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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왕자'였던 LG 이형종, 히메네스 한 마디에 미소

중앙일보 2016.03.14 18:36

지난 13일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프로야구 시범경기.

LG 우익수 이형종(27)은 팀이 2-6으로 뒤진 9회 초 선두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는 백전노장 잠수함 투수 롯데 정대현(38). 첫 번째 공을 그대로 흘려보낸 이형종은 2구째 가운데로 살짝 몰린 커브를 그대로 잡아당겼다. 좌측 펜스를 훌쩍 넘는 솔로 홈런.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빠르게 그라운드를 돈 이형종은 더그아웃에 들어와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표정 변화가 없던 그는 외국인 선수 히메네스(28)의 장난섞인 한 마디를 듣고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울지마(Don't Cry)."

그의 별명은 '눈물의 왕자'였다. 이형종은 서울고 3학년이던 2007년 중앙일보가 주최한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광주일고를 상대로 1회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전날 무려 147개의 공을 던졌던 그는 선발 투수가 원아웃만 잡고 난타당하자 팀을 구하기 위해 1회부터 구원 등판할 수 밖에 없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서울고엔 더 이상 바꿀 투수가 없었다. 1회 1사에서 등판한 그는 9-8, 1점차로 앞선 9회 말에도 꿋꿋이 마운드를 지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힘이 떨어졌다. 9-9 동점 적시타를 맞은 뒤 이형종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끝내기 안타를 허용한 뒤엔 마운드 위에서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다.

이형종은 "고교 3학년 때까지 승승장구했던 나에게 처음으로 실패를 가르쳐 준 경기였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2008년 고교를 졸업한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LG에 입단했다. 고졸 신인으로선 파격적인 계약금 4억3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입단 후 그는 공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다.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재활과 수술을 반복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갔다. 2010년 1군에 두 차례 등판해 데뷔 첫 승을 맛봤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구단과의 갈등을 빚으면서 팀 훈련에서 이탈했고, 시즌을 마친 뒤 결국 야구를 그만뒀다.

그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골프 클럽을 휘둘렀다. 프로골퍼가 되기 위해 프로 테스트에 응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그의 눈 앞엔 야구공이 어른거렸다. 1년여의 외도를 끝내고 그는 다시 야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2013년 LG는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 이형종은 "다시 공을 던지고 싶었다. 그런데 팔꿈치가 괜찮아지니 이번엔 어깨가 아팠다.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투수의 꿈을 접었다. 대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타자로 전향했다"고 밝혔다.

투수→골퍼→타자로 전향한 이형종은 지난해 퓨처스리그(2군)에서 39경기에 나와 타율 0.305, 13타점 5도루를 기록했다. 이형종을 눈여겨보던 양상문(55) LG감독이 지난 겨울 그를 1군 스프링캠프로 불러올렸다. 그리고는 시범 경기에 나섰다. 첫 4경기에선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던 그는 13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터뜨렸다. 이형종은 "안타가 나오지 않아 걱정했는데 첫 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해 기분이 좋다. 공식 경기 첫 홈런이라 기분이 남달랐다"고 말했다.

양상문 감독은 "타자로 전향한 지 1년 밖에 안됐지만 타격 재능이 뛰어나다. 그래도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종은 2008년 LG 투수 코치였던 양상문 감독을 처음 만났다. 그는 "신인 때 많이 챙겨주셨는데 몸이 아픈 탓에 보여드린 게 없었다. 이제는 감독님께 보답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해 9위에 그쳤던 LG는 젊은 야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하고 있다. 기량이 성장한 선수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이형종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올해는 1군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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