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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만 검은 장갑 낀 테러범 2명, 기폭장치 숨겼다

중앙일보 2016.03.24 02:50 종합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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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에펠탑이 테러가 발생한 벨기에의 국기(빨강·노랑·검정) 3색 조명을 22일 밝혔다. [AP=뉴시스]


연쇄 폭탄 테러가 벌어지고 하루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벨기에 수도 브뤼셀. 보슬비가 흩뿌리던 중심가 부르스 광장에 꽃다발과 촛불을 든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31명의 사망자와 271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테러의 충격으로 시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공항·지하철 자폭 테러범은 형제
아파트에선 폭발물 15? 발견
벙거지 쓴 또 다른 범인은 도주
작년 파리 테러 때 폭탄 만들어


한쪽에서 10대 소녀가 분필로 바닥에 무언가를 그렸다. 로라였다. 어머니 소랑지는 “희생자들과 가족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이곳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모녀는 침낭과 핫팩을 갖고 있었다. 관광객으로 넘쳤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그랑 플라스엔 몇 명이 서성일 뿐이었다. 지하철 입구에선 가방 검색이 이뤄졌다. 황량한 거리엔 종종 사이렌이 울렸다.

이날 테러 수사는 긴박하게 진행됐다. 한때 공항 테러범 중 하나인 나짐 라크라위(24)가 검거됐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으나 벨기에 연방검찰은 오후 기자회견에서 “라크라위는 아직 도주 중”이라고 밝혔다. 라크라위는 전날 공개된 공항 폐쇄회로TV(CCTV)에 등장한 인물이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테러 하루 전 벨기에 경찰은 라크라위를 지난해 11월 130명이 숨진 파리 테러의 공범으로 공개 수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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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낀 2명은 자폭 폭탄 기폭장치를 숨기기 위해 왼손에만 검은 장갑(원 안)을 낀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2명이 22일 벨기에 브뤼셀 자벤템 공항에서 카트를 밀고 가는 모습이 폐쇄회로TV 에 포착됐다. 가운데 남성은 형제 자폭 테러범 중 형인 브라힘 엘바크라위였다. 동생 칼리드는 말베이크역에서 자폭했다. 왼쪽 남성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흰색 상의의 남성은 모로코계 벨기에인 나짐 라크라위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그는 테러 현장에서 도주했다. [브뤼셀 AP=뉴시스]


벨기에 당국은 지난 18일 파리 테러 주범 살라 압데슬람을 검거하면서 브뤼셀의 한 아파트에서 라크라위의 DNA를 발견했다. 모로코계 벨기에 국적인 라크라위는 파리 테러범들이 활동한 브뤼셀 몰렌베이크 인근 스하르베이크 출신이다. 파리 테러가 벌어진 바타클랑 극장과 축구 경기장 등에서 수거한 자살 폭탄 조끼에서 그의 DNA가 발견돼 폭탄 제조범으로 지목돼 왔다.

다른 테러범들의 신원도 일부 확인됐다. CCTV엔 테러범 3명이 카트에 검은 여행가방을 싣고 공항 내부를 이동하는 모습이 찍혔다. 가방 안엔 폭발물과 함께 나사못 등이 들어 있었다. 검은 상의에 왼손에만 검은 장갑을 낀 2명은 자폭했다. 한 손에만 장갑을 낀 건 기폭장치를 숨기기 위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프레데리크 반리우 연방검사는 “사망한 2명 중 1명은 벨기에 국적의 브라힘 엘바크라위(30)이며, 동생 칼리드(27)는 말베이크 지하철역에서 자폭했다”고 확인했다. 당국은 이들 형제가 파리 테러 당시 무기를 공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벨기에 언론은 CCTV 화면에서 짙은 색 벙거지를 쓰고 흰 점퍼를 입은 인물이 라크라위이며 테러 당일 폭탄을 터뜨리지 않고 도주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경찰은 스하르베이크의 한 아파트에서 노트북컴퓨터와 브라힘이 쓴 메모를 발견했다. 메모에는 “경찰이 쫓고 있다. 감옥에서 삶을 마치고 싶지 않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아파트에선 15kg의 폭발물이 발견됐다.

테러범들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이번 테러가 파리 테러와 연관됐다는 추측은 현실이 됐다. 압데슬람의 어린 시절 친구인 무함마드 아브리니(30)도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아브리니는 파리 테러 당일 압데슬람 형제를 태우고 프랑스와 벨기에를 오갔다. 파리 테러 이틀 전 프랑스 레송의 휴게소에서 압데슬람과 음료수를 사는 장면이 CCTV에 찍혔지만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그의 동생은 2014년 시리아로 건너가 파리 테러 ‘설계자’ 압델하미드 아바우드 밑에서 활동하다 전투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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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는 이날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테러범 색출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며 사흘간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시민들도 충격을 딛고 희생자 추모 분위기에 동참했다. 테러 당일인 22일 밤 촛불을 든 수천 명이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 마이클 잭슨의 ‘힐 더 월드(Heal the world)’ 등을 합창했다. 동병상련을 겪은 프랑스 파리는 에펠탑에 벨기에 국기 색인 검정·노랑·빨강 조명을 비췄다.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등도 동참했다.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처음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페루 출신의 아델마 타피아 루이스(37·여)였다. 벨기에인 남편과 브뤼셀에 살고 있는 루이스는 네 살배기 쌍둥이 딸을 남겨 안타까움을 더했다. 테러 직후 피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망연자실한 모습의 사진이 찍혔던 여성은 인도 항공사 승무원 니디 차페카르였다. 이 사진은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며 이번 테러의 상징이 됐다. 차페카르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다.

◆박 대통령, 위로전 보내=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샤를 미셸 총리에게 각각 위로전을 보냈다. 박 대통령은 “금번 테러는 벨기에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공격행위로서 우리 정부는 이번 테러를 강력히 규탄하며 테러 척결을 위한 벨기에 정부와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브뤼셀=고정애 특파원, 서울=이동현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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