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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헐크’ 이만수의 뒤늦은 행복

중앙일보 2016.03.17 00:23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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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올해 58세 노장의 기억은 또렷했다. 그가 대구중 1학년 때였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던 시절, 교내방송에 귀를 쫑긋 세웠다. 야구부원을 모집하니 테스트를 받아 보라는 안내방송이었다. 1학년생 대부분이 운동장에 모였다. 그는 “믿기지 않겠지만 그때는 달리기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돌아봤다. 덕분에 야구부에 뽑혔다. 글러브를 처음 만졌고, 배트도 처음 휘둘렀다. 문제는 공이었다. 실밥이 자주 터졌다. 궁했던 살림살이, 어머니는 밤새 야구공을 기웠다. 공 하나를 되살리는 데 보통 두 시간이 걸렸다. 아들은 그 공으로 캐치볼을 하고, 홈런도 때렸다.

SK 와이번스 이만수 전 감독 얘기다. ‘헐크’ 이만수,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그는 기록의 사나이다. 프로야구 1호 안타, 1호 홈런, 1호 타점, 첫 100호 홈런 등을 남겼다. 2005년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 시절 월드시리즈 우승도 누렸다. 그럼에도 “요즘 야구 인생 46년 만에 처음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야구 불모지인 라오스 청소년과 함께 운동장을 돌고, 국내 유망주를 무료 지도하는 ‘인생 2라운드’에 푹 빠져 있다. “감독 때보다 집에 더 못 들어가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했다.

이 감독은 2014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프로야구를 떠났다. 그리고 바로 라오스로 날아갔다. “변변한 놀이문화가 없는 라오스의 가난한 아이들을 도와달라”는 현지 교민의 요청이 계기가 됐다. 어렵게 운동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사비 1000만원을 들여 야구용품을 보냈고, 직접 현장도 찾았다. 라오스 최초의 야구단 ‘라오 브러더스’도 창단했다. 지난해에는 전국 초·중·고 야구부 40여 곳을 돌며 어린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올해에는 사회인야구로 영역을 넓혔다.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쁨도 채 열흘이 가지 않았습니다. 되레 허탈해지기도 했죠. 지금은 1년 내내 즐거워요.”

행복의 원천은 나눔이다. 이 감독의 표현으론 ‘퍼주기’다. 그가 또 일을 벌였다. 라오스에 야구장을 짓는 프로젝트다. 포털 다음에 스토리펀딩을 개설, 십시일반으로 모으고 있다. 성금 마감 52일을 남긴 16일 현재 목표액 1000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런 호응은 전혀 예상 못했어요. 제가 나쁘게 살진 않았나 보죠. 매일 ‘감사합니다’를 달고 삽니다.” 대스타의 멋진 반전, 고령화 사회 우리의 선택을 보여준다. 굳이 유명인에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모든 어른은 삶의 대학교이자 박물관 아닌가. ‘노인을 위한 나라’, 분명 있다. 하기 나름이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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