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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130억 들인 ‘마타하리’ 무대는 화려한데…

중앙일보 2016.04.05 01:36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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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하리’는 여주인공의 가창력과 관능미로 승부를 건다. 주인공 김소향씨.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로열티로만 외국에 100억원 넘게 나갔어요. 너무 아깝잖아요. 이젠 본전 회수해야죠.” 130억원의 초대형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를 만든 제작자 엄홍현 대표(EMK뮤지컬컴퍼니). 그는 설도윤(오페라의 유령·위키드)·박명성(맘마미아·시카고)의 뒤를 잇는 2세대 뮤지컬 프로듀서다. 본래는 이벤트 업자였다.첫 뮤지컬 입문작은 2006년 4월 ‘드라큘라’. 무려 20억원 손해를 보며 빚더미에 앉아 줄소송을 당했고, 그는 여인숙을 전전해야 했다. 그랬던 인간 엄홍현이 벼랑 끝에서 살아남아 10년 만에 명실상부 대한민국 뮤지컬계 최고 파워맨으로 우뚝 서다니, 인간 승리이자 한편으론 ‘다이나믹 코리아’다.

뻔한 삼각관계, 고음 위주 음악
평단선 “헛헛하다” 차가운 반응
관객 사로잡을 주제의식 아쉬워


작곡 프랭크 와일드혼, 연출 제프 칼훈 등 해외 크리에이터가 포진했지만 ‘마타하리’는 분명 엄홍현의 뮤지컬이다. ‘엘리자벳’ ‘레베카’ ‘모짜르트!“ 등 오스트리아 뮤지컬을 한국적으로 변용시키며 축적한 노하우와 자신감이 그를 도전케 했다. 실제로 이번 ‘마타하리’의 무대는 객석에서 “진짜 한국 거 맞아?”란 말이 나올 만큼 현란했다. 29대의 자동화기기, 50여번의 무대 전환 등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 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완성도였다. “외국에서 러브콜이 폭주한다”며 엄 대표 역시 잔뜩 상기돼 있었다.

하지만 평단의 반응은 대체로 차갑다. “화려하나 헛헛하다”는 톤이다. 위압적인 세트는 외려 출연진을 위축하게 만들었고, 음악 역시 식상한 고음 위주였다. 무엇보다 세계 1차 대전에 이중 스파이로 휘말렸던 실존 인물의 운명과 굴곡을 이토록 뻔한 삼각관계로만 풀다니. 허약한 스토리와 캐릭터에 대한 실망이 적지 않았다.

한상 거하게 차렸음에도 왜 허기는 가시지 않는 걸까. 엄 대표는 “솔직히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목에 답이 있었다. 지금껏 국내에서 뮤지컬을 만든다는 건 해외 작품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아니면 약간의 변화를 주면 됐다. 이른바 한국인의 특징이라는 실행력·응용력·순발력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창작은 일종의 원천기술이다. 백지에서 출발하니 근본적인 문제 의식이 필요하다. 이걸 전달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벅차 오르는 창작욕이 배어있어야 한다. 그게 ‘마타하리’엔 없었다. 대신 ‘이렇게 하면 다들 깜짝 놀라겠지’만 넘쳐났다.

결국은 인문학이다. 보여주기는 지금으로 충분하다. ‘왜 마타하리를 택했나’란 초심으로 돌아가야 작품도 다시 살아날 터. 과연 엄홍현은 어떤 선택을 할까.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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