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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과거에 집착하는 남친이 힘겨운 20대 여성

중앙일보 2016.04.05 00:02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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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Q  자꾸 캐묻는 남자친구 어떡하죠

열정 내려놓고 친구 같은 친밀감 쌓아 가세요

20대 후반 직장 여성입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정말 사랑하게 된 남친이 있습니다. 제 고민은 연애 초기에 남자친구가 질문하기에 솔직하게 제 과거 연애사를 다 밝혔는데 남친이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제 과거가 자꾸 상상이 되고 꿈에도 나온다고 합니다. 저희 둘은 정말 사랑합니다. 남자친구 역시 제 과거를 이겨내고 싶어하는데 그러면서도 너무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헤어질 뻔도 했어요. 거의 나아진다 싶으면 또 질문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그전엔 거짓말이었느냐고 속상해합니다. 남자친구는 자기가 안고 가겠다고 하면서도 너무 가슴 아파하네요. 남자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왜 그런지, 어떻게 하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A 의 3요소 중 2가지가 없네요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계시네요. 힘드시겠지만 사랑을 하기에 느낄 수 있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열정적인 사랑이 어려운 이유가 질투란 감정이 함께 활성화되기 때문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사랑 엔진’에 시동이 걸리면 바로 옆에 연결된 ‘질투 엔진’도 시동을 겁니다. 사랑이 커질수록 질투도 같이 자랍니다. 적절한 질투야 사랑에 감초 역할을 하지만 오늘 사연처럼 질투가 과도하면 갈등 요소가 됩니다. 여자친구의 과거에 대한 과도한 질투는 관계를 매우 힘들게 합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어서 변화시킬 수 없는 데다 질투하는 당사자나 상대방의 자존감이 모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질투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이미 지나간 일로 괴롭히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한 일이고, 상대방도 과거 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나쁜 여자로 만들어 버리니 속상합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기에 내 자존감을 점점 떨어뜨리는 관계는 오래가기가 어렵습니다. 또 질투가 분노 행동으로 터져 나올 수 있는데 이것도 관계를 망치게 합니다.

열정만 있고 헌신·공감 부족한 사랑

질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열정적이고 순수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질투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기술이 미숙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열정적인 사랑만으로는 사랑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열정적인 사랑은 사랑의 초창기에 쏟아져 나오는 큰 축복입니다. 열정적인 사랑의 시기에 좋은 기억을 만들어 놓아야 나중에 관계가 시들었을 때 과거를 생각하며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정적인 사랑의 시기에 통제되지 않는 질투로 서로 힘든 기억만 쌓아 놓는다는 건 달콤한 사랑의 순간을 놓치는 게 돼서 속상한 일이고, 또 위기가 찾아왔을 때 다시 힘을 줄 따뜻한 기억도 못 갖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의 열정은 옅어졌는데 질투는 결혼 후까지 계속 유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우자를 의심하고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하려 합니다. 심하면 의처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결혼 전에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가 보다 이해하지만 끝없는 질투와 의심은 사랑을 망가트리고 사랑으로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질투, 우리의 본능이지만 잘 사랑하기 위해서는 질투라는 욕구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연애 초기부터 열정적인 사랑과 더불어 의지적 사랑, 친밀한 사랑도 함께 키워가야 합니다. 열정적인 사랑이 화학 반응처럼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라면 뒤의 두 사랑은 노력으로 만들어 가는 사랑입니다.

의지적 사랑은 헌신적 사랑이죠.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한다면 내 마음을 속상하게 하더라도 내 여자는 속상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내가 질투에 약하기에 더 이상 과거에 대해서 묻지도 않고 더 대화하지 않기로, 내 질투는 내가 담당하기로 결심하는 사랑입니다. 친밀한 사랑은 부모의 내리사랑처럼 끝없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해 주는 사랑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여자가 내 질투 때문에 얼마나 힘들까 공감하는 능력이죠. 공감하기에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열정적인 사랑이지만 사랑이 오래가는 데에는 친밀한 사랑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 부부관계 연구에서 사랑의 3요소, 즉 열정적 사랑, 친밀한 사랑, 의지적 사랑 중 친밀한 사랑이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란 결과도 있습니다. 잉꼬부부를 보면 때론 친구처럼 때론 부모 자식처럼 친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 초기에 열정적인 사랑이 중요하다면 이후에는 친밀한 사랑과 의지적 사랑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부부가 다시 노년이 되면 열정적인 사랑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합니다. 친밀한 사랑이 다시금 열정적인 사랑으로 변환된다는 것이죠. 질투가 아니라 공감해줄 때 사랑의 뜨거운 온도가 식지 않기 때문입니다.

02  Q  그래도 이 남자가 너무 좋습니다

주변에서는 집착하는 남자는 좋지 않다며 헤어지라고 하지만 전 이 남자가 그래도 너무 좋습니다. 잠시 헤어졌을 때 중독 증상에 빠진 것처럼 힘든 경험을 했습니다. 평소에 이성적인 판단을 주로 하는 편이었는데 친구들이 사랑을 하고 제가 너무 변했다고 해요. 사랑하면 사람이 정말 변하나요.

A 사랑에 중독되면 참 끊기 힘들죠

사랑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쾌락 물질인 도파민이 나오는 뇌의 영역이 활성화됩니다. 이 쾌락 물질은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보상 시스템의 스위치를 켜게 되죠. 마치 마약처럼요. 동시에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혈압을 올리는 흥분 호르몬도 사랑할 때 쏟아져 나옵니다. 중독적인 흥분제가 작용할 때와 유사한 반응이죠. 사랑이 중독적이라는 것은 금단 증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연의 고통이란 표면적으로는 사랑의 대상이 떠나서 힘든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이라는 뇌의 활동이 중단돼 발생한 금단 증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강렬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웬만한 만남엔 사랑의 감정이 잘 터져 나오지 않는 것이 사랑의 금단 현상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미친 사랑’

사랑은 사람을 강박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집착하게 하죠. 그 집착 때문에 상대방을 힘들게 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게 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예측 불허이며 불안정성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감정을 안정적으로 조절해주는 세로토닌이라는 뇌 속 물질이 사랑할 때는 줄어듭니다. 그래서 감정이 출렁거리고 사랑에 집착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크레이지 러브, ‘미친 사랑’을 만드는 뇌 안의 변화입니다.

고전 문학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간절함이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사실 두 남녀의 행동은 너무나 무모합니다. 죽은 척한 것도 무모하고 진짜 죽은 줄 알고 자신의 생명을 그냥 끝내 버리는 것도 무모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비극적인 예술 작품 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렬한 사랑에 무모한 용기가 동반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내 행동을 조절하는 전전두엽이라는 뇌 영역의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위험에 반응하고 상대방의 부정적인 것을 느끼는 선조체라는 뇌의 영역도 기능이 저하됩니다.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느껴지고 비이성적인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면 사람이 실제로 이렇게 변하게 됩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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