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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성 기자의 교육카페] ‘자녀의 미래’ 설계하고 계신가요? 꿈과 끼 믿고 지켜보는 건 어떨까요

중앙일보 2016.03.17 01:02 종합 23면 지면보기
지난주 월요일은 초3 첫째 딸의 방과후 학교 신청일이었죠. 선착순 방식이라 원하는 프로그램에 넣으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시스템이 열리는 오후 1시 정각에 접속하려 했는데, 점심 약속이 길어진 거예요.

1시5분, 급히 노트북을 폈지만 ‘바둑교실’은 이미 정원이 찼습니다. “바둑으로 집중력을 키우면 공부 잘한다”는 말에 욕심 냈는데, 저 같은 부모가 많았나 봅니다. 이어 ‘과학실험’을 클릭했으나 역시 마감입니다. 과학에 대한 흥미를 심어 공학도로 키우려던 아빠의 계획이 어긋났네요.

결국 아이가 원하던 ‘외발자전거’를 신청했죠. 공부에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망설였던 프로그램입니다. 탄식하던 저를 보고 동료가 “딸이 왜 배우려 하느냐”고 물었죠.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정작 딸에겐 외발자전거를 택한 이유를 물은 적이 없었거든요.

지난 한 주 대한민국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에 휩쓸렸습니다. ‘알사범’이 연거푸 3승을 거두자 인공지능(AI)에 대한 우려도 나오더군요. 포털 연관 검색어로 인공지능과 함께 ‘사라지는 직업’이 뜰 정도였죠.

기우가 아닙니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은 2020년까지 AI 로봇 때문에 일자리 700만 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200만 개뿐이고요. 청년 취업률은 떨어지는 데 일자리는 줄어든다니, 자식 키우는 부모는 불안할 수밖에 없죠. 이런 세상이니 저처럼, 부모의 생각으로 자녀를 ‘디자인’하려는 욕심이 드나 봅니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의 성장 과정은 이런 조급함과는 거리가 있더군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살폈습니다. 영국 유수의 명문대(케임브리지)를 졸업했지만, 유명 사립학교나 특목고 출신은 아닙니다. 별도의 입학시험이 없는, 집 주변의 평범한 공립학교(comprehensive school)를 다녔죠.

그는 항상 스스로의 꿈을 좇았습니다. 어린 시절 체스에 이어 게임에 빠졌고,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웁니다. “학교 공부보다 프로그래밍 같은 특별활동에 열중했다”고 회고하는 허사비스는 대학 입학 이후에도 창업과 학업을 오갔습니다.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요. 허사비스는 부모를 ‘신기술을 두려워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보헤미안’이라고 소개합니다. 그와는 딴판이죠. 부모는 물론 여동생(음악가), 남동생(작가)과도 워낙 달라 집안의 ‘골칫거리(black sheep)’였다는 농담도 하더군요.

적어도 부모가 아들 대신 유망 분야를 점찍어 준비시킨 건 아닌 듯합니다. 반대로 부모에겐 탐탁지 않은 세계로 향하는 아들이지만, 꿈과 끼를 믿고 지켜본 게 아닐까요. 그런 부모를 둔 것 때문인지 허사비스도 두 아들에게 “열정을 보일 분야를 찾을 때까지 공부 부담은 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어제 딸에게 외발자전거를 배우려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조금 두렵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남이 안 하는 걸 하고 싶다”고 하네요. 자녀의 꿈과 끼부터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AI 시대 교육’의 첫 단추 아닐까요.

천인성 교육팀장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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