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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셰프계 G25 모임’서 정상들 식성 공유…청와대 셰프도 환영해요

중앙일보 2016.03.26 01:20 종합 13면 지면보기
푸아그라(거위 간)를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가 정상회담 식탁에 오른다고 시리아 내전의 총성이 멎을까. 달콤한 크렘브륄레(프랑스식 디저트의 일종) 한 술에 수백억 달러의 무역 투자가 결론 날까. 그럴 리 없다. 치열하고 냉엄한 국제외교에서 음식은 ‘마침표’가 아니라 기껏해야 ‘쉼표’ 역할을 할 뿐이다.

프랑스 역대 최연소 명장 출신, 고메즈 엘리제궁 총괄셰프

그러나 “정치는 분열시키지만 좋은 식탁은 사람을 모은다”라는 말이 있다. 치열한 협상 현장일수록 쉼표의 중요성은 더 높아진다.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의 한 저명한 정치가는 “제게 훌륭한 요리사를 붙여주시면 좋은 조약을 체결해오겠습니다”고 말했고, 이를 실현했다(『대통령의 셰프』, 알덴테북스 펴냄, 54쪽 ‘비엔나 회의’ 편 참조). 실제로 프랑스가 자타가 인정하는 ‘미식 국가’로 우뚝 서기까지 이처럼 각국의 지도자들을 매료시킨 ‘음식 외교’의 전통이 큰 몫을 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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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엘리제궁(대통령 관저)의 주방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기욤 고메즈 총괄셰프. 조리복 목깃에 둘러진 삼색 띠와 손가락에 걸친 원형 메달은 그가 프랑스 국가공인 명장(MOF)이라는 표시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현재 프랑스 엘리제궁(대통령 관저)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음식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이는 기욤 고메즈(38) 총괄셰프다. 1997년 엘리제궁 주방의 말단으로 들어가 2013년 35세에 ‘미식 왕국의 지휘자’로 등극했다. 그가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푸드 페스티벌인 ‘소 프렌치 델리스(So French Delices)’ 참석차 내한했다. 지난 2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막한 행사는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의 스트리트 푸드 페스티벌 등으로 이어진다. 정상 외교 바깥에서 펼치는 민간 음식 외교다.

23일 신라호텔에서 만난 고메즈 셰프는 먼저 “엘리제궁이나 대통령에 관한 질문은 삼가 달라”고 요청했다. 정상들의 식성·습관 등 민감한 질문엔 답변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조리복 목깃에 둘러진 프랑스 삼색기 띠와 메달이 이채로웠다. 그는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프랑스 명장(MOF·Meilleur Ouvrier de France) 자격대회를 통과했다는 증표”라고 설명했다. 요리·제빵·공예·헤어스타일링 등 기술장인에게 ‘국가대표’를 인증해주는 시험인데, 고메즈는 25세 때 이를 통과했다. 역대 최연소다.
 
19세에 엘리제궁 주방에 들어갔다. 총괄셰프까지 올라보겠다는 꿈이 있었나.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 몰랐다. 군 복무(1년)를 대체할 생각으로 들어갔다. 당시 총괄셰프(베르나르 보시옹)가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임기 1969~74년) 때부터 있던 분이라 ‘굉장히 오래 계시는구나’ 했다. 시간이 흐른 뒤 정작 (후임 셰프로) 지명됐을 땐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2005년부터 주방의 ‘넘버2’로 보시옹 셰프가 자리를 비울 땐 그의 일을 대신 해왔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정권이 바뀌어도 주방의 연속성이 유지된다. 보시옹은 40년간의 엘리제궁 생활을 마치고 2013년 60세로 은퇴했다.)”
대통령의 셰프는 일반 셰프와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가.
“어느 경우든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지고 계속 연구하고 창의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선 동일할 거다. 다른 점은, 일단 우리에겐 정해진 메뉴가 없다. 레스토랑은 매일 다른 손님을 맞이하지만 나는 늘 대통령과 그가 초빙하는 귀빈을 생각해야 한다. 그분들에게 나를 맞춰야 한다.”
그럼 가능한 요리 가짓수가 일반 셰프에 비해 많겠다.
“그렇다. 매일 새로운 메뉴를 제안해야 하니까. 기본적으로 프랑스 전통음식을 지키고 알리는 역할이지만 음식도 시대에 따라 변하니까 균형을 맞추려 한다. 특히 프랑스 각 지방의 특산 재료를 활용하고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세계 음식도 잘 알아야 한다. 다른 나라 셰프를 만나서 영감을 받아 요리 창작에 활용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다른 나라 셰프란 각국 정상 관저의 셰프들이다. 이름하여 ‘셰프의 셰프 클럽(CCC·Club des Chefs des Chefs)’이다. 77년 프랑스의 전설적인 셰프 폴 보퀴즈의 레스토랑에서 당시 엘리제궁 총괄셰프를 비롯한 여러 나라 셰프가 처음 모인 데서 시작됐다. ‘국가수반(왕실 포함) 주방의 현직 총괄셰프’를 회원 자격으로 두는 CCC에는 현재 프랑스·독일·미국 등 25개국 셰프들이 가입해 있다. ‘셰프계의 G20’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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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소 프렌치 델리스’ 푸드 페스티벌 개막식에 프랑스와 한국의 대표 셰프들이 모였다. 왼쪽에서 아홉 번째가 기욤 고메즈. [사진 행사조직위]

 
모이면 어떤 얘기를 나누나.
“모임을 통해 어려움도 공유하고 다양한 얘기를 나눈다. 아무래도 본인이 모시는 대통령(정상)의 습관·식성 등을 아니까 얘기해주면 국빈으로 모시게 됐을 때 굉장히 도움된다. 고급 레스토랑 지배인들이 특정 고객 습관을 다른 데 물어봐서 준비하듯, 그런 것이다.”
 
