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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인사이트]통신정보, 수사보다 인권이 우선이다

중앙일보 2016.03.1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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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업체가 법원 영장 없이 수사기관에 이용자 통신자료를 내주는 것은 옳은 일일까. 최근 이 문제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인권 보장과 수사 필요성이란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논란은 지난주 대법원이 차모(36)씨가 네이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2심이 네이버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반면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상반된 판단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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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카페 회원으로 활동하던 차씨는 2010년 3월4일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른바 ‘회피 연아’ 사진을 발견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수단이 귀국했을 때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김연아 선수 어깨를 두드리자 김 선수가 피하는 듯한 장면을 편집한 사진이었다. 차씨는 이 사진을 카페 유머게시판에 올렸다.

유 장관은 같은 달 5일 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3일 후 대상자 ID와 인적 사항 일체를 요구하는 자료제공요청서를 네이버에 보냈다. 네이버는 이틀 뒤 차씨의 ID, 이름, 주민등록번호, e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 인적 사항을 경찰에 제공했다. 이후 경찰 조사를 받은 차씨는 고소 취하로 사건이 종결된 뒤 네이버를 상대로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키지 않아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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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씨 주장은 네이버의 자료 제공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2심인 서울고법 민사24부(당시 재판장 김상준)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는 익명 표현의 자유도 포함된다”며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 표현은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통해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하게 된다는 점에서 강하게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통신자료 제공으로 범죄에 대한 신속한 대처 등 중요한 공익을 달성할 수 있음에 비해 제한되는 사익은 이용자의 인적 사항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이 두 개의 판단 사이엔 ‘인적 사항’의 중요성에 대한 시각차가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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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은 네이버에 대해 “국내 최대의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인터넷 종합 정보제공 사업자”라며 “서비스의 내용과 기능, 보유하는 개인정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춰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사무처리에 있어 상당한 정도의 공공성을 가진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네이버는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경우에도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실질적 심사의무를 인정해 그 제공으로 인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사인(私人)에게 전가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법이 네이버의 공공성을 중시한 데 반해 대법원은 ‘사인’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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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과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자료 요청에 응할 수 있다’는 법조항을 놓고도 다르게 해석했다. 서울고법은 “일반적인 수사 협조 의무를 확인하고 있을 뿐이어서 사업자가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 따라야 할 어떠한 의무도 없다”며 “사업자는 개인정보 제공 여부 등에 관해 충분히 심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업자로서는 수사기관이 형식적 절차적 요건을 갖추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할 경우 원칙적으로 이에 응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수사기관은 비밀을 엄수하도록 돼 있어 인적 사항이 수사기관에 제공됨으로 인한 사익의 침해 정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세 가지 쟁점에 대한 견해 차이가 '책임 인정' '책임 불인정'이란 결과를 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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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문병호 의원이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과 검찰, 국정원 등 수사·정보기관과 지방자치단체, 행정부처 등 20여개 정부 부처가 2010~2014년 통신사업자로부터 제공받은 고객 개인정보는 4742만여 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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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섭 군산대 학술연구교수는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법원의 허가 없이도 경찰서장 결재만으로도 수집이 가능하고, 초동 수사시 용의자를 좁혀나가는 수사기법으로 통신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보니 범죄와 관련성 없는 사람들의 인적 사항까지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2015년 논문 ‘범죄수사에 있어서 통신자료제공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이처럼 통신자료 제공제도가 남용되는 데는 ‘인적 사항쯤이야…’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주민번호 하나만 있으면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공공기관에서 추가적인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법원 영장도 없이 프라이버시가 까발려지는 것이다. 그 경우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네이버 등 대형 포털을 과연 ‘사인(私人)’으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네이버는 연 매출 3조2512억 원(2015년), 직원 수 2335명(2014년)에 이르는 기업이다. 특히 3700만명이 넘는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관리하고 있다. ‘공룡 포털’로 불리는 네이버의 책임을 가볍게 보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일까.

또 ‘자료 요청에 응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은 응할지, 응하지 않을지에 관한 판단을 사업자에게 맡기고 있다. 그것을 ‘원칙적으로 응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 대법원의 해석은 과도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전반적으로 인권 보장보다 수사 필요성에 치우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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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대법원 판결 직후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까지 법원의 영장 없이 이용자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집단소송 우려로 손해배상 판결에 상고할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 영장 없이 자료를 내줄 경우 이용자들이 동요할 것이란 또 다른 우려에 부딪힌 때문으로 보인다.

네이버 등 포털들은 2012년 10월 서울고법 판결 직후 영장 없는 자료 제공을 중단해왔다. 향후 수사기관과의 갈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통신자료를 계속 제공하고 있는 통신사들도 가입자들의 제공 사실 확인 요청이 쇄도하면서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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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권용섭 교수는 논문에서 “인권 보장과 수사 필요성을 절충하는 차원에서 포괄적 제공 요청이 아닌 개별적인 자료 요청을 하게끔 제도를 보완해야 있다”고 제시했다. 이용자가 자신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넘어간 사실을 사후에라도 알 수 있도록 사후 통지 절차를 규정해야 한다.

나아가 통신자료에 대해서도 영장주의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14년 4월 현행 통신자료 제공제도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한다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가입자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 등 통신자료를 ‘통신사실확인자료’에 포함시킴으로써 법원의 허가를 받아 요청하게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시민들의 사생활 보호는 물론 국내 IT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법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구시대적인 제도는 이제 손질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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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하게 범죄에 대응하고 효율적으로 수사하기 위해 영장 없는 통신자료 제공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특히 수사기관에선 흉악 범죄가 늘고 있는 마당에 일일이 영장을 받아 수사하긴 어렵다고 주장한다. 납치나 유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영장을 받아 추적에 나서는 상황을 상정해보면 그 필요성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회피 연아’ 사건은 급박성이 크다고 볼 수 없다. 영장을 발부받아 통신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납치·유괴 등 예외적인 경우를 갖고 인권을 제한하는 근거로 삼는 건 적절치 못하다. 예외적 사건에 한해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영장주의의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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