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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홍석재의 심야덕질] 인공지능이 시나리오 쓰는 시대가 온다면

중앙일보 2016.04.03 09:32

지난 3월 9~15일,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의 대국을 지켜보느라 일주일간 아무 일도 못했다.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이기는 건 아직 10년은 더 걸릴 거라 했던 업계의 예측을 떠올려 보면 충격적인 결과다. 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 맞았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알파고를 통해 상상한 알파픽션의 가능성


그렇다면 언젠가 이야기를 지어내는 인공지능도 등장하지 않겠는가. 이런 상상을 하고 있는데, 지난 3월 22일 일본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소설이 권위 있는 SF 관련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본 과학자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쓴 이 소설의 제목은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연구진은 이 기술이 “인공지능의 기여도가 20% 정도라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면서도 “2년 이내에 줄거리를 자동으로 생성하도록 성능을 향상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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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멈추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계속 시도한다. 다르게 시도한다. 인공지능은 자신감 때문에 밤잠을 설치지 않는다. 만약 조건 값만 정확히 주어진다면 알파픽션은 결국 혼자서 훌륭한 이야기를 써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소설(여기에서는 편의상 ‘알파픽션’이라 칭하겠다)이 나오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이야기를 지어내는 알고리즘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각 요소에 수치를 대입할 방정식을 도출해야 한다. 체스 프로그램을 예로 들면 퀸은 9점, 비숍은 3점 같은 식으로 각 말에 점수가 부여되고 상황과 위치에 따라 그 값이 조정된다. 게임은 승패가 명확하다. 이렇게 점수의 합산으로 더 높은 승률을 따낼 수 있는 선택을 알고리즘이 제시한다. 그런데 과연 이야기에 이런 점수를 매기는 일이 가능할까? 우선 그 점수의 총합이 높다는 게 이야기의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해야 한다. 완성도가 높다는 뜻일 수도 있고, 창조성이 뛰어나거나 혹은 더 재미있다는 의미에서 높은 점수를 부여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지표들이 상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지만 만듦새는 엉망인 이야기와 지루해도 예술성이 높은 이야기의 도식은 진부해도 쉽게 와 닿는다. 그렇다면 알파픽션은 이야기를 측정하는 지표 중 하나에 기준을 두고 만들어질 것이다. 알고리즘은 정확한 목표가 있어야 돌아가게 마련이니까.

현실적으로 알파픽션이 채택할 이야기의 지표는 상업성일 확률이 높다. 이야기의 완성도, 새로움, 아름다움 같은 지표는 수치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잘 먹히는 이야기는 얘기가 다르다. 영화 쪽을 보자. 관객 수가 많은 영화에 대한 빅데이터는 알고리즘에 써먹기 딱 좋다. 더 많은 관객을 불러들인 영화의 이야기일수록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투자·배급사 측에서 제작을 관리하기 위한 툴로써 영화나 시나리오를 포커스 그룹에 보여 주고 점수를 매기는 건 불편해도 이미 현실이다. 장면 단위로 점수를 매겨서 재미없거나 처지는 장면은 줄이고 재미난 장면은 더 늘리는 방향으로 수정하기도 한다. 그럼 포커스 그룹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영화가 정말 좋은 결과를 불러들일까? 그럴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많다. 문제는 점수를 매기는 기준이 심사자의 주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점수를 매긴다는 접근 방식 자체가 창작자로서 석연찮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알파고의 대국을 보며 해설자들이 “기풍이 두텁다, 얕다” “맛이 나쁘다, 좋다” 같은 표현을 쓰다가 ‘멘붕’에 빠지는 걸 보며 나 역시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감각에 기댄 표현과 실제 바둑에서 이기기 위한 최선의 선택 사이에 어떤 오차와 간극이 있는 것이다. 해명될 수 없다 단정하고 언어로 뭉뚱그려 왔기에 우리가 계속 놓쳐 온 부분이 이야기라고 해서 왜 없겠는가? 씁쓸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진정한 알파픽션을 만들겠다는 야심은 이야기 자체에 대한 이해와 탐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꽤 여러 종류의 시나리오 작법서를 읽은 편이다. 소설 작법서에 비하면 시나리오 작법서 쪽이 조금 더 공학적 관점으로 쓰여 있다. 두 시간 안에 이야기를 끝마쳐야 한다는 조건이 상대적으로 플롯과 구조에 대한 탐구를 강화하게 만든 것이다. 플롯과 구조는 캐릭터나 주제 같은 모호한 대상보다 좀 더 손에 잡히는 벽돌처럼 다가온다. 알고리즘화하기에는 더 용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동의하는 시나리오 작법의 정석은 아직 없다. 대다수 시나리오 작법서는 글 쓰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언제나 의아했던 건 시대 흐름은 콘텐트가 점점 중요해지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정작 그 콘텐트를 만드는 원리에 대한 탐구엔 큰 진전이 없다는 거다. 가령 물리학이 빛의 성질과 중력 작동 방식을 해명했고 그것이 인류에 큰 이로움을 끼쳤다면, 적어도 내가 봤을 때 이야기는 빛과 중력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인간의 삶에 중요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빛과 중력만큼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지 않다. 서사학에 있어서만큼은 1000년 전과 똑같은 암흑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야기를 조금 건너뛰어 보자. 알파픽션 알고리즘이 어떻게든 도출됐다고 가정한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양상이 벌어질까? 자연어로 사고하고 글을 쓰는 인공지능도 언젠가 나오겠지만 단계적으로 봤을 때 초기 형태의 알파픽션은, 이야기 패턴을 인식하고 가능한 옵션을 제안·조립하는 역할 정도를 수행할 공산이 크다. 작가는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글을 쓰는 대신 알파픽션과 작업하게 될지도 모른다. 1997년 딥 블루(Deep Blue·IBM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체스 프로그램)에게 패배한 체스 마스터 게리 카스파로프는 이후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고급 체스’라고 명명된 그 체스는 컴퓨터와 인간이 한 팀을 이뤄 체스 경기에 나서는 것이다. 전술적인 수의 계산은 컴퓨터에게 맡기고 전략적인 차원의 생각에만 인간이 집중할 때, 보다 높은 수준의 체스 경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대담한 가설이었다. 어쩌면 그게 우리의 낙관적인 미래일지 모른다.