나이로선 모임에서 막내급이겠다. 그래도 프랑스가 미식의 중심이니까 큰 목소리를 내거나 하진 않나.
“아니(웃음). 여느 국제조직·기관처럼 민주적인 모임이다. 매년 개최국을 바꿔 열리는데, 주로 친목을 다지고 자선행사에 어떻게 기여할지 의논한다. 지난해엔 스위스에서 적십자와 함께 불우시설 어른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 셰프로서 나라 간의 우호와 교류에 미식이 큰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한국의 청와대 셰프도 참여하나.
“아니 못 봤다. 자격이 되면 신청 받고 가입을 허락해주는데…. 이 기사를 보면 꼭 연락해 달라(웃음).”
요리사로서 평소 대접하고 싶던 인사를 실제로 모신 적이 있나.
“물론 많다. 유명한 분을 많이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렇다고 유명인을 만나기 위해 이 직업을 택한 건 아니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많은 이를 만나는 건 분명 셰프로서 행운이다. 특히 CCC 모임에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났는데 ‘프랑스 방문 때 환대받았고,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맛있다는 칭찬은 누구한테 들어도 기분 좋고 소중하다.”
 
다른 셰프들 인터뷰를 보니 VIP 만찬에서도 식기가 (기념으로 가져가는 탓에) 없어지기도 한다더라.
“하하. 글쎄, 5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해프닝 아닐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 엘리제궁의 비싼 식기, 갖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나.
“식기들이 비싸기도 하지만 수백 년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이다. 매 순간 그 가치를 활용하면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치며) 엘리제 질문은 이제 그만~.”

고메즈에 따르면 자신도 기억 못할 어린 시절부터 그릇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다섯 살 땐 유치원 ‘분장 경연’에서 조리복을 선택해 입었다. 목가구 판매를 하던 부모는 외동아들인 그가 하고 싶은 걸 하게끔 내버려뒀다. 14세부터 학교에서 절반, 레스토랑 실습으로 절반을 생활하며 착실하게 실력을 닦았다. 미쉐린(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서 함께 일한 셰프가 엘리제궁에 먼저 들어가면서 평소 눈여겨봤던 고메즈를 발탁해 데려갔다.
 
(요리사로서 최고 영예인) 미쉐린 3스타에도 관심 있나. 엘리제궁에서 나오면 본인의 레스토랑을 열 계획은.
“글쎄, 대통령의 셰프로 있는 동안 미쉐린 가이드에 나올 일은 없겠지. 아직 엘리제궁을 관둘 생각이 없다. 요리를 시작한 이래 계속 미쉐린 가이드를 수집해왔다. 엄청난 전문가들이 공정한 심사로 포함시킨 레스토랑들이라 믿을 수 있어서다. 조만간 서울 편도 나온다고 들었는데, 한국 셰프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이번에 맛본 음식이 앞으로 당신 요리에 영향을 미칠까.
“물론이다. 사실 어제 ‘콩두’(덕수궁길 레스토랑)에서 처음 맛본 한식은 파리 한식당의 음식과 많이 달랐다. 프랑스에선 식재료도 다르고 현지인 입맛에 맞춰야 할 테니 진짜 한식은 아니겠지. 모든 셰프는 음식을 통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맛보는 음식과 분위기,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여행의 전과 후, 내 요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때 엘리제궁 주방팀 전원 남성이었던 까닭

국가수반의 삼시 세끼를 책임지는 ‘대통령의 셰프’들은 철저한 신원 조회를 통해 관저에 입성한다. ‘국가 정상들의 셰프 클럽(CCC)’ 설립을 주도한 질 브라가르와 저널리스트 크리스티앙 루도가 함께 쓴 『대통령의 셰프』(알덴테)에 따르면 요리사의 재정 상태와 대출 기록도 모두 점검 대상이다. 관저에서 식재료를 구입하다 보면 온갖 납품업자의 유혹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청렴하고 공익을 우선시하는 요리사가 필요하다.

요리사들은 대통령을 겨냥한 독살·식중독 등에 대비한 경호팀의 그물망 점검도 감내해야 한다. 미국 백악관에선 공식 방문 일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통령 수행원(경호원 혹은 의전 담당)을 해당 국가 관저의 주방에 파견한다. 모든 요리를 미리 맛보고 만찬 준비 시점부터 서빙하는 순간까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지켜본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대통령의 관저 총괄셰프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프랑스 엘리제궁의 경우 최근까지 주방팀 전원이 남성이었다. 특히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엔 영부인이 단호하게 여성 요리사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다. ‘주방의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성차별적인 이유였던 것으로 『대통령의 셰프』 저자들은 추측한다.

반면 기욤 고메즈 총괄셰프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자신이 이끄는 25명 안에 “여성 요리사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의 크리스티타 커머포드 총괄셰프 등 몇몇 국가에선 여성이 관저 주방을 이끌고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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