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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김경문 감독 등번호 74의 의미

중앙일보 2016.04.0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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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몇 해 전부터 야구 시즌만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숫자 74'와 '포수의 헬멧'이다.
둘 다 NC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을 만나면서부터 비롯된 기억이다.

그를 만난 건 2012년 6월 29일이었다.
그런데 인터뷰의 주제가 책이었다.
당시 '명사의 인문학 서재'라는 시리즈의 주인공으로서 인터뷰였다.
야구 감독과 책, 단박에 연결되는 주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등장할 지면은 스포츠면이 아니라 문화면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정확히 하려 취재기자와 통화를 했다.
"각계각층의 명사들과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소개받는 시리즈였어요.
김감독이 독서광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인터뷰 요청을 했죠.
그런데 쉽게 허락하지 않았어요.
당신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많거니와 책을 선정해서 소개한다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죠.
오랜 시간이 걸려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였어요."

당시 NC다이노스는 신생팀이었다.
1군 리그 진입을 앞두고 하위 리그에 소속된 팀이었다.
김감독은 팀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막중한 소임을 맡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책을 주제로 한 인터뷰, 누구라도 부담스러웠을 터이다.

그를 만나러 마산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부터 고민이었다.
시리즈의 제목이 '명사의 인문학 서재'인데 만날 장소가 야구장이었다.
야구장에서 책을 들고 사진을 찍는 것은 아무래도 억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별다른 대안도 없으니 이래저래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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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더그아웃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6월 말 오후 1시의 더그아웃, 꽤 후텁지근했다.
장마가 막 시작될 즈음이라 습도마저 높았다.
그렇다고 인터뷰 장소를 옮길 형편이 아니었다.
오후 5시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연습시간 전에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마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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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책을 드는 이유를 말했다.
"프로세계 30년이지만 승부의 고통은 가슴으로 멍든다"고 했다.
그리고 "패배에는 면역력도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가슴으로 체득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표현들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경기의 스트레스가 코치로, 선수로 옮겨가니 표시를 내지 않고 어려움을 참는 방법을 책에서 배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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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 그의 등번호가 74번인 이유를 설명했다.
행운의 번호인 7과 죽을 사(死)와 같은 발음의 4를 합친 것이라고 했다.
'행운과 불운은 함께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랐다.
승부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운과 관계된 것을 일부러 피하게 마련이다.
하물며 나조차도 숫자 4에 대한 징크스가 있어 웬만하면 피해다녔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등번호에 품었다.
사진을 등번호과 함께 찍으리라 작정했다.
마산으로 오면서, 야구장에 도착해서도 내내 품었던 사진 고민이 그때야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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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 때였어요. 당시 지역 라이벌 공주고와 대전고의 시합 중이었어요.
포수를 하던 내가 대전고 선수가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맞았어요.
기절해서 실려 갔습니다.
일주일 정도 의식불명이었고 한 달 가량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당시엔 헬멧을 안 쓰고 시합을 할 때였죠.
사실 이 사건 때문에 포수가 의무적으로 헬멧을 사용해야 하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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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74의 의미가 더 확연히 다가왔다.
승부의 세계, 누구나 행운과 불운을 겪는다.
승부의 세계만 그런 것도 아니다.
행운이 불운이 될 수도 있고,
불운이 행운이 될 수도 있는 게 삶이다.

이름 석 자 앞에 명장이란 수식어가 붙는 김감독,
그조차도 '승부의 고통은 가슴으로 멍든다'고 했다.
그리고 '패배에는 면역력도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또 시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의 등번호는 74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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