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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쓸쓸하게 맞는 통일부 장관 취임 1주년

중앙일보 2016.03.17 00:28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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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16일 오전 8시30분 정부서울청사 본관 통일부 장관실. 아침마다 열리는 일일 점검회의 테이블에 생크림케이크가 한 조각씩 놓였다. 취임 1주년을 맞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을 위해 비서실에서 준비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회의 분위기는 파티와 거리가 멀었다. 간부들이 장관에게 “취임 1주년을 축하드린다”는 인사를 건네자 홍 장관은 어색하게 “고맙습니다”고 답한 게 전부다. 1주년을 맞는 소회나 특별한 언급도 없었다고 한다.

홍 장관은 이날 공식 일정조차 잡지 않았다. 대변인실이 공지한 공개 일정 숫자는 ‘0’이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장관은 부내에서 업무를 볼 예정”이라고만 말했다. 취임 1주년치고 조용하다 못해 쓸쓸했다.

사실 지금 홍 장관에겐 떠들썩해야 할 일이 별로 없다.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1년 전 취임사는 공허한 울림으로 남았다. 지난해 12월 관훈클럽 토론 때 꺼낸 “하이파이브(high five)” 얘기도 무색하다. ‘하이파이브론(論)’이란 두 사람이 만나 팔을 높이 들어 손바닥을 마주칠 때 높낮이가 맞아야 소리가 나듯 북한이 적당한 높이에서 손을 내밀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지금 남북은 하이파이브는커녕 언제 만날지도 감감무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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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 취임 1주년인 16일 공식 일정은 한 개도 없었다.


홍 장관부터 손을 거뒀다. 4차 핵실험(1월 6일)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월7일) 이후 남북 대화를 주무로 하는 부처의 수장인 그가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라고 불린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다.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는 지난 2일 통일부 창설 47주년 기념식에서도 이어졌다. 홍 장관의 일성은 “대북제재”에 초점이 맞춰졌다. 개성공단 유입자금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자금으로 전용됐다는 그의 강경 발언은 국회에서 증거 유무 논란까지 불렀을 정도다. 당시 피로 때문에 부르튼 입술은 보름이 다 된 지금도 아물지 않았다.

남북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남북 대화가 주 업무인 통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홍 장관의 취임 1주년이 씁쓸한 이유다. 그러나 그렇다고 ‘일정 0’ 같은 무기력에 침잠할 순 없다. 당장의 현실에 희망이 안 보인다면 미래 세대를 위해 통일교육을 강화하는 등 한반도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통일부가 나서야 한다.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닌, 춘래불사춘의 통일부엔 지금의 시련이 더 깊이, 더 멀리, 더 오래갈 그림을 그릴 때일 수도 있다.

“통일 문제를 단순히 나에게 주어진 업무가 아닌, 나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간다는 차원에서 생각해 주기 바랍니다. 통일 미래를 상상하며 창조적인 그림을 그려 봅시다.” 홍 장관의 1년 전 취임사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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