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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가족을 지키는 ‘박스맨’

중앙일보 2016.03.18 00:07 Week&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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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배트맨·스파이더맨·엑스맨·아이언맨. 보통 ‘○○맨’이라 불리는 이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슈퍼 히어로입니다. 하지만 지하철 충무로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주친 ‘박스맨’은 익히 알고 있던 슈퍼 히어로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샐러리맨이었습니다.

명령만 하면 저절로 장착되는 아이언맨의 마스크 대신 사방에 녹용엿 홍보 문구가 쓰인 박스를 쓰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박스맨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 박스에 적힌 내용이 궁금해 카메라 모니터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잠깐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나는야 박스맨. 쉿! 나는 장동건이다. 확인은 못 시켜줌! 에헹행 녹용엿 선전 나왔어요. 회사 부장인데요 ㅡㅡ; 효과 없으면 사장님한테 명퇴 당해요. 돌아가며 읽어주세요”

유머를 섞은 글이지만 웃음은 나지 않습니다. 사방이 막힌 박스를 머리에 쓰고 충무로 지하철 역의 긴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고 있는 박스맨에게 영화 속 슈퍼 히어로처럼 지구를 지키는 건 관심 밖의 사안일 겁니다. 지금 박스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일이겠죠. 박스맨의 뒷모습이 힘겨워 보였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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