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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알파고, 생각 못한 수에 버그”

중앙일보 2016.03.14 02:13 종합 3면 지면보기

한 판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받은 건 처음이다.”


13일 이세돌 9단은 환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1국 패배 직후의 헛웃음과는 달랐다. 이날 4국에서 알파고에 승리를 거둔 이 9단이 회견장에 입장하는 순간, 장내에는 큰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한 판 이기고 이런 축하 받은 건 처음
국민들께 감사, 격려 덕분에 이겼다
알파고 흑 싫어해, 5국 땐 흑 잡고싶어”


이 9단은 맨 처음에는 4대 0, 혹은 5대 0을 자신했던 걸 돌이키며 “만약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한 판 정도 졌다면 진 게 아까웠을 듯한데 이제는 한 판 이긴 게 이렇게 기쁠 수 없다”며 “값어치로 매길 수 없는 1승”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적인 성원과 응원을 의식한 듯 “여러분의 격려 덕에 한 판이라도 이긴 것 같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문답에서 그는 “알파고가 노출한 약점은 두 가지”라고 설명했다. 첫째로 “흑을 더 힘들어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둘째로 “오늘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수가 나왔을 때 일종의 버그 형태로 몇 수가 진행됐다”며 “생각 못한 수가 나왔을 때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앞서 세 번의 패배에 대해서는 “충격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있긴 있었는데 대국을 중단할 만한 건 아니었다”며 “물론 그 결과가 좋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즐겁게 바둑을 둬 내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날 승리를 가져온 이른바 신의 한 수에 대해서는 “그 장면에서는 다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던 한 수였는데 이렇게 칭찬을 받아서 어리둥절하다”고 말했다.

이날 백으로 승리를 거둔 이 9단은 5국에서는 “흑으로 두고 싶다”며 “흑으로 이겨 보는 게 백으로 이기는 것보다 값어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도 동의를 표했다.

기자회견에서는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 논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 9단은 “알파고에 대해 처음부터 정보가 있었으면 수월했겠지만 기본적으로 내 능력이 부족해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대범하게 말했다. 허사비스 역시 “알파고를 이 9단의 기풍에 맞춰 훈련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알파고의 학습 방식에 대해 “인터넷상의 아마추어 기보를 알려주고 훈련해 스스로 바둑을 두는 범용 학습방법을 사용했다”며 “이 9단의 기보를 입력했거나 맞춤형 대응을 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허사비스는 또 이날 알파고의 버전이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동일한 버전인 분산형 시스템을 사용했다”고 답했다.

송태곤 9단은 “(이 9단이) 알파고와 대국하면서 알파고의 생각을 알아가고 익숙해지는 것 같다”며 “ 5국에서 좀 더 재미있는 승부를 펼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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