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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와 중기] 인공코 찍어내는 시대…바이오 3D프린터로 미래 잡다

중앙일보 2016.03.31 00:02 경제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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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산디지털 단지 사무실에서 유석환 로킷 대표가 자사의 바이오 3D프린터로 제작한 두개골 모형을 들고 있다. 로킷은 ‘가성비’ 높은 바이오 3D 프린터로 국내 의료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사진 주기중 기자]


미국 CBS뉴스에 따르면 올 1월 미국에서 의료용 3D프린터로 인공 코를 출력, 수술을 통해 한 소년이 코를 이식받는 데 성공했다. 그만큼 3D프린팅 기술이 진일보했다.

‘인비보’ 만드는 유석환 로킷 대표
인공장기·두개골 등 이식 연구용
세계 첫 ‘복합형’ 바이오 3D프린터


한국에서도 ‘바이오 3D프린터’로 출사표를 던진 스타트업이 있다. 로킷(ROKIT)이다. 이 회사는 최근 조직공학 연구용 바이오 3D프린터 ‘인비보(INVIVO)’를 개발, 지난 25일 한국생체재료학회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첫 시연회를 가졌다. 올 하반기 본격 상용화가 목표다. 창업자인 유석환(60) 로킷 대표에게 연구·개발(R&D)이 쉽지 않았겠다고 묻자 “지난해 365일 중 360일을 일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로킷이 만든 인비보는 세계 최초의 ‘복합형’ 바이오 3D프린터다. 고체인 스캐폴드와 액체인 바이오잉크를 동시에 출력 가능하다. 기존엔 고체나 액체 둘 중 하나만 재료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스캐폴드는 경조직용, 바이오잉크는 연조직용입니다. 그만큼 다양한 인체 조직의 이식 연구에 요긴한 제품이 될 겁니다.”

인비보로 만든 3차원의 세포 구조체는 간이나 신장 같은 인공 장기뿐 아니라 두개골, 턱뼈, 피부 등의 이식 연구에 쓰일 수 있다. 이를 위해 그간 산업통상자원부 지원 아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서울대병원 등과 함께 바이오 3D 프린팅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인비보의 강점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해외에선 웬만한 의료용 3D프린터가 대당 2~3억원을 호가하는데, 인비보는 1500만~3000만원대로 가격이 예정됐다”는 설명이다. 저렴할수록 정밀성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유 대표는 “그렇지 않다”며 “해외 제조사들이 지나치게 고가 정책을 펼쳐왔고, 기술 발전으로 시장이 커질수록 가격 거품이 걷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요즘 말로 ‘패스트팔로어(빠른 추종자)’였다. 2012년 세계 정보기술(IT) 트렌드를 연구하다가 3D프린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2013년 로킷을 설립해 주로 가정용의 ‘보급형 3D프린터’로 사업을 키웠다. 3년 지난 지금은 바이오 3D프린터를 통해 해외에서도 통하는 ‘퍼스트무버(선도자)’로 변신하려는 참이다.

그는 “보급형 3D프린터는 피규어 같은 장난감을 만드는 취미용 IT기기로 흥미를 끌지만 수요가 많지 않은데다, 그마저도 레드오션이 될 분위기여서 바이오 3D프린터를 노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바이오’인가. 우선 전망이 밝으면서도 블루오션이라는 판단이다. 시장조사업체 ID테크엑스에 따르면 바이오 3D프린팅 시장은 2024년경 60억 달러 규모로 전체 3D프린팅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해외 기업들의 움직임도 시작됐다. 지난해 글로벌 기업인 P&G가 바이오 3D프린팅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공개했다. 화장품 기업 로레알도 미국 스타트업 오가노보와 손잡고 바이오 3D프린팅 사업을 키우기로 했다.

유 대표 개인의 경험도 작용했다. 그는 ‘모험 정신’이 투철한 기업가다. ‘대우맨’ 출신인 그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측근으로 일하며 모험정신을 키웠다. “하루는 회장님이 다짜고짜 ‘폴란드로 가라’는 겁니다. 동유럽의 잠재력이 크다는데, 일단 부딪혀보자는 거였죠. 아무 연고도 없는 현지에서 언어를 배우면서 ‘맨땅에 헤딩’ 식으로 자동차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맨땅’에서 차를 파는 데 성공했다. 그가 대우차 폴란드 유럽본부장으로 있는 동안 대우차는 동유럽 시장 점유율을 30%로 끌어올리며 선전했다. 대우맨들은 그때 배운 모험정신을 잊지 않았다. 대우차 출신들이 주축이 돼 만든 기업이 코스닥 시총 1위의 바이오시밀러 전문기업 셀트리온이다. 유 대표는 셀트리온 계열사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창립 멤버로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과도 정기 모임을 가지는 사이다. 셀트리온의 성공을 보면서 고령화 사회에 바이오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여실히 느꼈다.

실제 로킷이 준비 중인 또 다른 신제품 ‘에디슨파마(가칭)’도 바이오 3D프린터다. 올 6~7월 출시를 앞둔 이 제품은 개인 맞춤형 약제를 만들 수 있는 3D프린터다. 예컨대 기성 약제는 ‘500㎎짜리를 하루 성인 두 알, 어린이 한 알 복용’과 같은 식으로 복용량이 뭉뚱그려져 나온 경우가 대다수다. 그 중간 연령대의 청소년들, 혹은 체구가 성인처럼 큰 어린이는 몇 알을 복용해야 할지 애매하다. 공장에서 약제를 대량 생산하다보니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 입장에서 용량이 딱 정해진 탓이다. 3D프린터로 약제를 만든다면 소비자 위주로 보다 세밀하게 용량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유 대표는 “틈새시장 공략에 관심을 가진 국내 일부 제약사와 공급 계약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유 대표는 바이오 3D프린터로 승부수를 던진 만큼, 3D프린팅 재료도 인체에 무해한 것만 넣도록 예전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올 초부턴 미국 식품의약국(FDA) 규격을 충족하는, BPA(Bisphenol-A, 어린이의 뇌손상·성 조숙증·유방암 등을 유발하는 환경호르몬)에서 자유로운 친환경 재료만 쓴다. 여기서도 유 대표 개인의 경험이 작용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손자가 3D프린터로 만들어준 인형을 입으로 물고 코로 냄새 맡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들 교육용으로도 많이 쓰이는 게 3D프린터인데 친환경 재료를 쓰지 않으면 큰일이 나겠다 싶었죠.”

로킷의 올해 목표는 매출 100억원 돌파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경영 철학을 직원들과 공유하려 노력하고 있다. “물건을 팔면 ‘을’이지만 비전을 팔면 ‘갑’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멀리 볼 줄 아는 기업가이고자 합니다.” 유 대표는 강조했다.
 
◆유석환 대표=1957년생.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나왔다. 졸업 후 곧바로 대우그룹에 입사했고, 39세에 최연소 임원으로 대우자동차 폴란드 유럽본부 전무이사가 됐다. 이후 타이코인터내셔널 한국법인 사장, 셀트리온헬스케어 사장을 역임했다. 2013년 로킷을 창업했다.

글=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사진=주기중 기자

※자세한 내용은 이코노미스트 1328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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