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금야금, 아바나 인터넷

중앙선데이 2016.04.03 01:06 473호 15면 지면보기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이후 쿠바에선 인터넷 접속 속도가 빨라지는 등 통신인프라가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아바나의 공공 와이파이존에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는 쿠바인들. [AP=뉴시스]



지난해만 해도 쿠바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인터넷을 통한 외부와의 접속은 포기해야 했다. 처음 며칠은 답답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인터넷에 접속할 방법이 없으니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마침내는 마음이 승복하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그 다음부터는 편하다.


특별기획 | 新쿠바 르포-2- 호텔·공원 등 35곳에 와이파이 존

하지만 수도 아바나의 5성급 나시오날호텔에서는 당연히 와이파이(WiFi·무선인터넷)가 연결될 줄 알았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국제 수준의 고급 호텔에서 인터넷이 안 될까 자신만만했었다. 그런데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상 접속이 안 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날벼락 맞는 줄 알았다.



방법은 있었다. 비싸기는 하지만 나시오날호텔에서 인터넷카드를 구입하면 된다. 문제는 속도였다. 엄청나게 긴 접속번호를 입력하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연결하는 데 10분을 훌쩍 넘기고 e메일 한번 보려면 30분 이상 걸렸다. 휴양지 바라데이로에서는 ‘30분 카드’를 사놓고 한 번도 접속해 보지 못하고 버려야 했다. 속도 때문이었다. 쿠바에 체류하는 동안 내내 인터넷에 대한 ‘희망고문’으로 절망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은 버리지 말자는 생각으로 출국 때까지 버티다 진이 빠졌다. 공항 라운지에는 있겠지. 그러나 희망은 마침내 절망으로 변했다. “과연 쿠바구나.” 탄성이 절로 나왔다.이번에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쿠바에 왔다. 지난 1월 쿠바 호세 마르티문화원과 한국외국어대 한·중남미 녹색융합센터(GCC-KOLAC)가 공동 개최한 제2차 국제학술대회에 발표자 자격으로 참여했다. 지난해 경험을 통해 어차피 체류기간에 인터넷을 포함해 e메일과도 작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마음을 비우니 정말 편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 중 한 명이 인터넷카드를 건네주었다. 별로 쓸 일이 없다고 했다. 속으로 “역시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포기하셨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인터넷을 사용해 보았다. 그런데 생각 외로 속도가 빨랐다.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할 정도의 속도였다. 회의장에서 참가자들이 컴퓨터를 열심히 사용한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그들은 기분 좋게 인터넷 접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격도 지난해 15쿡(CUC·쿠바의 화폐단위)에서 5쿡으로 많이 내렸다. “이런, 1년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네.”



민박으로 옮기면서 주인에게 와이파이가 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는 그런 거 없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정엔 인터넷 설치가 금지돼 있었다. 인터넷을 하려면 와이파이가 설치된 공원에 가야 한단다. 다행히 민박집에서 400m 떨어진 곳에 와이파이 공원이 있었다.



쿠바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극히 제한돼 있다. 지난해 아바나 35개 지역에 와이파이 공공장소를 설치해 놓았다. 그 기술은 중국 화웨이가 제공했고, 한 번에 50~100명 정도 동시 접속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는 호텔도 있고 공원도 있다. 1시간에 2쿡 하는 인터넷카드를 구입해 사용하는데 속도는 비교적 빠르다. 공원에는 암표상이 3쿡에 와이파이카드를 판다. 참고로 나시오날호텔에서는 7쿡, 내가 묵었던 호텔에서는 5쿡에 팔았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수요가 있으면 암시장은 형성된다는 생활의 진리가 여기에도 있다. 와이파이 지역은 인터넷 사업뿐 아니라 해외 친척들과 통화를 하느라 항상 북적거린다.



1시간 사용료가 거의 1주일 임금에 가까우니 공원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이들에게 와이파이 공원은 야외 사무실이나 다름없다. 와이파이가 설치된 호텔 로비도 전에 없이 북적거린다. 공원에 바짝 붙어 있는 집에선 재수 좋은 경우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고 한다.



쿠바는 인터넷 접속이 극히 어려운 국가 중 하나다.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시장개방 정책을 펼쳤을 때 초미의 관심사가 인터넷 허용 문제였다. 에어비앤비(Airbnb)가 쿠바 민박을 인터넷에 올려놓지만 민박에서 인터넷 사용은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외국인 상대로 관광사업을 하는 이웃 다미안에게 물었다. “어떻게 광고하니?” “인터넷으로 한다.” “집에 인터넷이 없는데 어떻게?” “집 근처 와이파이 공원에서 한다. 웹사이트도 있고 트립어드바이저나 페이스북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웹사이트도 있어?” “해외에 있는 친척을 통해 운영한다. 비용을 아끼려고 컴퓨터로 답신 등을 미리 준비했다가 인터넷 접속을 하면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낸다.”



