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어디서부터 문제를 지적해야 할지 모를 정도지만 무엇보다 공천위원회라는 조직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정당은 선거를 앞두고 공천위원회를 구성한다. 공천위원회는, 일부 당내 인사들도 포함되지만 대체로 당에 우호적인 외부 인사들이거나 현역에서 물러난 정치인들로 구성된다. 평소에 당 활동과 무관하던 이들이 중요한 당의 공천 과정에서는 그렇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 보인다. 이들은 단지 당의 후보자를 평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후보자들의 정치적 생명까지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심지어 당 대표까지 신입사원 면접 보듯이 심사를 했다. 지역주의 영향 때문에 각 정당에 유리한 지역구라면 공천은 곧 당선을 의미한다. 당원도 아닌 외부 인사들이 모여 사실상 국회의원을 선정하고 있는 것이다.
공천위원회의 이런 역할이 더욱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위임했느냐 하는 점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정치적 권위와 권력은 구성원의 집단적 선택에 의해 위임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대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고,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나 더민주의 문재인 전 대표가 당을 이끌 수 있는 것도 치열한 당내 경선을 통해 리더십의 위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천위원회에는 그런 권한 위임의 절차가 없었다. 민주적 절차에 의한 권한의 위임 없이 이토록 강력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다는 현실이 오늘날 한국 정당 정치의 미숙함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정치적 편의주의가 민주적 원칙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당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앞으로도 이러한 모습은 다음 선거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날 것 같다. 그 이유는 우리 정당이 뿌리가 없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정당은 권력을 좇는 엘리트들이 정치적 편의에 의해 결합한 협력체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정당들이 공천 때마다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당의 근간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당의 뿌리가 되어야 할 당원이나 열성 지지자들은 공천과 같은 당의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고, 그 자리에는 당 엘리트와 연계된 외부 인사들이나 신뢰할 수 없는 여론조사가 대신하고 있다.
우리 정치의 이와 같은 천박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는 길(back to basics)밖에 없어 보인다. 정당의 주인은 국민도 아니고 정치 엘리트도 아니다. 정당의 주인은 그 정당을 구성하는 당원과 열성 지지자들이다. 어설프게 남의 나라 흉내 내어 망친 정당 조직을 복원하고 당의 공천과 선거운동 과정에 이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상향식 공천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당의 주인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는 방식이다. 선거 때마다 주인은 버림받고 객(客)이 와서 주인 행세하는 방식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모습으로는 새 국회가 구성되어도 우리 정치는 백년하청일 것 같다. 정당 정치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