비관적인 미래를 상상해 보자. 알파픽션이 소재나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 패턴과 플롯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조성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딥마인드가 공개한 영상 중 알파고 알고리즘이 8비트 게임을 플레이한 기록이 있다. 그중 벽돌 깨기 게임을 재밌게 봤다. 300판의 게임 이후 인공지능은 이미 벽돌 깨기 달인이 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서 200판을 더 진행하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플레이가 펼쳐진다. 벽돌 깨기 게임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왼쪽 혹은 오른쪽 가장자리 벽돌들을 다 깨부수고 공의 궤도를 잘 유도하면 공은 뚫린 벽쪽 공간을 통해 천장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알아서 공이 천장과 벽돌 사이를 부딪치며 점수를 올린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인공지능은 단지 최선의 방법으로 점수를 올리는 수백 판의 데이터 분석 끝에 이 전략을 채택한다. 충격이었다. 우리는 직관 혹은 창조력에 대해 규명할 수 없는 마법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은 그 정체가 무수한 시도와 실패 끝에 나올 수 있는 또 다른 시도나 일종의 돌연변이 같은 확률적 결과는 아닐까?

만약 ‘더 좋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을 숫자로 표시할 수 있다면, 알파픽션은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방향을 향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할 것이다. 이때 알파픽션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적어도 알파픽션은 자괴감에 빠지거나 자기 확신을 잃어버리거나 생활고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는다. 대다수 작가들은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의 막연한 형태를 그리며 흥분한다. 끝내주는 아이디어라며 밤잠을 설친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백지를 앞에 두는 순간 불현듯 의심에 사로잡힌다. ‘내가 과연 이걸 쓸 수 있을까? 시작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다음은 뭘 써야 하지?’ 인간은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어떤 기분 같은 걸 느끼지 못하면 창작할 수 없는 족속이다. 창작이란 기본적으로 그런 기분 활동의 부산물이다.

만약 여기서 막혀 버리면 인간이란 기계는 오류를 일으킨다. 인터넷 서핑을 하고, 청소를 하고, 게임을 하고, 딴짓을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멈추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계속 시도한다. 다르게 시도한다. 인공지능은 자신감 때문에 밤잠을 설치지 않는다. 만약 조건 값만 정확히 주어진다면 알파픽션은 결국 혼자서 훌륭한 이야기를 써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평생 이야기에 파묻혀 살고 어느 순간 자신이 이야기란 사실을 깨닫는다. 알파픽션이 정말 구글이건 페이스북이건 누군가로 인해 진행된다면, 우리는 반쯤 우리 자신이기도 한 이야기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지 모른다. 그것은 스스로를 조금 더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진정한 인공지능 시대를 향해 가는 최후의 보루에 이야기가 버티고 서 있을 거라 예상한다. 이야기를 정복한다는 건 인간을 정복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인간은 인공지능을 만든 종(種)으로 미래의 역사에 기록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고 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글=홍석재 영화감독. '소셜포비아'(2015) 연출. 타고나길 심심한 인생인지라 덕질로 한풀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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