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비야의 길!] 그게 구호현장이지 말입니다

중앙일보 2016.04.09 00:02 종합 25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세계시민학교 교장

내가 TV 드라마 덕을 이토록 짭짤하게 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다. ‘태양의 후예’ 말이다. 본방송은 물론 재방송, 심지어 재재방송까지 열심히 챙겨 보는 드라마는 ‘대장금’ 이후 처음인 것 같다. 특히 지진구호현장의 생생한 상황 묘사는 국제구호를 가르치는 내게 달달한 사랑 얘기만큼 흥미로웠다. 우리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최대의 시청각 자료가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이 묻는다. “긴급구호현장이 정말 그래요?” 맞는 것도 있고 살짝 아닌 것도 있고 완전히 틀린 것도 있다. 당연하다.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니까. 그러나 의료구호 NGO(비정부기구)인 ‘국경 없는 의사회’ 얘기를 원작으로 해서인지 구호현장의 핵심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반갑고 고마웠다. 말 난 김에 본격적으로 ‘태양의 후예’를 통해 본 구호현장 얘기를 해볼까?

태백부대가 파병된 중앙아시아 가상 국가 우르크는 사방이 지뢰밭이고 무기상이 판치는 걸로 보아 전형적인 내전 지역이다. 설상가상으로 지진이 발생했다. 이런 걸 전문용어로는 인재와 천재가 합쳐진 복합적 재난이라고 부른다. 단순한 자연 재난이라면 복구작업은 비교적 간단하다. 피해 국가의 모든 역량과 수단을 동원해 복구하고, 피해 규모가 혼자 감당할 수 없다면 외부 도움을 요청해 유엔이나 국제 NGO 등 국제사회로부터 인도적 지원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우르크처럼 내전까지 겹쳤을 경우는 훨씬 복잡하다. 정부군과 반군은 물론 힘 있는 세력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사분오열 갈라진 내부 사정 때문에 구호인력이 재난 지역에 접근조차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곳에는 십중팔구 극 중의 아구스 같은 죽음의 상인들이 그 지역 최고 권력자와 교묘하게 얽혀 있어 어설프게 도와주면 오히려 주민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구호 최대의 원칙은 ‘Do No Harm(해 끼치지 않기)!’이다. 도움을 준답시고 불 난 곳에 물 대신 기름을 끼얹지는 말아야 한다는 거다.

 
기사 이미지
지진 발생 시 극 중에서처럼 송혜교의 의료팀과 송중기의 공병부대로부터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 말은 재난 발생 직후 골든타임에는 외부 도움 전혀 없이 오로지 현지인들이 재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생존자를 찾아내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시신을 수습하고 당장 먹을 물과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 국제사회 지원은 일러야 2~3일 후에나 도착한다. 무너진 건물 속에서 어떻게 2~3일을 버틸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국제구호팀이 아무리 장비와 기술이 좋아도 생존자 수색 및 구조 결과가 상당히 저조하다.

그래서 재난상습지역 주민들이 재난을 예측하고 대비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과 훈련 및 주민 역량 강화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병원으로 보면 응급실에서 응급조치를 잘하는 것보다 예방이 훨씬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많은 논문은 재난 대비에 드는 비용 1달러로 재난 대응 비용의 5~10달러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내 박사 논문 주제도 이 재난 대비의 효율성이다!).

국제구호팀은 해당 정부의 요청이 있을 때 재난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요소인 물·식량·의료·피난처·보호 및 안전을 지원하는데, 이로 보면 극 중에서 다룬 홍역 에피소드는 매우 사실적이었다. 세상에서 5세 미만의 아이들을 가장 많이 희생시키는 4대 질병이 뭔 줄 아는가? 기관지 질환, 설사, 말라리아 그리고 바로 홍역이다. 특히 수만 명이 집단생활을 하는 난민촌에서는 예외 없이 홍역이 돌아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을 해친다. 지난해 일했던 터키 남부 시리아 난민촌에서도 한바탕 홍역이 돌아 며칠 전까지 까불며 같이 놀던 꼬마들이 열 명 이상 희생됐다. 한 해에 수백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는 이 4대 질병은 모기장, 깨끗한 물과 백신으로 저렴하고도 간단하게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말이다.

그리고 지뢰! 오랜 전쟁을 치른 나라에선 이것도 큰 문제다. 모두가 ‘송송 커플’처럼 지뢰밭을 빠져나올 기술이나 운이 있는 게 아니다. 주민들은 지뢰를 밟으면 살더라도 손과 발이 잘려 평생 의족과 의수를 단 채 살아야 한다. 전 세계에 묻혀 있는 지뢰가 최소한 1000만 개, 이 지뢰를 다 제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0년, 지뢰 생산 및 매설 비용은 한 개에 5~10달러, 제거 비용은 최대 1000달러다. 세계에서 지뢰 매설 밀도가 제일 높은 지역은 한반도 비무장지대라고 한다. 섬뜩하지 않은가? 어떻게 해서라도 지뢰 생산과 매설이라는 미친 짓을 못하게 막고 싶지 않은가?

아무튼 험한 재난 지역에서는 동료 대원들에게 깊고도 진한 동지애가 생긴다. 그래서 ‘송송 커플’과 ‘구원 커플’이 사랑을 다져가는 모습이 내게는 대단히 현실적이었다. 실제로 현장 상황이 열악하고 위험할수록 구호요원 사이에 더 많은 커플이 생겨난다. 이라크·남수단에서도 말리에서도 그랬다. 아, 나는 얼마나 더 험한 현장에 가야 내 짝을 만난단 말인가!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세계시민학교 교장
미세먼지 실험 아이디어 공모, 이벤트만 참여해도 바나나맛 우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