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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불확실성의 시대, 위태로운 남북 긴장고조

중앙일보 2016.03.18 00:04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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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민
경제 데스크

은행에 예금을 했는데 이자는커녕 수수료를 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돈 들고 있어봐야 손해이니 이 참에 차나 바꾸든가 봄옷이나 장만하자.’ 주류 경제학에선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소비자는 지갑을 열기는커녕 허리띠를 더 졸라맸다. 유럽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는 극약처방을 했더니 소비는 늘지 않고 은행이 결딴났다. 코가 빠진 은행이 대출 회수에 나서는 바람에 시중엔 돈이 말랐다.

마이너스 금리 ?처방’ 소비 못늘려
선진국도 양극화 심화 중산층 몰락


금리 인하는 수요를 부추기려는 정책이다. 마이너스 금리에도 소비가 늘지 않는다는 건 수요 시스템이 고장이 났다는 신호다. 산업사회에선 거대한 공장에서 똑 같은 유니폼을 입은 수 천명의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등장한 후로 사람의 일자리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산업 노동자가 미처 적응할 틈도 없이 도둑처럼 찾아온 변화다. 지식의 유무로 인한 빈부 격차가 자본의 유무로 인한 격차보다 훨씬 커졌다.

지식사회화는 세계화도 동반했다. 과거엔 신흥국 경제가 죽을 써도 미국 경제는 잘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경제 국경이 희미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해 12월 ‘제로(0) 금리시대’에 마침표를 찍고도 금리 인상을 주저하고 있는 까닭이다. 여기다 고령화 쓰나미까지 겹쳤다. 지식사회화, 세계화, 고령화란 ‘3화(化) 파도’가 덮치자 양극화의 골은 더 깊어졌다. 신흥국은 물론 선진국에서조차 중산층 몰락이 가시화하고 있다. 금리를 낮춰도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 이유다.

처방도 엇갈린다. 오바마 정부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마이너스 금리는 ‘마약’에 불과하다”며 “재정 지출을 늘리라”고 주장한다. 가계 호주머니에선 먼지만 풀풀 날리니 정부가 씀씀이를 늘려 수요 공백을 메우라는 거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부자 증세를 주창한다. 부자들의 해외 재산 도피를 막기 위해 “만국의 정부여 단결하라”고 외친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올리비에 블량샤르는 “모든 기업이 동시에 임금을 올리면 만사형통”이라 한다.

그러나 선진국 정부의 재정 적자는 이미 한도를 넘었다. 부자 증세에 만국의 정부가 단결할 리도 없다. 만국의 기업이 임금 인상에 의기투합할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다. 수요에선 답이 안 나오니 공급에서 돌파구를 찾자는 주장도 나온다. AI로 상징되는 디지털 혁명을 일으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자는 아이디어다. 그러자면 기업의 투자가 절실하니 법인세 감면,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 개혁 같은 ‘당근’을 주자고 한다.

한데 공급 경제학엔 약점이 있다. 법인세와 임금을 깎는 건 양극화를 부채질할 수 있다. 게다가 디지털 혁명은 과거 일자리를 폭발적으로 창출했던 전기·자동차 발명과 달리 인간의 일자리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지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빈부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는 얘기다.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에선 정치적으로도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골수 진보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 선거에서도 경제민주화가 화두다.

백약이 무효였을 때 인류가 고른 최후의 선택지는 전쟁이었다. 폭탄 몇 방이면 과잉 생산설비는 단숨에 정리된다. 한 발에 수 억원짜리 미사일을 펑펑 소비해도 시비 거는 유권자는 없다. 미국이 30년대 대공황에서 탈출한 것도 뉴딜 정책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덕분이었을지 모른다. 유럽과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실험이 끝내 헛발질로 판명 나고 중국마저 공급 과잉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조차 겁난다.

칠흑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몰아가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장난이다. 한반도가 주변 강대국의 칼끝이 부딪치는 격전장이 됐을 때 우리가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는 새삼 돌이켜볼 필요도 없다.

정경민 경제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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