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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세대 간 갈등’은 실체 빈약한 심리적 허구다

중앙일보 2016.03.26 00:01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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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튜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전 서울 특파원

지난번 내가 한국에 있었던 때보다 한국 젊은이들이 더욱 비참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어쩌면 선배 세대가 누리던 기회를 박탈당했다. 심지어는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처럼 한국을 떠나려고 한다.

요즘 ‘가난한 젊은이’ 내러티브는 내가 태어난 영국을 포함해 거의 모든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발견된다. 런던이나 서울에서 좋은 일자리 얻기는 정말 힘들다. 거주비는 비싸고 사회이동은 좋은 팝 음악, 속편이나 리메이크가 아닌 할리우드 영화, 싸이월드처럼 돼 버렸다. 정치인들과 해설자들은 젊은이의 비참함이라는 관점을 좋아한다. 본능에 호소하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 문제는 종종 ‘세대 간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제기된다. 마치 비참함을 젊은이만 겪고 있으며 비참함을 그들에게 부과한 것은 노인인 것처럼 말이다.

한쪽에서 보면 나이 든 세대는 모든 재산을 소유하며 현상유지를 위해 투표한다. 다른 쪽에서 보면 젊은 세대는 그들이 지난 세대들에 비해 얼마나 물질적으로 운이 좋은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니 불평하기를 그만둬야 한다. 두 그룹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관점이 다르다. 상호이해가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이러한 ‘세대주의’는 ‘지역주의 2.0’이다. 지역주의라는 히트작의 속편으로 인기나 예측 가능성의 정도가 같다.

대부분의 잘사는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투표할 가능성은 낮다. 만약 당신이 전형적인 구세대 사람이라면 바라는 것을 선거일에 갖게 될 것이다. 다음달에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승리하는 팀에 속한 사람은 누구일까. 만약 당신이 부유한 구세대 사람이라면 당신의 자식과 손자·손녀가 좋은 교육·직장·결혼의 기회를 얻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만약 당신이 가난하다면 자식과 손자·손녀에게 그런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이기는 팀과 지는 팀이 있다. 두 팀 모두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로 구성됐다.

수많은 비참한 젊은이가 있다. 하지만 토요일 밤 홍대에서 돈을 뿌려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일요일 오후 가로수길에서 쇼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재활용을 위해 알루미늄 캔과 판지 상자를 줍는 사람은 누구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대물림 빈곤율’, 가장 이른 ‘명예퇴직’, 평생 엄청나게 열심히 일한 다음에도 가장 하찮은 수준으로 받게 되는 연금이라는 환경 속에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65세 이상 여성 중 38.4%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38.4%는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진짜 이슈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경제적 계급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돈이다. 물론 한국은 짧은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에 소득분배가 상대적으로 평등주의적이었다. 이는 정치적인 개입이 아니라 역사가 낳은 결과였다. 역사가 작용하지 않으면 회귀가 불가피하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기득권을 지키고 자녀들에게 돈과 기회를 물려주기 위해 애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제성장이 예전 같지 않을 때는 특히 그렇다.

현대 한국은 일을 아주 빨리 한다. 변화상으로 한국의 10년은 유럽이나 미국의 50년에 해당한다 .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사회 계급의 고착화 과정 또한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사소하지만 놀라운 사례가 그런 방향성을 가리킨다. 거기서 태어나면 평생 ‘동문’(더 좋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인맥이 확보된다는 믿음 때문에 2000만원을 내게 만드는 ‘고급 산후조리원’의 급증에 대한 언론보도다. 어쩌면 더 이상 서울대나 외고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에게 현금이 있다면 태어난 날부터 승리하는 팀에서 자신의 자리를 굳히기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세대 간 차이는 순전히 심리적인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싸움을 계속하는 가운데 젊은이들은 새로운 계급에 기반한 현실을 포착했다. 젊은이들에게 ‘포기’는 슬프지만 합리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면 된다’를 대체한 것은 ‘해도 안 돼’다. 하지만 할아버지·어머니·아들은 같은 종류의 수저로 밥을 먹는다. 심각한 세대 간 불평등은 없다. 오로지 허언(虛言)으로 꾸며낸 세대 간 갈등이 있을 뿐이다.

다니엘 튜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전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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