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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트럼프 현상, 남의 일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6.03.31 19:18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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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우리 선거에서 부동층은 종종 좀 더 이성적인 유권자로 이해되곤 한다. 대세 순응의 지역투표를 넘어 이런저런 가능성을 따져 본다는 점에서 부동층 유권자는 합리적이라 할 수도 있고 모든 후보의 막판 타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과연 그들 앞에 놓인 것은 행복한 고민이고 즐거운 선택일까?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온 이번 선거에서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남아 있는 선택은 대략 세 가지다. 기존의 성향대로 지지 정당에 충성투표를 하거나 투표장에 가지 않는 퇴장을 하거나 혹은 무개념의 정당정치에 대한 항의를 담아 투표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어떤 대안도 시원스러운 선택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선택지가 많은 듯하지만 실은 화석화돼 버린 기성 정당들의 담합구조 속에 갇혀 있다는 답답함만 커질 뿐이다.

가장 손쉬운 대안으로 지역이나 이념에 따라 충성투표를 선택한다고 해서 그다지 맘 편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광주의 눈 밝은 유권자들이라면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서 누굴 선택하는 게 충성투표인지에 대한 확신은 희미할 것이다. 한편 대구에서 김부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나 전남 순천에서 이정현 후보를 응원하는 유권자들은 지역주의 정치에 대한 항의를 표현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찾는다는 보람은 있지만 변화의 불씨는 여전히 자그마할 뿐이다. 결국 부동층 여부를 떠나 유권자의 거의 절반은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는 퇴장을 택할 것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유권자들은 4년 만의 주권 행사가 미리 짜인 좁은 선택지 안에서 이뤄지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번 비례대표 투표용지에는 무려 21개 정당의 이름이 올라가게 되지만 3~4개의 주요 정당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군소정당은 자신을 알릴 기회조차 제대로 가져 보지 못한 생소한 이름들이다. 유권자들이 충성투표를 하든, 항의투표를 하든, 퇴장을 하든 여전히 좁디좁은 미로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드는 까닭은 한국 정당정치가 지난 30년간 강력한 독과점체제로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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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주화 이후 숱한 정당이 명멸해 왔지만 지금의 양대 정당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뿌리는 사실 발전국가 시대의 여당과 야당으로부터 왔다. 경쟁의 문호가 넓어지면서 지난 30년간 숱한 정당이 양대 정당에 도전했지만 모두들 사라졌거나 혹은 양대 정당에 흡수·희석돼 왔다. 그 밖에는 정의당과 아직 그 바람의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운 국민의당이 양대 정당의 틈바구니에서 힘겹게 경쟁하고 있을 뿐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질긴 생존력도 각별하지만 사실 독과점 정당체제는 강력한 법적·제도적 장치 덕분이다. 정당법·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등에는 기성 정당들의 독과점을 유지·보호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혁신가들의 진입을 가로막는 진입장벽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예컨대 정당법은 정당이 성립하려면 전국에 최소 5곳 이상의 시·도 당을 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각 시·도 당에는 최소 1000명의 당원을 확보하고 있어야만 한다(정당법 17조, 18조). 변화를 꿈꾸는 새로운 혁신가들이 간신히 정당의 성립 요건을 채우더라도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린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하거나 국회의원 당선자를 내지 못한 정당은 법적 등록이 취소되고 소멸된다(정당법 44조).

반면 거대 정당들에는 꿀과 같은 특권들이 법률로 보장된다. 20인 이상의 국회의원을 거느린 교섭단체 정당은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선거보조금, 경상보조금 전체 액수의 절반을 우선적으로 똑같은 금액씩 배분받고 나머지 금액을 의석수에 따라 배분받는다(정치자금법 27조). 최근 국민의당이 출범할 때 현역 의원 20명 확보에 절실하게 매달렸던 까닭은 다름 아닌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수십억원의 국고보조금 때문이었던 셈이다. 결국 이 같은 독과점체제의 제도적 토대가 유지되는 한 우리 유권자들은 아무리 기성 정당들의 행태가 불만족스러워도 기성 정당들이 펼쳐 놓은 선택의 미로 속에서 헤어날 수 없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독과점 정당의 폐해가 문제의 끝이 아니라는 데 있다. 독과점 정당의 무감각과 사회적 약자들의 경제적 박탈감이 결합될 때 분노의 정치라는 무서운 싹이 자라게 된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에서 보듯이 약자들의 경제사회적 박탈감을 등에 업은 반(反)정당, 분노의 정치는 안락하게 지내 온 독과점 정당들을 초토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분노의 정치는 한 사회의 이성과 양식마저 함께 휩쓸어 버린다. 트럼프 후보의 인종 차별, 성 차별 발언, 그리고 해괴한 막말 시리즈를 상기해 보라. 절반에 이르는 부동층과 사회적 약자들 사이에서 분노의 싹이 더 자라기 전에 우리는 무언가 변화의 실마리를 찾아야만 한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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