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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초상, 금강산…고려인 변월룡 회고전

중앙일보 2016.03.15 01:34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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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변월룡(1916~90·사진)은 경계에 섰던 화가였다.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교육받고 일제강점, 분단과 전쟁, 이념대립 등을 거치는 조국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지켜본 것은 한국 근현대사 뿐이 아니다. 공산주의 혁명, 제2차 세계대전, 전체주의, 냉전, 개혁과 개방을 거치는 러시아를 몸으로 통과했다. 그림은 그의 무기였고 증언록이었다. 휴전선 북쪽은 가보았지만 남쪽에는 오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조선미술사에서 특이한 이력의 화가로 기록될 그의 작품이 사후 26년 만에 남녘땅에 왔다. 지난 3일 서울 세종대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한 ‘변월룡 전’은 화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려 마련된 국내 최초 회고전이다. 이산(離散)의 흔적이 사무친 그림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평양미술대학장 지낸 화가 작품
사후 26년 만에 서울서 첫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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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월룡이 1954년 그린 ‘무용가 최승희의 초상’. 북에서 만난 최의 기록이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북으로 간 무용가 최승희(1911~67)와 화가 김용준(1904~67)의 초상은 20세기 조선 문화사의 빈 구멍을 메워줄 중립적 기록물로 의미가 있다. 그들과 나눈 편지와 각종 자료가 사료로 재해석되기를 기다리며 쌓여있다. 1953년 작 ‘판문점에서의 북한포로 송환’은 화가 이쾌대(1913~65)를 추억하는 그림자가 짙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눌린 인간 군상의 묘사가 함축적이다. 1953년부터 54년까지 소련 문화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을 방문해 평양미술대학 학장을 지낸 변월룡은 고향 산천과 인간사를 시시콜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선전을 위해 변월룡이 그린 각종 포스터 원화는 흥미롭다. 특히 에칭(동판화)에서 일군 성취는 지금 봐도 뛰어나다. 바람에 휩쓸린 나무의 섬세한 표현, 금강산 만물상의 기기묘묘한 괴석과 절벽의 극적인 터치는 바로 어제 그린 듯 생생하다. 그가 생의 마지막에 죽음을 앞두고 그린 그림은 금강산 소나무였다.

전시는 5월 8일까지. 연계 강좌로 26일 이번 전시 기획자인 문영대씨의 ‘변월룡의 삶과 예술’, 4월 9일 미술사가 이진숙씨의 ‘변월룡과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미술’, 23일 미술사학자 박계리씨의 ‘1950, 60년대 한국 화단 속 변월룡의 영향’이 매회 오후 2시 이어진다. 02-2022-060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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