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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친박계 고사작전에 오히려 존재감 커지는 유승민

중앙일보 2016.03.19 01:35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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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대구 동구 사무실 직원이 18일 오전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뒤쪽으로 유 의원의 팬카페 ‘유사모’ 회원이 전달한 ‘사랑해요 유승민’ 글귀가 보인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18일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구에 있는지, 서울에 있는지조차 묘연했다. 공개 활동을 중단한 지 벌써 나흘째다. 새누리당의 공천 작업도 멈춰 있다. 대구 동구 용계동 유 의원의 집, 그리고 남구 대명동 유 의원의 어머니 집 앞에는 기자들만 모여 있다.

선거사무소에 잇단 “힘내라” 전화
이번 주까지 거취 결정 안 되면
이재만과 둘 다 무소속으로 대결


유 의원은 “공천위가 다음 수를 둘 때까지 아무 움직임도 없을 것”이라고 보좌진을 통해 전한 이래 침묵만 지키고 있다. 공천에서 탈락해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조해진 의원에게 전화로 “용기 있게, 힘 있게 하라. 그렇게 당당하게 하라”고 말했다는 소문만 들렸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서울에서 유 의원을 압박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대구에서 3선(의원)을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당의 혜택을 그 정도 받았으면 많이 누린 것 아니냐”며 “이제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천 신청자에 대한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했던 데서 나아가 유 의원에게 빨리 탈당하라는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유 의원은 반응이 없었다. 의원실을 통해 “공식 발표가 아닌, 언론을 통한 우회 압박에도 응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만 간접적으로 전했을 뿐이다.

이 위원장과 유 의원이 서로 “공천 탈락”(이), “자진 탈당”(유)이라는 속내를 꺼내지 않는 건 두 사람 모두가 잘 아는 대구 정서 때문이다. 이 위원장도 대구에서 4선을 했다. 기자가 지켜본 유 의원에 대한 대구시민의 평가는 ‘대통령에게 밉보인 지역 인재’다. 대구의 다른 ‘진박’ 예비후보 캠프 관계자들도 이런 평가에 고개를 끄덕인다. “유 의원이 똑똑한 건 알지만 당의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최한용·69)고 비판하면서도 서울의 공천관리위원회만큼 살기(殺氣)는 없다.

유 의원 자택을 지나치는 이웃 주민들은 줄지어 서 있는 취재 차량을 보며 “대통령이랑 사이가 틀어졌다카더니 이제 어카노”라며 걱정의 말들을 한다. 유 의원이 잘못한 게 있지만 매몰차게 몰아내선 안 된다는 이 정서는 적어도 대구에선 통하는, ‘친박+친유’ 정서다.

특히 대구 시민들의 친박 정서는 공천 학살과는 거리가 멀다. “아, 대통령 무섭네요. 큰일 하시는 분이 벌써 1년 가까이 지난 그 일을 용서 못하시네”(김기락·68)와 같은 목소리가 적지 않다. 유 의원의 선거사무소에 하루 종일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유 의원을 응원하는 내용이다.

그러다 보니 친박계의 고사 작전에 오히려 유 의원의 존재감이 커지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유승민계’ 의원 두 명(권은희·홍지만)이 공천에서 탈락한 시기(14~15일)에 이뤄진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여권 내 대선주자들 중 유 의원의 지지율은 18.7%로 김무성 대표(19.3%)에 이어 2위였다. 동정심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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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의 대치 국면이 2~3일 더 계속되면 공천위가 유 의원을 탈락시키지 않더라도 이재만 전 동구청장과의 경선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틀이 걸리는 경선과 이후 최고위 의결까지 거치려면 선거관리위원회 후보자 등록 시한(25일)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고위 당직자는 “공천위가 결정을 미루면 대구 동을 지역구에선 두 후보 모두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르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구=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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