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편 대신 차 향 솔솔~ 태국 속 알프스로 변한 ‘골든 트라이앵글’

중앙일보 2016.03.25 00:05 Week& 4면 지면보기
| 시크릿 아시아 ① 태국 치앙라이

 
기사 이미지

치앙라이 도이매살롱 산자락에서 아낙들이 찻잎을 따고 있다. 태국 최고급 우롱차가 여기서 난다.

week&이 연재기획 ‘시크릿 아시아’를 시작합니다. 중앙일보와 항공사 ‘에어아시아’가 함께 동남아시아의 보석 같은 여행지를 한 달에 한 곳씩 소개합니다. 아름답고 따뜻한 남국(南國)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태국에는 무수한 휴양지가 있다. 푸껫이나 코사무이처럼 야자수 늘어진 바다도 좋지만 이번엔 방콕을 경유해 북쪽 고산지대로 향했다. 태국 북부지역에서는 치앙마이(Chiang Mai)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골프 치러 온 한국인, 중국인 단체관광객으로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는 늘 북적인다. week&은 치앙마이보다 더 북쪽, 미얀마·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태국 최북단의 ‘치앙라이(Chiang Rai)’를 찾았다. 해발 1000m 산자락에서 평화로운 삶을 일구는 고산족을 만났고, 아편 생산의 전초기지에서 세계적인 커피·차 생산지로 탈바꿈한 기적 같은 역사를 확인하고 왔다. 아직은 덜 개발된 지역이어서 한결 한갓졌다.



 아편 생산하던 황금의 삼각지대

 
기사 이미지

골든트라이앵글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세 나라(태국·라오스·미얀마)가 얽혀 있는 형세다.


한국인에게 국경(國境)이란 아프고 답답한 상처 같은 것이다. 그래서 허락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다른 나라의 국경은 영 낯설다. 치앙라이에서 그랬다. 치앙라이 북쪽의 메콩강은 세 나라(태국·라오스·미얀마)가 얽혀 있는 독특한 모양새였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 앵글(Golden Triangle)’, 즉 황금의 삼각지대라 불리는 지역이다. 불과 20년 전까지 아편 생산과 거래로 악명높았던 곳으로 지금은 관광지로 변모했다.

치앙라이는 태국 76개 주(Province) 중 에서 최북단에 있다. 치앙라이 주에서 가장 큰 도시가 치앙라이 시다. 골든 트라이앵글은 치앙라이 시에서 북동쪽 약 90㎞ 거리에 있다. 골든 트라이앵글로 가는 길에 몇 차례 검문을 거쳤다. 최근 미얀마에서 아편 생산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태국 정부가 검색을 강화하고 나섰다. 현재 미얀마는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세계 2위의 아편 생산국이다.

골든 트라이앵글을 찾기 전에 ‘아편 박물관(Hall of Opium)’부터 관람했다. 아편을 비롯한 다양한 마약의 해악과 태국 왕실이 어떻게 아편 퇴치를 진행했는지 알려주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예상보다 흥미로웠다. 아편을 필 때 쓰는 파이프도 전시돼 있었는데 금, 코끼리 상아 등으로 만든 매우 비싼 파이프도 있었다.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아편 생산과 거래가 활발했던 것은 1960~90년대였다. 당시 뉴욕으로 흘러든 아편의 80%가 이 일대에서 생산됐다고 한다.

아편 퇴치에 나선 건 태국 왕실이었다. 80년대 말,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어머니 스리나가린드라(1900~95) 여사가 아편 생산지의 주민을 교육하고 아편 원료인 양귀비 대신에 차·커피·마카다미아 등 환금성 작물, 즉 수익성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도록 지원했다. 태국판 새마을운동으로 불리는 ‘로열 프로젝트(Royal Project)’의 하나다.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태국의 아편 생산량이 격감했고, 치앙라이산 커피와 차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박물관을 둘러본 뒤 골든 트라이앵글 투어에 나섰다. 조각배를 타고 미얀마와 라오스 국경을 넘나들었다. 골든 트라이앵글에는 카지노와 면세구역도 있었다. 태국에는 카지노가 단 하나도 없어 많은 사람이 이곳까지 와서 카지노를 즐긴단다.

미얀마와 라오스는 언어와 문화가 달랐지만 국경지대의 마을 풍경은 비슷했다. 모두 짝퉁 명품 가방과 조악한 기념품, 코코넛 주스 등을 팔았고 코흘리개 아이들이 돈을 달라며 따라붙었다. 어쩐지 서글픈 장면이었다.

 

은은한 우롱차 향에 취하다

 
기사 이미지

해발 1100m 고원에 자리한 101 Tea 차밭. 주변 산새와 어우러진 풍광이 그림 같다.



