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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반은 식사, 과제는 상 차리기…배려·예법 쏙쏙 소화

중앙일보 2016.03.31 02:20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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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건양대의 ‘밥상머리 교육’ 수강생들이 지난 28일 명곡정보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양지서당 유정인 훈장에게 예절을 배우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28일 오후 5시 충남 논산시 건양대 명곡정보관 귀빈식당. 이 학교 학생 30명이 자리한 가운데 도포 차림에 갓을 쓴 40대 남성이 들어섰다. 논산시 연산면 양지서당 유정인(45) 훈장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소학제사(小學題辭)’가 적힌 A4 용지를 나눠주고 낭독을 시작했다. 유 훈장이 먼저 읽고 학생들이 따라 했다.

건양대 ‘밥상머리교육’ 개설 3년째
수강생 몰려 2분이면 신청 마감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니라(하늘에 시작·왕성함·거둬들임·저장이라는 네 가지 도리가 있듯이, 인간에게는 인의예지라는 네 가지 핵심 도덕이 있다).”

『소학』은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유자징(劉子澄) 이 스승인 주자(朱子·1130~1200)의 지시에 따라 편찬한 유학 교육서이고, 제사는 소학의 머리말이다.

50여 분간의 낭독과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은 식판에 음식을 담아왔다. 유 훈장과 학생들은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했다. 식사 도중 유 훈장의 교육은 계속됐다. “농부는 물론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먹을 수 있다. 식사 때도 남을 배려해야 한다. 음식물이 튀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유 훈장은 절하는 법 등을 설명하고 실습도 했다.

건양대가 교양과목(2학점)으로 개설한 ‘밥상머리교육’ 수업 장면이다. ‘밥상머리교육’은 2014년 2학기에 시작해 올해로 3년째다. 목표는 인성교육이다. 부모와의 유대, 식사와 인사예절,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소통, 나눔 등을 배운다. 김희수(89) 총장은 “요즘 대학생들이 지식 쌓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기본예절 등 인성을 기르는 데는 소홀한 것 같다”며 “부모와 함께 식사하면서 인성을 다듬어온 우리 전통문화에서 생각해 냈다”고 말했다.

두 시간 수업의 절반 정도는 밥을 먹으며 진행하고, 나머지는 강의·토론을 한다. 강사진은 대부분 외부 인사들로 매주 바뀐다. 지난 14일에는 나태주(71) 시인이 ‘올바른 언어생활’을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풀꽃’ 등 자신의 시를 읽어주고 “올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행동도 바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결혼이주여성·경찰관·극단 대표·시각장애인 등도 참여한다. 오는 5월 강의할 예정인 몽골 결혼이주여성 어용툴후무(33)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상처받는 상황 등을 설명하고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해주길 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동희(21·여·의료뷰티학과 2년) 학생은 “강의를 들으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하게 됐다”며 “’말하기 전에 머리로 두 번 생각하라’는 훈장님의 말씀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이 강의는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과제도 색다르다. 부모님께 밥상을 차려드리고 30분간 대화하기, 부모 대신 장보기 등이다. 학생들은 어버이날에는 직접 요리를 만들어 대접한다.

이병임(50·여·상담심리) 담당 교수는 “학기 중 용돈을 모아 요리를 할 수 있게 과제를 학기 초에 미리 내줬다”고 귀띔했다. 학생들은 요리 과정이 담긴 동영상과 부모님과 대화한 내용을 적어 제출해야 한다.

지난 학기 이 수업을 수강한 김재혁(금융학과 2년) 학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요리를 해드렸다”며 “음식을 만들면서 그동안 엄마가 참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수업은 수강신청 2분 만에 정원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이 교수는 “시인·시각장애인·새터민 등 여러 분야의 강사를 접할 수 있고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어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 더욱 다양한 강사진을 꾸려 수업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논산=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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