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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서울 오가느라 업무 질 떨어진다…공무원도 걱정하는 세종시 비효율

중앙일보 2016.04.05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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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
경제부문 기자

기획재정부 대변인실에선 매주 ‘주간 보도계획’이란 A4용지 한두 장 분량 문건을 기자들에게 뿌린다. 주요 발표의 개요와 담당자 이름, 연락처가 표 양식 안에 간단하게 적혀 있다. 다른 정부부처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자료를 내지만 기재부 판만의 특징이 있다. 담당 사무관의 휴대전화 번호가 같이 적혀있다. 5~6년 전에 경기 과천청사 시절 기재부를 출입했을 때 없던 내용이라 의아했는데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부총리 지시로 내놓은 해결책
화상회의 늘린다고 문제 풀리나


물어볼 게 있어 세종시 세종청사 내 기재부 사무실 번호로 걸었을 때 바로 전화 연결이 된 경험은 드물다. 열에 아홉, 여덟은 “서울에 출장 갔다” “자리에 없다”란 답이 돌아온다. 이리저리 서울로 불려 다니는 회의·보고가 많아서다.

기재부는 경제정책·세제·예산·재정·국제경제 등을 담당하는 부처다. 국회와 다른 부처, 금융사, 공공기관과 협의해야 할 일이 특히나 많다. 기자단에게 연락처가 공유되는 간부급은 물론 사무관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식 보도계획 자료에 명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공식 브리핑을 제외한 때 기재부 공무원의 얼굴을 맞대고 설명을 듣기란 더욱 힘들다. 지난해 7월 세종청사 출입기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출입 인사를 할까 전화를 차례로 돌렸을 때 청사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실·국장급이 단 한 명이라 머쓱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국회다, 추가경정예산이다, 경제운용방향이다 해서 한창 바빴던 때니 당연했다. 간신히 얼굴을 뵌(?) 그 국장마저 “30분 후에 KTX 타러 역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마음이 분주했다.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4일 기재부가 ‘조직 문화 개선 프로젝트’를 내놨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시로 이 안을 만든 신준호 기재부 창조정책담당관은 “간부와 직원이 서울과 세종에 격리돼 업무 지도하는 기회가 적어지고 이에 따라 보고서의 질이 점점 저하되고 있다”며 “민간 전문가을 만나 살아있는 지식을 축적해나가기 어렵다”고 전한다. 경제부처 ‘큰 형님’격인 기재부 자존심에 ‘격리’ ‘질이 떨어졌다’는 과격한 표현을 쓸 만큼 상황이 심각하단 얘기다.

1997년 7월 27일 재정경제원(현 기재부) 경제정책국의 변양호 정책조정과장이 사무관 한 명과 ‘태국 바트화와 기아, 상이한 문제인가’란 보고서를 썼다. 기아차 부도와 태국 외환위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넉 달 후 97년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터졌다. 경고를 담은 내부 보고서가 있었는데 재경원 윗선에서 묵살한 것 아니었냐며 98~99년 외환위기 책임을 묻는 법정 공방에서 화제가 됐다. 과거 기재부 보고서의 위력은 그랬다. ‘모피아 전성시대’의 향수를 재현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한 나라의 경제정책과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부처답게 치열한 연구와 토론, 민간과의 교류, 간부에서 직원으로 내려오는 밀착 교육을 되살릴 필요는 있다. 신준호 담당관은 “실·국장·직원간, 서울 민간 전문가와 회의시 화상회의를 적극적으로 확충하고 컨퍼런스·포럼·세미나 개최와 참석도 적극적으로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주 유 부총리만 해도 간부회의가 있는 이날을 제외한 5~7일 서울·경기를 오가는 수도권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다. 대책으로 내놓은 화상회의가 밀착 교육에 얼마나 효과적일지, 부총리가 서울 일정을 소화하는데 세종을 지킬 ‘간 큰’ 국·과장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보고서 질 하락을 탓할 게 아니라 ‘실세 의원’ 출신답게 유 부총리가 먼저 비효율적인 국회·청와대 호출, 세종을 찾지 못하는 간부 일정, 답보 상태인 국회 세종 분원 설치 같은 근본적 문제에 답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조현숙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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