이튿날 차 재배로 유명한 도이매살롱(Doi Mae Salong)을 찾아갔다. 도이는 ‘산’을 뜻하는 태국어로, 도이매살롱의 최고봉은 해발 1367m에 달한다. 치앙라이 시내에서 차를 타고 약 1시간, 해발 800m를 넘어서니 너른 차밭이 펼쳐졌다. ‘추이퐁 차(Choui Fong Tea)’라고 쓰인 큰 푯말이 보였다. 차밭 곳곳에서는 아낙들이 바쁜 손을 놀렸고,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도 구슬땀을 흘리며 찻잎을 따고 있었다.

 
기사 이미지

도이매살롱 차 시장에서 만난 어린 승려들.



해발 1100m 지대에도 그림 같은 차밭이 있었다. 태국을 대표하는 차 회사 ‘101 Tea’의 밭이다. 초록 카펫 같은 차밭과 넘실대는 산새가 어우러져 절경을 빚었다. 차 판매장에서 우롱차를 시음했다. 은은한 향이 기분 좋게 온몸으로 퍼졌다. 차 판매장은 중국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차 내리는 법도 정통 중국식이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중국 윈난성(雲南省) 이주민의 정착지였다. 동행한 가이드 조이가 “30년 전만 해도 이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윈난성 전통복장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기사 이미지
고산족 아카족 마을에서 개들이 달콤한 낮잠을 자는 모습.
기사 이미지
고산족 아카족 마을. 낡은 민가가 줄지어선 모습이 정겹다.


이들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49년, 중국 공산당에 반기를 든 국민당 지지자와 군인 약 1만 2000명이 윈난을 떠났다. 대부분이 미얀마와 태국 곳곳으로 흩어졌고, 4000여 명이 도이매살롱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아편을 재배해 군량비를 모아 중국 공산당을 공격할 날만 기다렸다. 70년대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태국 정부가 이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조건으로 태국 북부에 있던 공산당을 소탕해달라고 한 것이다. 작전은 성공했고, 태국 정부는 이들이 아편 대신 우롱차와 버섯 등을 재배하도록 도와줬다. 우롱차 재배 기술은 대만 정부가 나서 가르쳐줬다. 윈난성 이주민들이 공산당에 반대하는 국민당 지지자여서였다.

 
 
기사 이미지

도이매살롱 고산지대에 사는 아카족 주민. 평소에도 전통 복장을 입는다.

차밭 근처에는 제법 큰 마을이 있었다. 여느 중국 마을처럼 붉은 등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차 시장도 있었다. 우롱차·홍차·녹차 외에도 고산지대에서 재배한 마카다미아, 버섯 등을 파는 상점이 줄지어 있었다.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오랜만에 외출을 나온듯 한보따리씩 차를 사갔다. 어색한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이슬람 사원이었다. 의외로 윈난성 이주민 중 3분의 1이 무슬림이란다.

인근에 고산족 원주민 아카(Akha)족 마을도 있었다. 낡은 초가집 그늘에서 개와 고양이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었고, 닭과 병아리는 바쁘게 쏘다녔다. 전통복장을 한 아낙들은 수공예품을 만들고 있었고, 천진한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놀았다. 정겨운 두메산골의 풍경이었다.

 


태국의 알프스로 거듭난 도이퉁

 
기사 이미지

도이퉁 산자락에 있는 로얄 빌라. 태국 왕실에서 스위스 전통 산장인 샬레식으로 지었다.



스리나가린드라 여사가 각별한 애정을 가진 산 ‘도이퉁(Doi Tung·1389m)’도 흥미로웠다. 그녀는 87년 처음으로 도이퉁을 방문했다. 아편 생산과 화전으로 황폐해진 산을 본 뒤 “기필코 도이퉁을 되살리겠다”고 말했다. ‘매파루앙 재단(Mae fah luang foundation)’을 설립하고 ‘도이퉁 개발 계획’에 본격 착수했다.

매파루앙 재단은 고산족 주민에게 브라질·코스타리카에서 수입한 아라비카 커피 종자와 마카다미아 등을 보급했고 고급 패션 제품을 만드는 기술도 가르쳤다. 덕분에 도이퉁은 이제 태국을 대표하는 커피와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거듭났다. 방콕, 치앙마이 등 대도시와 주요 공항에 도이퉁 카페와 패션 제품을 파는 매장이 들어서 있다.

