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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 캠프를 가다①]모든 문제의 원인은 시리아였다

중앙일보 2016.04.0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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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국제 구호기구 월드비전은 지난해 국제적 이슈가 된 '난민문제' 해결을 위해 전세계 주요 분쟁·재난 지역 난민의 이야기를 담은 기획  <우리집은 난민촌입니다>를 준비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시리아 난민캠프가 있는 요르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의 서안지구, 대지진 발생 1주기를 맞은 네팔, 2008년 이후 핏빛 내전을 계속하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4곳을 방문해 현장의 이야기를 풀어낼 계획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시리아 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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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세계 최대 난민캠프 자타리 난민 캠프. 이곳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들은 잊혀져가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전 세계의 관심만이 내전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요르단=정원엽 기자

 ◇25만명 죽고 1100만명 난민 된 내전의 시작
2016년 3월 15일은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지 5년째 되는 날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리아 내전은 전세계에 많은 충격을 줬다. 25만명이 전쟁으로 사망했고, 1100만명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이 중 460만 명은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흘러들어갔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에 따르면 시리아 전체 인구(2300만 명) 2명 중 1명이 난민이 됐고, 10명 중 1명은 내전 후 부상을 당하거나 숨졌다.

월드비전과 프론티어이코노믹스의 조사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피해는 2750억 달러(315조 4000억원)이고, 2020년까지 내전이 계속될 경우 1조 3000억 달러(1500조원)까지 상승하게 된다. 820만 명의 아이들이 직간접적으로 내전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중 200만 명은 교육에서 소외되어 있다. 지난해 터키 해안에서 익사한 3살 아기 아일란 쿠르디도 시리아 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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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아이 아일란 크루디의 시신 [중앙포토]

 



시리아 내전은 시리아 데라(Dera‘a) 지역의 시위에서 시작됐다. 40년간 시리아를 철권 통치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내용의 낙서를 한 소년 15명이 정부군에 잡혀 고문당하자 시위가 발생했고, 정부군이 실탄을 사용해 시위 진압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반군이 홈스를 혁명수도로 삼아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민주화를 향한 충돌로 보이던 내전은 종교와 지정학이 얽힌 복잡한 중동의 정치지형 탓에 국제전의 양상으로 확산됐다.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개입이었다. 2013년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한 것이다.
 
◇종파 갈등과 중동 내 패권다툼으로 번진 시리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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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 이슬람의 종파 분포 [중앙포토]

지난해 이란(시아파)과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의 대사관 방화 충돌에서 보듯 중동은 단순히 이슬람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함을 내재하고 있다.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은 시아파의 소수종파인 알라위파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중동 내 주류인 수니파의 견제를 태생적으로 받고 있다.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 레바논을 중심으로 한 극단주의 무장세력 ‘헤즈볼라’가 알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이유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이 반군을 지원하는 이유도 그 근본에는 중동 주도권을 둘러싼 종파 갈등이 있다.
 


 
◇ 지정학적 중요성이 비극 키워
중동의 오래된 종파갈등 뿐 아니라 시리아가 가진 지정학적 중요성도 시리아 내전을 국제전의 양상으로 이끌었다. 미국과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시리아 타르투스항은 러시아가 지중해로 진출하는 유일한 루트다. 이곳에 군사기지를 보유한 러시아는 현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였던 하페즈 아사드는 친소정책을 꾸준히 펴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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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를 둘러싼 서방측과 러시아의 힘겨루기 [중앙포토]

반면 미국은 민주주의·인권이라는 명분을 포함해 핵개발 문제를 일으키던 이란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시리아 반군을 지지해 왔다. 중동에서 이란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여기에 2013년 크림 반도를 병합한 러시아까지 개입되며 초강대국간의 힘싸움이 시리아를 휩쓸게 됐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서는 시리아(정부)·러시아·이란(헤즈볼라 등 시아파 세력) vs. 시리아 반군·미국·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 세력)의 거대한 충돌이 시리아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와 30여개의 반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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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더 복잡해진 것은 2013년 태동한 IS다. 2003년 미군 침략으로 붕괴된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잔당이 주축인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였던 IS는 시리아 내전과 국제사회의 분열을 틈타 반군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로 무장한 IS는 서방이 지원하거나 시리아 군으로부터 탈취한 무기를 이용해 시리아 북부지역에 거점을 확보했고 석유 밀매·인질 납치 등으로 자금을 확보했다.  국제사회는 IS를 명분으로 시리아에 개입할 명분을 얻었지만 기존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사이 내전과 얽히며 복잡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리아 내부의 반군도 30여개로 쪼개져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온건 자유시리아군(FSA), 알누스라전선을 포함해 종파와 지역에 따라 수십 개의 반군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 연합군과 IS의 충돌 속에 시리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됐다.
 
