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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스페인 요리 먹으면서 남 돕는 아주 멋진 식당

중앙선데이 2016.04.03 00:30 473호 28면 지면보기

‘직접 훈제한 이베리코 삼겹살과 감자 퓨레, 로메스코 소스’. 체리나무에 훈제한 스페인 이베리코 흑돼지 살이 쫄깃하면서 고기 향이 풍부하다. 새콤·달콤·고소한 소스가 느끼한 맛을 줄여주면서 잘 어울린다.



아주 멋진 식당을 하나 알게 됐다. 그저 두말없이 “멋지다”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76- 떼레노

우선 이곳은 자신들을 위한 영리 추구가 아니라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겠다고 만들어진 기업이 운영한다. 이른바 ‘사회적 기업’이다. 소외받는 취약 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영업 활동을 해서 얻는 이윤을 사회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설립된 기업을 말한다.



두 번째로는 이 식당이 그저 그런 평범한 식당이 아니라 고급 요리를 중심으로 하는 파인 다이닝(Fine dining) 레스토랑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을 내세워 사람들의 호의에 의존해 쉬운 음식으로 쉽게 매출을 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고급 음식의 세계에서 맛과 품질로 승부해 이윤을 만들어 보겠다고 정면으로 당당히 나선 것이다.



세 번째는 스페인식 파인 다이닝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스페인 음식은 역사도 짧고 저변이 약해서 ‘타파스(Tapas·소량으로 나오는 전채 요리)’ 위주의 단품 요리가 대부분이다. 정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거의 찾기 어렵다(나는 못 봤다). 스페인이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고급 미식으로 유명한 나라인데 단품 요리만 먹는다는 것은 마치 모차르트의 음악 중에서 교향곡이 빠진 소품만 듣는 격이어서 많이 아쉬웠다.



네 번째, ‘열정 페이’라는 이름의 착취를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유명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배우고 싶은 청년들을 인턴십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고용해서 일을 시키는 경우 대개 60~70만원 정도만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적지만 요리를 배울 수 있으니 당연하다는 식이다.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당연히’ 법적으로 정해진 최저 임금을 지불한다. 한 달에 130~140만원 정도니까 거의 두 배의 금액이다. 이러니 “멋지다”는 찬사를 듣는 것은 당연하다.



삼청동 근처 북촌에 있는 ‘떼레노(Terreno)’가 바로 그곳이다. ‘오요리 아시아(Oyori Asia)’에서 운영하고 있다. 소외 계층 청소년과 이주 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이지혜(42) 대표가 공익 재단들과 함께 출자, 설립한 사회적 기업이다. 이 대표는 원래 나름 ‘잘나가는’ IT 분야에서 일을 하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결국 직접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떼레노(Terreno) :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71번지 전화 02-332-5525 월요일은 휴일이다. 세트 메뉴 6만5000원부터. 단품 요리도 있다. 날씨 좋을 때면 야외 자리에서 와인 한잔 해도 좋다.



스페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시작하게 된 것은 신승환(33) 셰프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신 셰프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요리사로 일했고, 특히 스페인의 고급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들에서 경력을 쌓아온 실력 있는 셰프다. 이 대표가 개인적 인연을 통해 신 셰프에게 이주 여성을 위한 요리 교육 자원 봉사를 부탁한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도 외국에서 일하면 이주 노동자가 된다. 그렇게 외국에서 일하면서 차별과 소외를 경험했던 신 셰프가 그 취지에 공감하면서 참여했고, 두 사람이 의기투합 해오다가 2014년 11월 함께 떼레노를 오픈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이 곳은 오요리 아시아의 사회 사업을 위한 수익을 만드는 통로가 될 뿐만 아니라 이주 여성과 사회 소외 계층 청소년의 직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더 결정적으로 멋진 것은 이 곳의 음식이 맛있다는 것이다. 사실 식당이란 아무리 설립 취지가 좋고 그림이 그럴듯하다고 하더라도, 음식의 맛이 없으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이 세상 이치다. 각종 허브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해 맛이 풍부하면서 이국적이고, 마늘·쌀 등을 사용해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스페인 고급 요리들이 입에 척척 달라붙는다.



‘자연주의’ 음식을 추구하는 점도 마음에 든다. 야채와 허브를 텃밭에서 직접 길러 사용하고, 모양을 만들기 위한 보정제나 안정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생선도 생물을 사서 직접 손질한 다음에 사용하는 등 모든 식재료를 직접 준비해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신 셰프의 요리 철학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가 멋진 곳이니 내가 거두절미하고 “멋지다”라는 말로 소개할 수밖에 없다. 귀하고 특별한 곳이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와 가까운 친구들은 당분간 이곳에서 ‘죽칠’ 각오를 해야겠다. 그렇게 밀어붙여도 음식이 맛있으니까 별로 찔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마음은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던 사회 봉사활동도 간접적으로나마 할 수 있으니 그게 어딘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백배 낫다. 이 정도면 이 곳을 권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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