해발 1000m 산자락에는 수목원 ‘매파루앙 가든(Mae fah luang Garden)’과 왕실 별장 ‘로열 빌라’도 있다. 30~40년대를 스위스 로잔에서 지낸 스리나가린드라 여사는 스위스 전통 산장인 샬레식으로 빌라를 짓고 마당에 붉은 제라늄 꽃을 가득 심었다. 열대의 나라로 옮겨온 알프스 마을은 제법 근사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커피 농장을 들렀다. 차 밭처럼 물결치는 풍경을 기대했는데 뜻밖이었다. 큰 나무 우거진 숲에 볼품 없는 커피나무가 듬성듬성 심겨 있었다. 유기농 커피 밭이었다. 커피 재배는 대부분 2월에 끝나 커피 열매도 없었다. 치앙라이 시내에서 원없이 태국 북부산 커피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깊고 쌉싸래한 향이 입에 오래 감돌았다.

 
기사 이미지
태국 전통 건물을 응용한 ‘검은 집 박물관’.
기사 이미지
검은 집 박물관에 전시된 미술 작품. 동물의 뼈와 뿔, 나무가 주 재료다.

치앙라이 시내에서는 카오소이 등 태국 북부 음식을 맛보고 야시장을 둘러봤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치앙마이 시내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괴짜 예술가가 만든 건축물도 관람했다. 먼저 들른 곳은 ‘검은 집 박물관(Black House Museum)’이었다. 타완 두차니(1939~2014)가 25년에 걸쳐 조성한 박물관에는 검게 칠한 태국 전통 건물 40채에 동물의 뿔과 뼈를 활용한 기괴한 설치 미술이 가득했다.

 
기사 이미지
현세와 열반의 세계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백색사원 왓롱쿤(Wat Rong Khun).
기사 이미지
사원 입구, 절규하는 듯한 인간의 손.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중지손가락도 있다. 괴짜 예술가 찰름차이 코싯피팟의 재치가 엿보인다.


찰름차이 코싯피팟(62)이 디자인한 ‘백색 사원(The White Temple)’은 반대로 하얀 세상이었다. 열반(涅槃)의 세계를 밝은 흰색으로 표현했단다. 반면 현세는 절망적으로 묘사했다. 사원 입구에 절규하는 듯한 인간의 손 수백 개가 조각돼 있었고, 사원 내부의 벽화는 지구를 불구덩이 지옥처럼 표현했다. 손오공·스파이더맨·슈퍼맨 등 영화 속 영웅이 재앙에 맞서 싸우는 재미난 그림도 있었다. 엄숙한 일반사원에서보다 부처의 가르침 ‘생즉고(生卽苦)’가 더 절절히 다가왔다.

 
기사 이미지


 
기사 이미지
● 여행정보=한국에서 태국 치앙라이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에어아시아를 이용하면 방콕 돈므앙 공항을 경유해 치앙라이까지 쉽게 갈 수 있다. 에어아시아 그룹의 태국 회사 타이에어아시아엑스가 인천∼방콕 노선을 매일 운항 중이다.

방콕∼치앙라이 국내선은 타이에어아시아가 하루 5회 운항한다. 다른 저비용항공사와 달리 에어아시아 그룹은 간편 환승 시스템을 운영한다. 방콕을 경유할 때 수화물을 찾았다가 다시 부칠 필요가 없다. 태국에서는 치앙마이·크라비·핫야이·푸켓 등으로 갈 때 간편 환승을 이용할 수 있다.

기내식·위탁 수화물은 웹사이트(airasia.com)나 모바일 앱에서 예약하면 저렴하다. 추가 요금을 내면, 만 10세 이상만 이용할 수 있는 저소음 구역(Quiet Zone), 좌석 간격이 넓은 핫시트(Hot seat), 비즈니스 클래스 개념의 플랫베드(Flat Bed) 좌석을 이용할 수 있다.

치앙라이 시내의 호텔은 5성급도 10만원 이하(비수기)에 이용할 수 있다. 도이매살롱·도이퉁·골든 트라이앵글 등은 현지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게 편하다. 치앙라이 다운타운에 여행사가 많다. 택시나 썽태우(트럭을 개조한 미니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방법도 있다. 아편 박물관 입장료 200바트, 도이퉁 로얄빌라·수목원입장권 각 90바트.
치앙라이는 지대가 높아 방콕·푸껫 등보다 시원한 편이다. 11~2월은 최고 기온이 30도를 밑돌고, 최저 기온은 약 14도에 머문다. 3월 말부터 5월 초까지는 최고 기온이 평균 34도로 더운 편이다. 모기 기피제를 챙겨가는 게 좋다. 자세한 정보는 태국관광청 홈페이지(visitthailand.or.kr) 참조.



[영상]  태국 치앙라이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