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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이겨낸 연중무휴 약사, 수능 만점 택시기사 아들

중앙일보 2016.03.26 01:45 종합 12면 지면보기
| 각 당이 추천한 20대 총선 새내기 12명

국회의원은 ‘4년 계약직’이다. 4·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현역 의원 157명 중 96명만 공천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108명(컷오프 발표 시점 기준) 중에선 74명이 살아남았다. 현역이 나간 자리에는 새 인물이 들어온다. 그러나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총선에 나갈 신인들은 얼굴을 알릴 기회를 놓쳤다. 중앙일보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에서 각각 추천을 받아 주목되는 신인 정치인 12명을 꼽았다. 그들에게 유권자에게 제출할 ‘자기소개서’를 받았다.

| 전문직 출신 많은 새누리당
| 국토개발 전문가, 25년간 부처 근무
| 국민검사, 하버드대 컴퓨터공학도
| “미래세대가 신명나는 나라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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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대변인과 건설정책국장을 거쳐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까지 올랐다. 그러나 중앙부처 공직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정치개척자’의 길을 택했다. 거란의 80만 대군을 맞아 담판으로 강동 6주를 되찾은 서희 선생을 존경한다. 대화와 설득을 통한 상생과 조화의 정치를 실현하고 싶다. 왜 출마했느냐고 물으면 “고향 이천을 사랑하는 애향심”이라고 답한다. 이천을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통해 통일한국의 내륙 중심도시로, 대한민국 중심도시로 이끌어 가겠다. “ 만날 때마다 진실성이 배어 난다”는 말을 듣고 싶다. “ 이천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는 소박하지만 큰 인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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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출신으로 25년간 중앙부처에서 업무수행 능력과 리더십을 갖췄다. 국토부 자동차정책기획단장, 익산국토관리청장 등을 지내면서는 이해관계를 조정·협상하는 능력과 국정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웠다. 정부입법안 등 국회 관련 업무를 통해 국회에 대한 이해도도 갖췄다.

문화를 통한 감성적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틈 날 때마다 연습한 색소폰 실력은 ‘준프로급’이다. 주변에서 “무당이 칼춤을 추는 듯하다”고들 한다. 실의에 빠진 친구들은 “함께 밥을 먹자”고 한다. 넘치는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서다. 이제 내 에너지를 고향에 쏟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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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대통령의 최측근과 정치인 40명을 법의 이름으로 기소했다. ‘차떼기 정당’을 지금의 새누리당으로 탈바꿈시켰다. ‘국민검사’라 불렸지만 지금은 별명이 ‘안짱’이다. ‘안대희 짱!’이란 뜻이라고 한다. 원칙과 소신, 검소함 때문이다. 그간 정치에 실망해서 그런 걸까? 새 인물에게서 희망을 찾는 이가 많다. 그 대표주자가 되고 싶다. 당구 200을 치고 싸이의 ‘낙원’과 에픽하이의 ‘트로트’라는 노래를 즐겨 부른다. 대한민국과 마포가 너무 좋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모범국가로 질주하던 저력을 되살려 다음 세대에게 넘겨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출마했다. 우리의 아들, 딸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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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하면서 대안 없는 비판자나 양비론자가 되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2012년 정치에 참여하면서 가졌던 사회를 바꾸고 싶은 의지를 되살리기 위해 출마결심을 했다. 비례 출마나 연고도 없는 우세 지역구 출마는 요구하지도 않았다. 젊은 신혼부부들이 교통 좋고 아이들 키우기 좋고 치안 좋아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던 89년 상계동의 활기를 되찾아오는 것이 목표다. 이번 선거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도, 대권주자와 정치 꿈나무의 대결도 아니다. 대권에 대한 집착을 가진 후보와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가진 후보의 대결이다. 새누리당 내에서 소멸된 소장파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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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장애인인 줄 모르고 살다가 장애인 우선 공천으로 장애인 대우를 한 번 받아본 기분이다. 두 살 되던 해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지만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며 살아 왔다. 재선 대구광역시의원 때는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위원장을 맡았다. 의사회·약사회·치과의사회·한의사회 등 보건의료 단체와 함께 ‘메디시티 대구’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대구시 약사회장일 때는 시민들을 위해 심야약국(밤샘약국)과 연중 무휴약국을 만들었다. 대구의 일꾼에서 나라의 일꾼으로 나서겠다. 새로운 국회, 새로운 정치, 세상에 약이 되는 정치, 치유의 정치를 하겠다.