집중해서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인터넷 접속을 극히 제한하고 있지만 이미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사용하고 있다. 다미안에 따르면 인터넷 암시장도 있다. 와이파이 공원에서 사제 라우터를 설치해 놓고 인터넷 접속 장사를 하는 것도 봤다고 한다. 그리고 해외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뉴스·자료·동영상·드라마 등을 휴대전화 등으로 다운받아 USB나 CD에 담아 파는 사업도 있다고 한다. 그 수요가 폭발적이라 지금 쿠바에서 가장 유망한 사업 중 하나라고 한다.



와이파이는 국영 통신회사인 에텍사(ETECSA)가 독점하고 있다. 나우타(Nauta)라는 와이파이 시스템을 사용한다. 와이파이카드를 사서 12자리 접속번호와 12자리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인터넷에 접속한다. 참고로 인터넷은 반드시 로그아웃해야 한다. 그냥 컴퓨터를 끄면 사용시간은 계속 흐른다. 지난해 판매한 와이파이카드는 160만 개라고 한다. 와이파이 공원에서 만난 훌리아노는 e메일은 미리 작성해 바로 보내고 스카이프로 통화한다고 한다. 요즘 자영업이 허용되고 부동산 매매가 가능해지면서 해외 친척과 사업 통화를 자주 한단다. 지금은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친척과 식당 차릴 집을 찾고 있다고 했다.

1 구글이 쿠바 아바나에 설치한 테크놀로지 센터. 이곳에선 무료로 초고속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AP=뉴시스]

2 아바나 시민들이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공원에서 휴대전화 등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조희문]



자본주의는 이미 쿠바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해외에 있는 쿠바인들의 영향이 큰 듯했다. 200만 명 넘는 쿠바인이 해외에 있으니 최소한 절반 이상의 쿠바인이 친척을 통해 해외에 접속돼 있는 것이다.



지금의 쿠바는 해외 친척이 있는 쿠바인과 그렇지 않은 쿠바인으로 나뉘어 있다. 한쪽은 해외 송금을 받고 자영업이 가능한 층이고, 다른 한쪽은 그러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개방과 함께 쿠바는 벌써 빈부 차이 문제로 사회가 들썩이는 모양새다. 과거 피델 카스트로가 빈부격차와 흑백 차별을 없앤다는 슬로건으로 혁명을 달성했다면 지금은 그동안 꾹 눌러왔던 이 두 가지 사회 이슈가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집에서의 인터넷 접속은 문화·예술·과학·연구원 등 정부가 허가하는 극히 제한된 사람들만 가능하다. 그 비율은 2014년 기준으로 3.4%밖에 되지 않는다. 쿠바의 인터넷 보급은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2015 인터넷 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쿠바는 중국·시리아·이란·에티오피아 다음으로 인터넷 자유가 없는 나라다.



하지만 쿠바 정부는 최근 아바나 비에하 지역 가정집에 광대역 광섬유통신망을 시험적으로 설치한다고 밝혔다. 가설은 중국 화웨이가 맡는다. 대단한 비약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개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와이파이 공원이나 식당에서 만났던 쿠바 사람들은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마디로 인터넷은 대세라는 것이다. “인터넷 설치하면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 볼 수 있어요?” 오히려 내게 반문한다.



쿠바 정부는 2020년까지 기업의 90%, 가정의 50%를 광대역 인터넷으로 연결할 것이라는 거창한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국민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것은 시간과 방식의 문제인 듯하다. 최근 쿠바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쿠바의 인터넷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 더 큰 범위의 계획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은 아바나에 있는 미술가들의 작업공간에 예술과 기술을 결합하는 첨단 온라인 테크놀로지 센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케이초’(Kcho)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조소 작가 알렉시스 레이바 마차도가 운영하는 미술가들의 작업공간 단지에 ‘구글플러스케이초. 모르(Google+Kcho.Mor)’라는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스튜디오에는 노트북컴퓨터와 휴대전화, 가상현실(VR) 고글 등이 설치돼 있다. 일반인이 쓸 수 있는 것보다 70배 빠른 초고속 인터넷 접속 회선도 있다.



다른 통신 분야에서도 개방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은 여권만 있으면 휴대전화 계정을 개설할 수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외국인이 칩을 사려면 현지인에게 부탁해야 했다. 미국 이동통신업체 스프린트와 버라이즌은 쿠바에서 휴대전화 로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 IDT 도메스틱 텔레콤은 지난 3월 쿠바 에텍사와 장거리 직통전화를 16년 만에 개설했다.



쿠바 국민의 높은 교육 수준을 감안한다면 인터넷 개방이 앞으로 쿠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인프라가 낙후됐으니 오히려 처음부터 4G 등 최첨단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책 의지만 있다면 유·무선으로 쿠바를 연결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조희문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