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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트럼프와 한국의 핵 개발

중앙일보 2016.03.30 01:40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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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주말에 한 발언 때문에 갑자기 한반도가 미국 대선 캠페인의 중심에 놓이게 됐다. 26일 게재된 뉴욕타임스(NYT) 인터뷰 기사에서 트럼프는 외교 정책에 대해 그가 지금까지 해온 발언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알맹이 있는 말을 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를 확보하려고 한다면 이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는 또 한국·일본으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킬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미국이 한·일 양국의 방위를 떠맡을 필요성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발언은 한국 독자들에게 충격이었겠지만 좋은 소식이 있다. 한·미, 한·일 동맹을 저해하는 그의 발언에 대해 워싱턴 정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포퓰리스트가 하는 말로 치부된 것이다. 이견이 없었다. 트럼프의 구상에 수긍하는 사람이 나왔다면 나쁜 소식이었겠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공화당 경선에서 선두 주자인 트럼프는 미국-아시아 관계가 아시아 쪽만 수혜자인 일방적인 거래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미국은 정치적·경제적 자본을 아시아에 투자하는 만큼 이득도 보고 있다. 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은 아시아에서 ‘산소’ 같은 존재다. 있을 때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라지면 모두가 질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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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아시아 주둔은 미국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은 구시대적인 자선사업을 하려고 아시아에 있는 게 아니다. 만약 트럼프가 실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자본 유출이 시작돼 코스피지수(KOSPI), 닛케이지수, 상하이종합지수가 폭락할 뿐만 아니라 미국 주식 시장 또한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 지역을 자신의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으로 편입시키겠다는 욕구를 갖게 될 것이다. 수세기에 걸친 미국의 ‘태평양 국가’ 전통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 트럼프는 그 자신이 강조해 온 것처럼 기업인이다. 기업인인 그는 뼛속까지 실용주의자다. 만약 트럼프가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안보적·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브리핑을 받게 된다면 뉴욕 출신의 부동산 거물인 트럼프는 그가 표방해온 고립주의에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마침 오바마 행정부가 다음주 워싱턴에서 개최될 핵안보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왔다. 한국은 비확산체제의 일원이다. 또한 한국은 핵 운용, 핵 물질, 핵 기술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주도하는 국가 중 하나다. 따라서 트럼프의 발언은 한국의 입장과 배치된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은 한국 내부에서 일부 정치인과 신문이 제기한 ‘핵 개발이 선택 가능한지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그러한 논의는 일부 미국 인사들의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그들은 1970년대 한국의 비밀 핵 개발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핵 개발을 시도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건실한(upstanding) 시민에서 ‘악당(rogue)’의 위치로 떨어질 것이다.

핵무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이 핵무장 시도로 국제사회의 ‘악당’ 낙인을 불사한다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내심 중국을 대북(對北)제재에 행동으로 나서도록 압박하기 위해 핵무장 논의를 꺼내 든 것이다. 핵 개발을 거론한 사설이 나온 1월 말이라는 시점을 살필 필요가 있다. 당시 중국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이 두 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두고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이번달 초 중국이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2270호에 서명하자 핵무장 주장은 잦아들었다.

박근혜 정부와 그 이전의 이명박 정부는 핵무장이라는 선택에서 아무런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핵무장을 선호하는 응답자도 나오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이 미군의 전술핵무기 한반도 재배치인지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게 있다. 2015년 6월 서명된 새로운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핵연료 재처리나 연료 농축 활동을 할 수 없다. 따라서 핵연료 주기 전체를 확보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차단돼 있다. 예정대로 이번 봄에 원자력협정에 따른 고위급 위원회 회의가 열린다. 회의는 협정에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회의 개최를 즈음해 한국의 핵 개발에 대해 매체들이 추측 기사를 낼 수도 있겠지만 핵 개발은 의제 자체가 아니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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