|‘흙수저’ 출신 많은 더민주·국민의당
고졸 여성 임원, 건설현장서 막노동
철거민·행상·농부의 아들로 성공신화
“서민 지갑 뚱뚱하게 채워드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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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금수저’들만의 특권세상을 99% 서민의 세상으로 바꾸겠다. 아버지는 택시를 운전하고 가스레인지를 팔아 아들을 서울법대에 보냈다. 아버지는 내 자랑이다. 각화동 상하방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마음으로 정치를 시작한다. 사회적 약자를 먼저 챙기는 국회의원이 되겠다. 그리고 다시 ‘광주정신’이다. 더민주가 정준호를 광주정신의 새로운 미래로 택했다. 광주시민이 키워 주셔야 할 가슴 따뜻한 청년이다. 2001년 수능 만점을 받은 경제전문변호사 정준호가 야무진 열정으로 정치를 바꾸겠다. 광주의 자존심을 세우라는 준엄한 부름에 응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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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진은 사치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전까진 사진 한 장 없다. 6살 꼬마는 새벽마다 쌀을 팔던 엄마를 따라 나섰고, 밤에는 목화솜을 다듬었다.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난 오래 살지 못해. 동생들을 돌봐줘라”고 했다. 16살 소녀는 “알아서 할게”라며 광주여상에 입학했다. 삼성반도체 연구원 보조가 됐고, 첫 고졸 엔지니어가 됐다. 아이를 낳고는 승진에서 떨어졌다. “아이 때문에 못 받아주는 회사라면 다닐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삼성의 첫 고졸 여성임원이 됐다. 고졸 신화가 신화가 아닌 세상, 여성이라서 차별받지 않는 세상, 호남의 아들·딸이 가슴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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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살릴 성공신화 CEO, 분당·판교의 신제품 후보다. 모두가 먹고 살기 어렵다. 수출은 늘지 않고,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었다. 좋은 일자리도, 공정한 경쟁의 기회도 없다. 청년들이 절벽에 매달려 있는데 기성세대는 “왜 노력해서 못 올라오냐”만 한다. 무능한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과 연애·직장·결혼까지 포기한 청년, 희망을 잃어 가는 대한민국을 위해 나섰다.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농부의 아들에서 성공신화를 창조한 진짜 경제전문가다. 도전과 성장의 도시인 분당·판교는 나와 닮았다. 7년을 살며, 10년간 기업을 키웠던 도시다. 여기서 두 번째 성공신화를 함께 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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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때문에 죽음까지 내몰리는 처참한 실정이다. 경제는 암울해지고 희망을 찾기는 어렵다. 여당의 독주를 막고 야당이 수권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치에 참여한 이유다. 삼베짐을 지고 행상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해양학과에 입학한 뒤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법과에 재입학했다. 학생운동을 한 탓에 사법고시 3차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재차 도전했다. 변호사가 돼 16년 넘게 경제투자, 기업통상전문가로 활약했다. ‘새로움’에 기꺼이 부딪쳤다. 또 다른 새로움을 도봉에서 맞이하려고 한다. 도봉 주민과 서민경제에 새 숨을 불어넣을 각오로 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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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나와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밥벌이의 고달픔을 배웠다. 현장에서 새로운 정치, 옳은 정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청년세대, 비정규직의 아픔, 온 가족이 일해도 빚만 늘어나는 현실. 이들을 대변하겠다.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월급을 받도록 하는 ‘차별금지법’을 1호 법안으로 입안하겠다.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은 100만원을, 비정규직은 54만원을 받는 문제가 해결돼야 양극화가 해소된다. 그래야 경제 활성화도 가능하다.

은평에서 초·중·고를 나온 연신내 ‘행운식당’의 둘째 아들이다. 사랑하는 은평주민과 월급쟁이의 ‘행복할 권리’를 지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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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지역민과 함께 10년을 뛰었다. 광주지검 부장검사를 끝으로 검찰에서 나온 뒤 무료변론 등 인권변호사로 세상을 밝혀 왔다. 또 JTBC 등에 출연하며 정치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저의 평론은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원인분석이 명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약자와 서민, 중산층 모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내 자신부터 ‘흙수저’ 출신이다. 국민의 슬픔을 가슴으로 빨아들여 이를 원동력으로 한 정치를 하겠다. 지난 10년, 광주 북구 주민들이 주신 한 말씀 한 말씀을 깊이 새겨 서민과 약자를 위한 정치, 책임 있는 정치를 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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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다니던 30세에 사법시험에 도전해 변호사가 됐다. 마음대로 부가서비스를 바꾸던 국내 1위 신용카드사와 8년간 싸워 이겼다. SK텔레콤의 로밍요금폭탄을 없앴고, 부당한 A/S 정책을 펴던 애플의 약관도 바로잡았다. 소비자와 약자의 권리를 지켜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 정치를 하는 이유다. 네 살 때 홍은동 철거민이던 부모님을 따라 동작으로 왔다. 네 살짜리 꼬마가 세 아이의 아빠가 됐지만 동작은 그대로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서초와의 격차는 더 커졌 다. 동작의 주거·교육·상업환경을 바꾸겠다. 떠나는 동작에서 돌아오는 동작으로 바꾸는 것이 동작에서 정치를 하는 이유다.
 
김무성·이재오·천정배 ‘15대 동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20년 전엔 정치 신인이었다. 그는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신한국당(새누리당 전신) 초선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그와 함께 국회에 입성한 신한국당 초선 의원들이 이재오(현 무소속)·김문수(대구 수성을 후보)·홍준표(경남지사)·이완구(전 국무총리)·안상수(창원시장) 의원 등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당시 초선 배지를 달았다.  

야당(당시 국민회의)에서도 노무현 정부 출범의 공신 역할을 했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중진인 정세균·추미애 의원, 국민의당 김한길 의원, 작고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로 들어왔다. 2000년 16대 국회 입성에 성공한 정치 신인으론 새천년민주당(당시 여당) 송영길(전 인천시장)·이종걸 의원, 한나라당(새누리 전신) 오세훈·원희룡·김부겸(현 더민주) 의원 등이 있다.  

2004년 17대 국회 땐 열린우리당에서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타고 108명의 초선 의원이 국회에 입성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정부 실세로 꼽히는 최경환 의원과 나경원 의원 등이 초선 의원이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국회에 들어온 초선 의원 중엔 유일호 경제부총리, 새누리당 김세연·김용태 의원, 무소속 윤상현 의원 등이 있다. 민주당(더민주 전신) 출신으론 이용섭 전 의원 등을 들 수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선 모두 148명의 초선 의원이 새로 진입했다. 이 중엔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포함돼 있다.

현일훈 기자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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