◇시리아 내전의 나비효과
 
지구 반대편 나비의 날개짓이 일으킨 바람은 지구를 돌아 태풍이 된다. 시리아 내전의 여파는 5년간 전세계 수많은 변화를 유발시켰다. 크게 보면 내전으로 인한 대량 난민사태와 IS의 태동이라는 두 요소가 현 시점의 지구적인 흐름에 충격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시리아에서 발생한 1100만명의 난민은 휴머니즘 관점에서 안타까운 일일 뿐 아니라, 유럽연합(EU)에도 큰 충격을 줬다. 지난해만 유럽으로 흘러든 시리아 난민은 50만명 가량이다. 시리아 난민의 이동이 촉매제가 되어 중동과 아프리카의 난민까지 유럽 난민 행렬에 동참하며 지난해 EU는 100만명의 난민을 수용하며 2차 대전 이후 최대 난민을 수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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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유럽으로 넘어간 난민들 [중앙포토]

 


            
 이는 관용과 포용이라는 서구적 가치에 대한 시험으로 이어졌다. 독일은 난민의 적극적 수용을 택했지만 지난해 11월 발생한 퀄른 성폭행 사건 이후 역풍을 맞은 상황이다. (관련기사:이민자 반란? 쾰른 축제장서 여성 90여 명 성폭력 수난) 독일 뿐 아니라 대량 유럽 난민을 맞은 대부분의 국가는 장기간 지속되어 온 저성장·고실업 문제등과 얽히며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극우·보수주의 정당이 EU 다수의 국가에서 지지를 받으며 관용 대신 장벽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는 통합이라는 EU의 근본 가치에 대한 물음을 낳았고 자유로운 통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솅겐조약마저 흔들리게 만들었다. 유럽의 우경화와 EU의 분열양상을 시리아 난민이 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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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세워지는 장벽들 [중앙포토]


관련기사 ①긴축 갈등에 테러·난민 덮쳐 틈 벌어지는 EU
              ②유럽을 강타한 극우정당 돌풍···톨레랑스는 옛 말?
              ③오스트리아 국경 장벽···'죽음의 바다'로 몰리는 난민

 또 다른 줄기인 IS의 개입도 유럽과 전세계에 파장을 미쳤다. 이슬람 성전을 주장하는 IS가 시리아 난민에 숨어 유럽으로 잠입하고, 파리 테러에 이어 벨기에 브뤼셀 테러까지 일으킨 것이다. 유럽의 보수주의자들은 테러리스트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난민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IS가 노린 바다. IS는 갈 곳 없고 분노한 이들에게 급여를 약속하며 전투원을 모집하고 있다. 높아진 유럽의 장벽이 다시금 IS의 전투원 공급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관련기사  테러범 2명 위장 난민···IS가 노린 건 유럽의 난민 증오

 
결국 시리아 내전은 중동 내부의 종파갈등 뿐 아니라 유럽 난민과 EU의 분열, 파리·브뤼셀 테러와 미·러 갈등 까지 전세계 국제정치의 생생한 현장이자 축소판인 것이다.
 
◇다시, 시리아 내전
시리아 내전이 길어지는 건, 기본적으로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지중에 밖의 일이고, 세계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 입장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전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다.
 
유엔안보리결의안에 따른 신속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최선책이었지만, 거부권(veto)을 가진 러시아가 있는 한 불가능했다. 결국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과 IS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기고 나서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국제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은 지상군 투입을 배제한 채 반군지원과 공습으로 작전을 수행했고, 정부군 측을 지지하는 러시아가 공습에 가담하며 전황은 더 복잡해졌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충돌하는 와중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이 IS를 공격하고, 러시아는 또 다시 시리아 반군을 공격하고, 반군은 서로다른 종파의 반군끼리 충돌하는 전쟁 속의 전쟁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이제 다시 시리아다. 지난 2월 27일 미국과 러시아의 합의로 잠시의 평화가 찾아왔지만 지난 3월에만 민간인 사상자가 360여명이나 발생했다. 360명의 사망자가 내전 발생 후 월간 최저 사망숫자라고 하지만, 언제 포화가 재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근본적으로 시리아 내전이 종식되고 시리아가 안정된다면 언급했던 문제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캠프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 유럽의 장벽은 스러지고, 서방은 IS와의 전쟁에 집중할 수 있고, IS도 전투원 공급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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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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