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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버스·지하철 타면 지옥"…평양에 다시 자전거 행렬

중앙일보 2016.04.05 02:00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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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중국이 합작 투자해 설립한 평진자전거합영회사가 만든 자전거들이 창고에 진열돼 있다. [신화사, DPRK360, 에릭 라포그]


봄기운이 완연한 평양에 ‘자전거 바람’이 불고 있다. 출퇴근에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운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는 게 대북소식통의 전언이다. 이런 분위기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 2270호 발표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대북제재 발표(3월3일) 한 달이 지나면서 ‘연유’(燃油·북한에선 휘발유나 경유를 의미)가 필요한 승용차·버스보다 자전거가 더 각광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최근 1990년대 후반 대량 아사자가 발생한 때의 어려움에 빗대 ‘제2의 고난의 행군’에 대비하자며 주민들에게 대북제재에 대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북 제재 후 대중교통도 타격
"제2 고난의 행군에 대비하자"
자전거도로·보관소 만들고 독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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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는 자전거 이용을 권장하기 위해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었다. [신화사, DPRK360, 에릭 라포그]


자전거 이용이 늘면서 평양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겼다. 또 임대 및 보관을 맡아하는 시설까지 나타났다. 북한 웹 사이트 ‘조선의 오늘’은 지난달 31일 “평양시 인민위원회가 자전거 임대 및 보관소를 시범적으로 꾸려 놓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평양시는 자전거 임대 및 보관소를 버스 정류소에 가깝게,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설치할 예정이다. 이 매체는 “평양의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자전거 임대 및 보관소 설치 이유를 설명했다. 대중 교통이 열악한 평양에서는 출퇴근 전쟁이 벌어진다고 한다. 평양 보통강철제일용품공장을 다닌 탈북자 이광철씨는 “출근 시간에 버스·지하철을 타면 지옥에 가깝다. 발을 디딜 틈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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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은 출근할 때 자전거를 이용한다. [신화사, DPRK360, 에릭 라포그]


북한 주민들은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멀리 있는 장마당(시장)에 농작물을 싣고 가서 내다 팔고 물건을 사온다. 자전거가 북한에 대중화된 건 1990년대 중반 함경북도 청진· 강원도 원산 등에 일제 중고 제품이 들어오면서부터다. 당시 일본을 오가던 북한 무역업자들이 이를 헐값에 구입해 북한 시장에 내다 팔았다. 가격은 북한 주민들의 한 달 생활비와 맞먹을 정도였다.

일본은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나라지만, 그만큼 방치된 자전거도 많았다. 일본 전체로 보면 600만~700만 정도가 방치돼 버려진다고 알려질 정도였다. 이 가운데 일부는 고철로 팔렸고, 일부가 북한으로 들어온 것이다. 일제 중고 자전거가 북한에 들어오면서 평양은 물론 지방도시에 자전거 전용 매장이 생겼다. 평양 출신 탈북자 최나영씨는 “사동구역 ‘송신 장마당’에 일제 중고 자전거 판매시장이 뱀 꼬리처럼 길게 줄을 이을 정도로 많았다”며 “일제 중고 자전거는 재산1호이자 도난목록 1호였다”고 말했다.

일제 중고 자전거가 인기를 끌자 도둑들은 자전거를 훔쳐서 돈을 벌려고 했고 주인들은 자전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북한 당국은 1997년 평양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적으로 자전거 면허증과 번호판 제도를 시행했다. 면허증 미소지, 교통위반시에는 벌금이 부과됐다. 현재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자전거를 많이 보급하면서 자전거 면허증과 번호판 제도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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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궤도전차를 이용하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신화사, DPRK360, 에릭 라포그]


북한의 자전거 시장은 한 때 일제 중고 자전거가 독점했다. 하지만 2006년 제1차 핵실험 이후 일본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일제 중고 자전거의 수입이 크게 줄었다. 게다가 2005년 북한과 중국이 합작 투자한 평진자전거합영회사가 설립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평진자전거합영회사는 북한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와 중국의 천진시 디지터얼회사 가 65만 달러를 투자해 만든 회사다.

코트라(kotra) 다롄(大連) 무역관 관계자는 “이 회사의 대표 브랜드는 ‘모란봉’, ‘질풍’ 등이며 하루 생산량이 500~800대, 연간 판매량이 3만~4만대로 시장점유율이 70%를 넘는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이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들을 위해 중고 자전거를 지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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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최근 ‘제2의 고난의 행군’과 ‘군자리 정신’ 등 새 구호를 내세워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자전거 타기 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체제 결속을 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자리 정신은 6.25전쟁 때 평안남도 성천군 군자리의 동굴에서 무기를 생산해 군대에 공급했다는 영웅적 투쟁정신의 모범 사례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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