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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 78에 흔들린 알파고 “resigns” 돌 던졌다

중앙일보 2016.03.14 02:07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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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가 컴퓨터 스크린에 띄운 팝업창. 알파고를 대신해 돌을 놓던 아자 황 아마 6단은 이를 보고 돌을 던졌다. “‘W+ Resign(백 불계승)’이라는 결과가 게임 정보에 추가됐다”는 의미다. [사진 바둑TV]

이세돌 9단의 ‘신의 한 수’가 인공지능 알파고를 무력화했다.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 알파고의 손 역할을 하는 아자 황 아마 6단이 돌을 던졌다. 알파고가 컴퓨터 스크린에 띄운 ‘불계패(AlphaGo Resigns·그만두겠다는 뜻)’란 팝업창을 보고 나서다. 이 9단이 알파고에 180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는 순간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흑 알파고-백 이세돌 4국 분석
흑 초반 중앙세력, 신선한 수 많아
백 초읽기 몰리다 회심의 한 수

이날 대국은 초중반까지 호각이었다. 알파고는 기세 좋게 중앙에 커다란 세력을 쌓으며 좋은 흐름을 만들어냈다. 1~3국처럼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 신선한 수도 보여줬다. 좌하귀에서 화점에 붙인 23이 대표적이다. 고근태 9단은 “23은 모양에 대한 선입견과 맛을 없애는 듯한 느낌 때문에 쉽게 두기 어려운 수”라며 “초반은 알파고가 신선한 수를 많이 둬서 알파고가 두터운 흐름”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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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과 우변을 바꿔치기 했으나 알파고가 여전히 우세한 것처럼 보이자 이세돌 9단은 백 70으로 알파고의 중앙 흑집 삭감에 나섰다. 이어진 공방에서 나온 이 9단의 78(총보 빨간색 원)이 묘수. 알파고의 ‘이상 작동’을 유도해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손종수 객원기자(아마 5단)]


첫 접전은 좌중앙에서 일어났다. 미세하지만 이 9단이 알파고에 밀리는 양상이었다. 3시57분, 제한 시간 2시간을 모두 쓴 이 9단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이 9단은 피 말리는 전투를 벌여야 했다. 형세로나 시간으로나 이 9단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는 ‘쎈돌’의 단 한 수로 해결됐다. 이 9단이 중앙에서 78로 끼우는 묘수를 둔 것. 알파고는 갑자기 79~101까지 연속으로 어이없는 수를 두기 시작했다. 대국을 지켜보던 해설장은 술렁였다. 현장에서 해설을 하던 프로기사들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송태곤 9단은 “‘바둑의 신’인 ‘알사범’인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며 “아무래도 오류가 난 것 같다”고 했다. 한종진 9단 역시 “알파고의 일련의 수순은 아무리 의도를 파악하려 해도 오류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며 “이 9단이 기보에 없는 묘수로 공격을 해오자 알파고가 당황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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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변으로 방향을 전환한 알파고는 83에 이어 87~95(참고도 흑5~13)까지 악수를 잇따라 쏟아냈다. 좌하귀의 97(참고도 15) 역시 알파고의 이상 감각(?)을 감안하더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였다. 곧바로 이 9단이 중앙에 수를 내서 사실상 승부가 끝났다. 알파고는 가공할 끝내기로 다시 박빙의 승부로 이끄는 괴력을 발휘했으나 역전에는 이르지 못했다. [손종수 객원기자(아마 5단)]


알파고의 연이은 패착 이후 형세는 이 9단 쪽으로 기울었다. 남은 끝내기에서도 알파고는 수준 이하의 수순을 보여줬다. 알파고는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국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돌바람’을 개발한 누리그림의 임재범 대표는 “알파고처럼 몬테카를로 방식에 기반한 프로그램들은 이길 확률이 낮다고 판단하면 엉터리 수를 둘 가능성이 크다”며 “알파고의 무기력한 끝내기는 컴퓨터 바둑이 지고 있을 때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무의미한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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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들은 이 9단의 묘수가 극적으로 상황을 타개했다고 평가했다. 이현욱 8단은 “이세돌 9단이 흑의 영토에 들어가서 수를 냈는데, 정상적으로 수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들 생각할 수도 없는 수를 둔 것”이라고 놀라워했다. 이다혜 4단도 “이 9단이 극적으로 신의 한 수를 찾아냈다. 기존의 데이터에 없는 창의적이고 기발한 수이기 때문에 알파고가 대응수를 찾지 못했고, 그 결과 크게 흔들린 것 같다”고 말했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역시 알파고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알파고가 불계패하기 40분 전 자신의 트위터에 “알파고는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87수에서 혼란을 겪었다. 우리는 지금 곤란에 빠져 있다…”는 글을 올렸다. 곧 이어 “79수에 실수가 있었다. 알파고는 그걸 87수에서야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대국 종료 10분 전에는 “알파고의 승률이 79수에서는 70%였는데 87수에서 추락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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