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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⑦ 기네스의 깊은 맛을 찾아서

중앙일보 2016.03.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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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스토어하우스 주변에는 늘 마차가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공항 입국 심사대 앞, 심사원이 퉁명스런 목소리로 더블린에 온 이유를 물었다. 기네스(Guinness) 맥주를 마시러 왔다고 하자, 그는 한국에는 기네스가 없느냐고 되물었다. 그 흔한 맥주를 마시러 여기까지 온 게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순도 100%의 사실을 말했는데, 이렇게 싸늘할 수가! 그냥 여행왔다고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삼키며 말을 이었다.

“한국에도 기네스 맥주는 있지만, 기네스 스토어하우스(Storehouse)가 없잖아요. 거기서 신선한 기네스를 마시는 게 제 여행의 목적이에요.”

그제야 그는 누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몇 가지 더 확인한 후 입국을 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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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스토어하우스의 외관.

기네스 애호가는 말할 것도 없고, 더블린 여행자라면 누구나 들르는 곳이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다.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Saint James Gate)’ 양조장 안에 있는 이곳은 더블린 대표 맥주, 기네스의 역사와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는 7층 규모의 체험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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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의 기네스는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에서 만든다.

1759년, 35세 청년 사업가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가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을 빌려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천년만년 대대손손 맥주를 만들리라 맘먹었는지 자그마치 9000년 임대계약을 맺었다. 자식도 21명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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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맥주를 담던 나무통 캐스크.

아서 기네스가 자신의 이름을 딴 ‘기네스’를 내놓은 것은 더블린에서 포터(Porter)가 인기를 끌면서였다. 포터란 18세기 런던에서 유행한 흑맥주로 짐꾼(포터)들이 즐겨 마셨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그는 전투적으로 포터를 연구한 끝에, 포터보다 강렬한 ‘엑스트라 스타우트 포터(Guinness Extra Stout)’를 선보였다. 짙은 색만큼 깊은 맛과 성직자의 흰 옷깃을 연상케 하는 순백의 거품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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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 다녀간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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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아카데미 강사가 기네스를 맛있게 따르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엑스트라 스타우트 포터는 줄여서 ‘스타우트’라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포터의 본고장 런던으로 역수출까지 했다. 강하다는 뜻의 스타우트(Stout)는 높은 알코올 도수(7.5도)와 입안을 가득 채우는 진한 맛을 강조한 표현이다.

지금은 ‘기네스 엑스트라 스타우트’ 외에도 ‘기네스 드래프트’, ‘기네스 더블린 포터’ 등이 한해에만 150개국에서 1000만 잔 이상 팔린다. 한국에 수입하는 것은 더블린에서 만든 기네스 드래프트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 마디 말보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견학 한 번이면 기네스에 대한 모든 궁금증이 풀린다. 우선, 1층 입구에선 바닥에 주목해야 한다. 아서 기네스가 서명한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 9000년 임대 계약서가 유리 아래에 깔려 있다.
2층에선 기네스의 4대 원료인 물, 보리, 홉(Hop), 이스트(Yeast)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여기서 잠깐, ‘재료에 몰트가 아니라 보리가 있지?’ 라는 의문을 품었다면 당신은 맥주 맛 좀 아는 축에 속한다. 몰트란 보리나 밀 등 곡물의 싹을 틔워 건조한 것으로, 맥주의 색·맛·향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영국산 포터의 경우 진한 색과 맛을 위해 브라운 몰트를 쓴다.

범작과 명작은 한 끗 차이라 했던가. 기네스는 한 끗이 달랐다. 몰트에 싹 틔우지 않은 보리를 볶아 섞어 사용했다. 원두처럼 강하게 볶은 보리는 기네스에 커피 향처럼 고소한 풍미를 더했다. 기네스를 처음 잔에 따를 때 ‘딥 루비 레드(Deep Ruby Red)’ 빛깔을 띠다가 서서히 초콜릿색으로 변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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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람객이 진지한 표정으로 기네스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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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스토어하우스 7층, 그래비티 바에서 마신 기네스 한 잔.
그렇게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를 한 층 한 층 오르다 보니 기네스의 맛과 역사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무로 된 맥주통 캐스크(Cask)에 기네스를 담아 운송하던 시절엔 300명의 쿠퍼(Cooper, 캐스크 만드는 사람)가 일했으며, 캐스크 34만 개를 세계 각국으로 배송했단다. 시대별 기네스 광고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짜릿한 경험은 4층의 기네스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기네스 따르는 법’이었다. 45도 각도로 따른 후, 질소가 충분히 섞이게 2분간 가만히 두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는 나머지 부분을 보드라운 거품으로 촘촘하게 채워야 ‘완벽한 한 잔’이 완성된다.

직접 따른 기네스를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마실 수도 있지만, 이 잔을 들고 7층 그래비티 바(Gravity Bar)로 가도 된다. 그래비티 바는 더블린 시내를 360도로 굽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사방이 통유리로 돼 있다.

그래비티 바에서 더블린을 내려다보며 기네스 한 모금을 들이키자, ‘캬’ 소리가 절로 났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기네스를 마시는 여행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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