도 제일 먼저 찾는 곳이 공연장 인근 병원이다.



“우리에게 기회를 준 게 장애 아이들이니까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웃을 수 있다면 전세계 누구나 웃길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줬죠. 우리도 연습이 되고 그들도 즐거워하는 상부상조의 기회인 거죠. 아이들 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힘든 걸 잊게 되는 시간이기도 해요.”(준)



최종 목표도 극단적이다. 웨스트엔드에 진출해 작품성을 인정받고, ‘쇼쟁이들의 끝판’이라는 라스베이거스에 한국 코미디 전용관을 세워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고 싶단다. “어디든 남들이 안 가본 곳에 가고 안 서본 무대에 서는 게 꿈(채)”이라는 것이다.



“오지 진출도 또 다른 꿈이에요.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고 믿고 만든 거니까 원주민들한테도 통할 지 확인해 봐야죠. 흙바닥에서 돌멩이로 저글링하고 메가폰으로 비트박스를 하더라도 전 지구인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요.”(준)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옹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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