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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는 무료 양로원? 일본 고령층 ‘일부러 범죄’ 늘어

중앙일보 2016.03.29 02:15 종합 14면 지면보기
초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일본에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의식주가 해결되는 교도소행을 택하는 고령자들이 늘고 있다. ‘노후 파산’으로 인해 빈곤층이 된 ‘하류(下流)노인’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일본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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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등 경범죄 35%가 60세 이상
기댈 곳 없는 독거 노인 재범 많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 일본의 소비자연구기관 ‘커스텀 프로덕츠 리서치(CPR)’의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일본에서 절도 등 경범죄의 35.1%를 60세 이상이 저질렀다고 전했다. 60세 이상 전과자 중 비슷한 범행을 6차례 이상 저지른 비율은 40%나 됐다. 6번 이상 동종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간 60세 이상 재소자는 1991년부터 2013년 사이 460%나 늘었다.

일본에서 고령자들이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치는 등 자잘한 범죄를 되풀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도소에 가기 위해서다. 교도소에 가면 식사와 잠자리가 해결되고 치료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FT는 “음식과 잠자리가 변변치 않아도 교도소에서 살면 생활 여건이 기초연금 생활자보다 낫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일본 독거 노인의 기초연금은 연 78만 엔(800만원)으로 최저생계비(98만 엔)의 75% 수준이다. 연금으로는 기본적인 생계를 꾸리기 힘들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에선 200엔(2050원)짜리 샌드위치를 훔치면 2년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수감자를 먹이고, 재워주며, 교도소를 유지·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840만 엔(8600만원)에 달한다. 수감자 한 명에 연간 420만 엔(43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수감자 1명에 드는 비용이 기초연금의 5배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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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이상이 경범죄를 반복해 저지르는 이유는 또 있다. 이들은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풀려나도 의지하거나 범죄를 만류할 가족이 없다. 도테우치 아키오(土堤內 昭雄) NLI 리서치 수석연구원은 “고령자들의 40%는 혼자 산다. 독거 노인은 돈과 가족이 없기 때문에 출소해도 다시 범죄를 저지른 뒤 교도소에 가는 악순환을 반복하곤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교도소는 고령화되고 있다. 신규 수감자 중 60세 이상 비중은 2004년 9.8%에서 2014년 17.2%로 가파르게 올랐다. 교도통신은 “교도소 등 교정시설들은 양로원이나 요양시설처럼 복지시설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도소에 고령자가 늘며 이들의 의료비 지출 등 비용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교도소 운영 비용은 연간 2300억 엔(2조36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60세 이상 일본 교도소 수감자의 14%가 치매 증상을 보이며 교도소가 병원 역할까지 떠안게 됐다.

일본 고령자의 범죄 문제는 고령자 빈곤층 증가와 연관돼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09년 679만 명이던 빈곤 고령자는 2014년 893만 명으로 늘어났다.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 4명 중 1명은 빈곤층이라는 얘기다. 자식이 부모에게 얹혀 살며 부모와 자식 모두 경제적 수렁에 빠지는 ‘파라사이트(パラサイト·기생) 파산’도 일본 고령자들을 위협한다. 일본은 2060년에는 65세 이상이 인구의 40%에 달할 전망이다.

고령자 빈곤 문제는 한국이 더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자 빈곤율은 49.6%로 34개 회원국 중 1위다. 파산 선고를 받은 사람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으로 조사됐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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