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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옆 신도시에 유엔기구 유치, 안동을 관광 거점으로”

중앙일보 2016.03.14 03:00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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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청 안동 신청사는 한옥 스타일로 지어져 전통미를 풍긴다. 너무 웅장해 호화롭다는 반응도 있지만 ㎡당 공사 단가는 오히려 서울시청이나 충남도청보다 적게 들었다고 한다. 11일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신청사 본관 앞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웅도 경북’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박근혜 대통령과 경북도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0일 경상북도 청사 개청식이 성대히 열렸다. 이로써 경북도는 120년 만에 대구를 떠나 ‘안동 시대’를 열었다.

김관용 경북지사 인터뷰
도청 이전으로 개발 축 하나 더 생겨
대구·구미·포항 3륜구동서 4륜으로


안동시 풍천면 갈전리 14만3747㎡ 부지에 들어선 신청사는 콘크리트 건물에 기와를 올린 독특한 7층짜리 한옥으로 지어졌다. 솟을대문을 지나 청사로 들어가며 본관 앞에는 84m 길이의 회랑이 배치돼 정체성과 전통미를 한껏 살렸다. 지난해 10월 현장을 찾은 탈립 리파이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사무총장이 “이게 바로 한국(That is Korea)”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경북도는 도청 이전을 계기로 세종시와 동서로 나란히 ‘한반도 허리경제권’을 구축하고, 낙후된 경북 북부지역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청사진을 만들었다. 11일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김관용(73) 경북도지사를 신청사 집무실에서 1시간 동안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김 지사는 본관 1층 로비를 돌며 지역의 독특한 문화 아이콘을 소개했다. 로비 중앙에 목판으로 복원한 삼국유사가 전시돼 있고, 왼쪽 벽면에는 ‘德業日新 網羅四方(덕업일신 망라사방)’이란 글귀가 걸려 있었다. ‘덕업이 날로 새롭고 사방을 두루 망라한다’는 뜻인데 1000년간 문화의 꽃을 피운 신라의 국호가 여기서 유래했다. 신(新)과 망(網)에 담긴 혁신과 네트워크 정신은 21세기에도 유효해 보였다.

김관용 지사는 2006년 첫 도지사 출마 때 도청 이전을 공약하고 후보지 결정, 건설, 개청까지 모든 과정을 재임 중에 해냈다. 인터뷰에서 김 지사는 도청 신청사 옆에 조성 중인 신도시(10.9㎢)에 UNWTO 산하에서 출발한 ‘스텝(ST-EP)재단(이사장 도영심)’의 본부 유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스텝국제기구는 관광을 통한 빈곤 해결이 목표다. 김 지사는 “새마을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교류한 이 국제기구가 안동으로 오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도영심 이사장은 “기구 가입을 희망한 50여 개국의 대표가 오는 28일 서울에서 가서명식을 한다”며 “본부 설치는 현재 국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도청 이전의 역사적 의미는.
“단순히 청사 건물을 이전한 천도(遷道) 차원이 아니다. 도읍을 옮기듯 행정과 문화, 역사와 혼을 함께 옮기는 천도(遷都)의 의미가 담겨 있다.”
1991년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된 뒤 25년 만의 일인데.
“2006년 처음 도지사에 출마할 때 도청 이전을 공약해 당선되자 주변에서 이전을 추진하지 말라고 했다. 도민 300만 명 중에 20만 명 정도만 거주하는 안동·예천으로 도청을 이전하면 다음 도지사 선거에서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그 말을 듣고 솔직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려 추진했다. 공약을 지켰더니 낙선이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75% 지지율로 당선했다. 백성은 지혜롭기도 하고 (공복에게는)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을 그때 했다.”
 
10일 개청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에게 어떤 지원 요청을 했고, 어떤 약속을 얻어냈나.
“내년에 열리는 베트남 실크로드 축제와 원자력 클러스터 조성 사업이 현안이라 지원을 요청했다. 즉답은 없었지만 웃으셨다. 대통령은 경북이 전통문화에 정보통신기술(ICT)의 옷을 입히는 게 좋겠다고 했다. 권역별로 포항 등 동해안권은 신소재·해양, 구미 등 서부권은 스마트 융복합, 남부권은 창의지식산업 등을 직접 언급했는데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95년 7월 민선 자치단체장 시대가 부활하면서 김 지사는 구미시장 3선에 이어 경북지사 3선을 기록했다. 단체장 중에서 유일하다. 이 때문에 그는 민선 지방자치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지방 행정의 달인’답게 전략적 사고에 능했다.

