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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길 위의 만찬 ‘팝업 레스토랑’

온라인 중앙일보 2016.03.26 00:01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 같은 유명 음식점이 해외에 한시 매장 운영… 비용과 노력 많이 들지만 인지도 제고 등 얻는 것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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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의 시드니 팝업 레스토랑이 개업하던 날르네 레드제피(가운데)를 비롯해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는 지난 1월 말 호주 시드니에 10주 예정의 팝업(오는 4월 2일까지)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시험 운영에 들어간 지 40분쯤 지났을 때 주방장 르네 레드제피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12코스짜리 테이스팅 메뉴의 7번째인 마론(호주산 민물 가재) 요리가 잘못됐다.

마론 밑에 깔 기러기 고기 라구(고기와 야채에 양념을 해 끓인 음식)는 맛있게 됐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넣어서 감쌀 재료(설탕에 졸인 우유로 만들었다)가 타버렸다. 게다가 이 요리를 담아낼 야자 잎사귀 바구니는 마치 개구쟁이 유치원생들이 만든 것처럼 조악했다. 레드제피가 그릴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요리사에게 걸어가면서 “지금 대체 뭐 하는 거냐?”고 소리쳤다.

레드제피는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듯하다. 이 팝업 레스토랑은 코펜하겐의 노마 본점에서 1만6000㎞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엄청난 무게의 장비와 75명의 직원을 이끌고 그렇게 먼 거리를 움직이는 건 군대의 이동에 견줄 만한 큰 도전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도전에 나서는 레스토랑이 꽤 있다.

사실 ‘팝업’이라는 용어는 이런 엄청난 노력에 걸맞지 않다. 두어 명이 모여 친구의 화랑에서 랍스터 롤을 파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 50대 레스토랑’에서 1위를 차지한 스페인 북동부의 ‘세예르 데 칸 로카’는 2014~2015년 세계 5개 도시를 돌며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다. 영국 버크셔 지방에서 유명 레스토랑 ‘팻 덕’을 운영하는 헤스턴 블루먼설은 본점을 리노베이션하던 지난해 1월부터 6개월 동안 호주 멜버른에, 스페인의 유명 레스토랑 ‘엘불리’에서 페이스트리 셰프로 일하던 알버트 아드리아는 지난 2월 12일 영국 런던에 팝업 매장을 열었다. 또 그랜트 애커츠가 운영하는 미국 시카고의 레스토랑 ‘앨리니아’는 지난 2월 6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3주 간의 팝업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마치고 16일엔 마이애미로 자리를 옮겼다. 한편 노마는 시드니에 앞서 지난해엔 일본 도쿄에서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이런 경우 대체로 본점의 문을 닫고 직원 상당수를 팝업 레스토랑에 파견한다. 세예르 데 칸 로카의 주방장 존 로카는 “뉴욕과 런던, 두바이에 지점을 열자는 제안이 많이 들어오지만 우리 요리는 노동집약도가 높아서 지점을 열 경우 요리와 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팝업 레스토랑은 본점의 직원들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게 이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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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틀 씨로 만든 죽을 명아주 잎새 튀김으로 감싼 요리 (노마 시드니 팝업 레스토랑).

주방에서 채소를 씻고 유리 그릇을 윤나게 닦는 일에 하루 종일 매달리는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체험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 팝업 매장을 여는 동기 중 하나다. 레드제피는 “직원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며 “그들에게 새 재료와 문화를 접해볼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단결심을 기를 수도 있다. 새로운 장소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 서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레스토랑이 팝업 매장을 운영하면 세계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팝업 매장은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고 로카는 말했다. “우리는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고, 더 많은 고객이 우리가 하는 일을 알 수 있다.”

그 새로운 고객 중 일부는 윌리엄 리드 비즈니스 미디어가 선정하는 ‘세계 50대 레스토랑’의 투표자다. 이 리스트의 투표자는 이전 18개월 동안 자신이 투표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경험이 있어야 투표권이 주어진다. 따라서 해외에서 개업하는 팝업 매장이 많을수록 잠재적인 득표 기반을 그만큼 넓히는 셈이다.

하지만 팝업 레스토랑을 가장 반기는 쪽은 평범한 고객인 듯하다. 그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의 요리를 먹어볼 기회를 갖게 된 걸 매우 고맙게 여긴다. 노마의 시드니 팝업 레스토랑은 웹사이트에서 티켓을 팔기 시작한 지 5분 만에 총 5600 테이블이 매진됐다. 또 웨이팅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4만 명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팻 덕의 멜버른 팝업 레스토랑은 티켓 값이 매우 비싸(1인당 식사비 525달러) 인터넷에서 가격을 거의 2배로 부르는 암표상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뜨거운 반응이 곧 수익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에 레스토랑으로선 위험부담이 크다. 앨리니아의 팝업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주선한 홍보회사 마테오&CO의 패트리샤 마테오는 이렇게 말했다. “총 1700석의 티켓이 매진됐지만 레스토랑 측은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저 경험을 쌓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이런 경험엔 큰 대가가 따른다. 본점의 영업 중단으로 인한 손실에 새 메뉴 개발과 새 공급업자를 찾는 데 드는 비용이 보태진다. 그뿐인가? 장비와 식기를 옮기거나 새로 사는 데 쓰는 돈과 인테리어 비용, 수십 명의 직원을 해외로 재배치하는 데 드는 경비가 결코 만만치 않다. 일반적으로 팝업 레스토랑의 메뉴가 본점보다 더 비싼 이유다. 일부 레스토랑은 이런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후원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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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 10주 예정으로 문을 연 레스토랑 ‘노마’(위)에서 선보인 악어 지방을 이용한 해산물 요리.

