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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유승민·윤상현 운명이 주목되는 이유

중앙일보 2016.03.14 19:34 종합 34면 지면보기
공천권은 정당이 행사하지만 선발과정이 투명하고 원칙과 기준이 반듯해야 하며 여론의 검증과 민심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어제 저녁 새누리당 공천관리위는 대구의 서상기·주호영·권은희·홍지만 등 현역 의원에 대해 공천배제 발표를 했다. 3선의 서·주 의원은 각각 친박·비박의 중진으로 새누리의 물갈이 폭이 야당에 비해 적다는 비판에 따라 공평하게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권·홍 의원은 초선으로 이른바 대표적인 유승민계로 꼽힌다.

이에 앞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례적으로 긴급 브리핑을 자처해 현역 의원의 세 가지 탈락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국회의원의 품위에 적합한가 둘째, 당 정체성에 적합한가 셋째, 상대적으로 편한 지역의 다선 의원들은 양보하는 게 낫지 않은가 등이다. 이한구 위원장의 발언은 공천 완료를 하루 앞두고 느닷없이 튀어 나왔다. 이 기준이 처음부터 제시됐다면 논란이 덜했을 것이다. 살생부 파동→비공개 여론조사 유출→윤상현 욕설·녹취 파문 등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숱한 파행과 무리수 끝에 나왔기에 특정인의 탈락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바로 나왔다. 국회의원 품위 적합성은 윤상현 의원을, 당 정체성 적합도는 유승민 의원을 겨냥했다는 게 합리적 추론일 것이다. 탈락 표적을 정해 놓고 발표시 반발과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날림으로 기준을 만들어 공표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목표를 정해놓고 절차를 짜맞추는 ‘기교(技巧) 공천’이라고나 할까.

박근혜 대통령의 정무특보였던 윤상현 의원과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지목한 유승민 의원을 선거판에서 동시에 퇴장시켜 공천 평가에 물타기를 해보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윤상현 의원의 욕설·녹취 파문은 비록 사석에서 취중에 한 언급이 불법녹취돼 공개됐다는 점에서 본인의 억울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간의 품위, 정당의 기강, 정치공작의 냄새 때문에 당이 공천을 줄 수 없는 사안이다. 반면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발언 등으로 박 대통령의 비판을 받긴 했으나 당의 중진이자 원내 지도자로서 복지국가의 비전과 방법론을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 집권당 소속 의회 지도자가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을 허수아비처럼 구현하는 돌격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이제 국민 일반이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따라서 유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국회 지도자로서 행한 언행을 당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 건 다수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실 이 문제는 ‘가치(價値) 정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책임정치론과 의회민주주의론의 시대적 논쟁으로 격상시킬 만하다. 유승민 의원의 당 정체성이 진정 문제라면 여론조사 경선에 참여시켜 당원·유권자의 판단을 구하는 게 순리이고 공정한 게임일 것이다. 유승민·윤상현 의원의 공천 문제는 서로 완전히 다른 케이스다. 두 사람의 운명이 친박과 비박의 정치적인 거래 대상으로 취급되는 건 한국 정치의 수치다. 집권당이 청와대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을 자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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