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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50대 중년기자, 나의 첫 선거

중앙일보 2016.03.31 01:10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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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며칠 전 아파트 게시판에 제20대 총선 사전투표 안내문이 붙었다. 투표소 목록에 포함된 동네 동사무소(주민센터)를 찾아보았다. 굳이 사전투표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달아오른 선거에 대한 원초적 관심 때문이리라.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봤다. “내가 언제 처음으로 선거를 했더라. 제법 흥분했던 것 같은데, 그때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찾아갔다. 대통령·국회의원·지방선거 등 역대 선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자료를 훑었다. 옛일이 되살아났다. 내가 처음 투표를 한 건 1985년 2월 12일 열린 제12대 총선이었다. 딱 31년 전,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당시 내가 살던 지역구는 서울 성북구 갑·을이었다. 지금과 달리 중선거제였다. 선거구별로 다수 득표자 2인이 선량(選良)으로 뽑혔다. 기자의 선거구에선 신한민주당 이철 후보와 민주정의당 김정례 후보가 당선됐다. 따지고 보니 이번까지 모두 아홉 번의 총선을 치르게 됐다.

12대 총선은 ‘선거혁명’으로 불렸다. 제5공화국 전두환 정부 시절, 야당의 기세가 놀라웠다. 선거 채 한 달도 안 남기고 창당한 신한민주당은 92개 지역구에서 67석을 차지했다. 군사정권에 대한 불만과 20대 젊은 유권자의 투표 열기가 주요 원인이었다. 그때 불붙었던 민주화에 대한 갈망은 2년 후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국민의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 6·29 선언으로까지 이어졌다. 고달팠지만 나름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경제가 뒷받침했다. 85년 G5 정상회담을 계기로 달러·국제금리·유가가 동시 하락하는 ‘3저 시대’가 열리면서 고도성장이 계속됐다.

흥미로운 통계 하나. 85년 한국의 중위연령(한국인 전체를 연령 순으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나이)은 24.3세. 지난해에는 40.8세였다. 30년 사이 16.5세나 ‘늙은’ 셈이다. 지난해 9.2%까지 급등한 청년실업률은 한 세대 전 상상할 수 없는 수치였다. 물론 한국만의 사정은 아니다. 성숙기에 접어든 국가들이 직면한 공통 과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라고, 투표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을까. 40~50대의 분발과 자각이 더 필요해 보인다. 30년 전보다 되레 어깨가 무거워진다. ‘희망 난민’으로 불리는 요즘 청춘들을 ‘투표 난민’으로 내몰 순 없지 않은가.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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