일례로 앨리니아는 마드리드에 팝업 레스토랑을 열 때 마드리드 시정부와 그 식당이 속해 있는 NH 호텔의 지원을 받았다. 또 스페인 금융 그룹 BBVA는 세예르 데 칸 로카의 순회 팝업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노마가 지난해 도쿄 만다린 오리엔털 호텔에서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을 때 호텔 측이 직원들의 숙소를 무료 제공했다. 하지만 이런 지원과 높은 가격(티켓 1장에 350달러)으로도 수지 맞추기가 어려웠다. 맞춤 제작한 집기(세라믹 보울 1개에 200달러, 젓가락 1쌍에 80달러 등)와 최고급 재료(활새우 1마리에 8달러 등)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노마는 일본의 한 달걀 회사에서 후원을 받았다. 또 팝업 레스토랑이 문을 닫은 후엔 값 나가는 접시와 보울들을 온라인 상점에서 팔아야 했다.

시드니 프로젝트는 위험부담이 더 커 보였다. 식기와 가구를 또다시 맞춤 제작해야 했고 재료비가 너무 비싸 레드제피는 가격을 다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호주산 카카두 플럼 1㎏에 500달러, 전복 1인분(반 마리)에 20달러 등등(노마 시드니에서는 전복을 반으로 잘라 두드려 편 다음 밀가루와 달걀, 빵가루를 입혀 튀긴 슈니첼에 이국적인 해초를 곁들인 요리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후원을 받지 못했다. 노마는 직원들이 묵을 아파트 비용을 직접 부담했다. “티켓 1장에 485호주 달러인데 그중 350 달러는 식사 비용이고 나머지는 직원들의 숙박비”라고 레드제피가 말했다.

가격이 높다 보니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평소보다 더 심했다. 지난 1월 26일 개업을 앞두고 직원들은 신경이 곤두섰다. 주방 밖에 놓인 2개의 테이블에서 현지 요리학교에서 나온 견습생 12명이 그린 마카다미아 껍질을 까느라 여념이 없었다. 첫 번째 코스로 나갈 게살 수프에 곁들일 재료다(견습생들은 하루 2시간씩 마카다미아 껍질을 깠다).

맞춤 디자인으로 꾸민 홀에서는 서빙 담당 직원들이 의자 등받이에 왈라비 가죽이 똑바로 걸쳐졌는지 점검했다. 또 호주 커피 전문가들에게 내놓을 롱블랙(뜨거운 물에 에스프레소 더블 샷을 부어 만드는 호주식 커피)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준비할지 진지하게 의논했다. 홀 안을 살피러 들어가던 레드제피가 바깥에 있는 화분으로 눈길을 돌렸다. 식당 앞을 지나는 행인들이 궁금한 마음에 창문에 코를 들이대고 안쪽을 기웃거리는 일을 막기 위해 놓은 것들이다. 그는 화분 앞에 멈춰서더니 황당한 듯한 몸짓으로 “대체 이게 뭐야?”라고 소리쳤다. “쇼핑몰 주차장에나 어울릴 것 같은데.” 보기 흉한 화분은 개업 시간 전에 직원들이 서둘러 갈색 페인트를 칠해 손봤다. 레드제피는 첫 번째 공식적인 서비스가 시작될 때 주방에서 홀로 통하는 복도에 서 있었다. 서빙 직원들이 야생 베리 요리를 내가는 걸 보더니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싱싱하고 탐스런 열매 위에 켈프 오일과 비싼 카카두 가루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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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팝업 레스토랑을 열 때 장비를 옮기고 수십 명의 직원을 재배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 다음엔 와틀 씨로 만든 죽을 명아주 잎새 튀김으로 감싼 요리가 나왔다. 레드제피와 수석 요리사들이 약초 채취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찾아낸 것이다. “이런 식물들은 농업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쥐라기를 떠올리는 신비한 맛이 나지만 대다수 호주인이 이런 식물들을 먹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고급 팝업 레스토랑 프로젝트에는 온갖 어려운 일과 위험부담이 따르지만 그 모두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건 영감과 재창조다. 그건 전문가들의 찬사나 직원들의 단합, 새로운 고객의 발굴보다 더 가치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마론 요리를 처음 내갈 때 레드제피는 꼼꼼히 살펴본 뒤 미소 띤 얼굴로 서빙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님에게 라구에 대해 설명하는 걸 잊지 말아요. 망고를 먹고 자란 까치기러기 고기로 만들었다고 말이죠.”
– 리사 어벤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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