그는 “세종시는 남하하고 경북은 대구에서 북상해 위도 36도 선에서 만났다. 신라 문화가 중원, 백제 문화와 만나고 환동해와 환서해가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논리를 폈다. 도청 이전으로 경북 남부가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에 “ 북부 11개 시·군에 개발 축이 하나 더 생긴다. 대구·구미·포항의 3륜구동이 4륜구동으로 되고 대구·경북의 파이는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동서를 잇는 36도 허리경제권은 어떻게 추진하나.
“한반도 허리에서 전북·충남·충북·경북이 이어진다. 단체장들의 정당은 다르지만 세종시와 경북도청을 잇는 107㎞ 고속도로 건설에 합의했다. 개청식에 충북지사·전남지사가 참석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지난 20년을 ‘불행한 지방자치’라고 했는데.
“권력 구조를 바꾸는 개헌엔 관심이 없고 헌법에 분권을 명시하는 개헌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87년에 헌법이 개정된 이후인 91년에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헌법에 분권 이념이 반영되지 못했다. 헌법 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대한민국은 지방 분권형 국가이다’로 바꿔야 한다.”
그동안 공기업과 혁신도시가 지방으로 많이 이전했다. 균형발전 효과가 없나.
“하위 개념으로서 분산은 됐지만 상위 개념인 분권은 아직 안 됐다. 근본적인 자치입법권·자치조직권·자치재정권이 헌법에 명문화돼야 진정한 지방자치다. 통치의 기본은 인적·물적 자원의 효율적 배치다.”
TK(대구·경북) 세력이 오래 집권했는데 지역 경제 성적은 하위권이다. 신라의 혁신정신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정치인들이 선거 때 표만 받고 고향을 살피지 않아서인가.
“경제 발전에는 균형론과 불균형론이 있다. 끝없이 논쟁한다. 지금은 수도권 집중론자들이 정책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은 현재 심각하다. 그냥 두면 언젠가는 재앙이 된다. 수도권은 비만이 되고 지방은 영양실조에 걸린다. 수도권에 꼭 있어야 할 건 빼고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인데 선출직 목민관(牧民官)으로서 6전 6승의 비결은.
“제일 덕목은 겸손이다. 나를 낮추니까 좀 잘못해도 도민들께서 용서해 주더라. 또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진실이 우선은 불편할 수 있지만 결국은 통한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73.5%(리얼미터 조사)로 1위를 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누구?

김관용 지사는 늘 '스펙'이 뛰어나지 않다고 겸손해 한다. 명문 집안도, 명문 학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이웃이 그를 '꼴머슴(소 풀을 베 주고 끼니를 해결하는 것)'으로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 길로 구미를 떠나 대구 서문시장에서 좌판으로 생계를 꾸렸다. 아들은 대구사범학교에 들어가 스무 살에 구미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교사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일화 하나. 당직을 서고 있는데 기자가 찾아와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인 박정희의 생활기록부를 보자고 했다. 구미초교가 대통령의 모교였다. 김 교사는 자료를 찾아 보았다. 대부분 과목의 성적이 우수한 '갑(甲)'이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기자에게 보여줬다. 부의장의 성적표가 신문에 공개되자 난리가 났다. 2년차 초임 교사는 시말서를 썼다. 김 지사는 "정작 대통령 생전에는 손 한번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부를 더 하겠다며 청구대(영남대 전신) 야간부에 들어갔다. 옆에서 고시에 합격하는 학생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행정고시에 뛰어들었다. 교장 선생님은 눈치를 채고 "잘못하면 사람만 버린다"며 고시를 만류했다. 용케 합격했다. 동네 어른이 중매를 섰다. 상대는 경북 안동에서 국회의원과 방송사 사장을 지낸 명문가의 규수였다. 내세울 건 고시 합격 하나였다. 장인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일찍 혼자가 된 어머니는 거칠게 살았다. 논물 때문에 시비가 붙자 어머니는 남정네를 논바닥에 패대기쳤다. 김 지사는 "배포는 어머니 반도 안된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 처가이자 유림의 본향인 안동에서 일하니 몸가짐이 조심스러워 시집살이를 하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병무청과 국세청, 청와대 비서관 등을 거쳐 1995년 구미시장 선거에 첫 출마했다. 상대가 '낙하산'이라며 공격했다. 그는 즉석에서 재치로 받아쳤다. "나는 육군 소총수 출신이어서 낙하산을 타 본 적이 없다." 유권자들은 말도 참 잘한다고 소문을 냈다. 구미시장 3선을 하고는 도지사에 뛰어들어 다시 3선째. 6선 단체장은 20년 지방자치 역사상 처음이다.

운동은 청소년 시절 기 죽지 않으려고 배운 태권도를 한다. 3단이다. 취미는 일이다. 일에 '미쳐' 살다 보니 그릇이 채워져 넘치고 더 큰 그릇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목표를 정해 놓고 무엇이 되겠다는 연역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말한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만난 사람=장세정 지역뉴스부장, 송의호 기자

정리=김윤호 기자 yeeho@joongang.co.kr

◆김관용=1942년 구미 출생. 대구사범, 영남대 경제학과 졸업. 행시 10회. 대통령민정비서실 근무.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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