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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우리가 시를 사랑할 자격이 있나?"

중앙일보 2016.03.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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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을 하루 앞둔 2월 29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이준익 감독

눈 뜨자마자 본 신문에서 영화 ‘동주’가 흥행 돌풍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자마자 본 누군가의 SNS, 꼭 봐야 할 영화로 ‘동주’와 ‘귀향’을 추천해 놓았다.


그래서 그날 저녁 마음먹고 영화 ‘동주’를 봤다.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던 윤동주 시인, 영화를 통해 다시 알았다.
그리고 전혀 몰랐던 송몽규 열사, 영화 덕에 처음 알게 되었다.
먹먹하고 부끄러웠다.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감독에게 고마움의 감정이 생긴 건 처음이었다.
일면식도 없었던 그의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영화를 본 후 식당에 갔다.
식당입구에 이준익 감독의 사인이 있었다.
영화의 여운이 남아 있던 터라 그 이름만으로도 반갑고 묘했다.

그때 마침 취재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에 남아있는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기획기사로 준비하고 있는데요.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에서 이준익 감독의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게 희한하다 싶었다.
하루의 일정이 절묘하게도 이 감독과 만나야 할 운명처럼 맞물려 있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윤동주 문학관’을 익히 알고 있었다.
2012년 이곳을 설계한 이소진 건축가를 인터뷰한 적 있었다.
원래 청운수도가압장이었던 이곳을 윤동주 문학관으로 리모델링한 주인공이었다.
당시 그녀의 안내로 공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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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순서대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실내 전시실인 ‘시인채’, 천장이 열린 ‘열린 우물’, 물탱크의 원형을 유지한 ‘닫힌 우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틀 후, 윤동주 문학관으로 갔다.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꽤 많은 관람객이 ‘시인채’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이 감독이 오기 전 취재기자에게 확인 차 질문을 했다.
“이번 기사의 주제가 이 감독, 아니면 공간인가?”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소개하는 것이니 공간이 핵심이죠. 이감독이 공간을 소개하는 메시지면 됩니다.”
“요즘 많이 바쁜가 보던데 어쩐 일로 예까지 오시지?”
“그러게요. 전화 드렸더니 의외로 흔쾌하게 오신다고 했어요.”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 감독이 심층인터뷰의 대상이 아니다.
기사의 주목을 유도하는 모델 역할인 셈이다.
그런데도 한참 바쁠 시기에 흔쾌히 그 역할을 하러 오는 것이다.
흔치 않을뿐더러 고마운 일이었다.

정확한 시간에 이 감독이 왔다.
멀리 오시게 해서 죄송하다며 인사를 드렸다.
가까운 곳에 살기에 오래 전부터 자주 들리는 곳이라고 그가 답했다.
심지어 배우와 스태프에게도 꼭 들러보라고 권했던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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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관람객들이 ‘열린 우물’ 이동한 상황이라 바로 ‘시인채’에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윤동주 시인의 시 ‘자화상’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 공간이었다.
모형 우물과 그것을 둘러싼 유리에 반영된 이 감독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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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관람객들은 ‘열린 우물’에 있었다.
그들이 ‘닫힌 우물’에 들어가면 한동안 기다려야 한다.
그 안에서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보는 시간이 꽤 길기 때문이다.

서둘러 관람객을 지나쳐 ‘닫힌 우물’로 들어서며 양해를 구했다.
그들은 제주에서 온 관람객이라고 했다.
영화 ‘동주’를 이미 보고 왔다고도 했다.
그리고 촬영을 마친 후 이감독과 기념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감독이 그리하겠노라 약속하고 ‘닫힌 우물’로 들어섰다.

철문을 닫았다.
카메라가 허용하는 노출의 한계치에 턱없이 부족할 만큼 어두웠다.
영상의 기술적인 부분까지 꿰고 있는 이 감독이 노출을 염려하며 한마디 했다.
“문 닫으면 너무 어두워 사진을 찍을 수 있나요?”
“어둡긴 하지만 한번 시도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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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탱크 상층부의 작은 창을 통과하여 내려오는 한줄기 빛을 살리는 게 관건이었다.
문을 조금이라도 열면 희미한 그 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카메라 플래시를 사용해도 그 빛은 사라진다.
어두워야만 보이는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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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건을 알기에 미리 소형 손전등을 준비했다.
벽을 타고 내려오는 빛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 광량이 적은 손전등이었다.
손전등 덕분에 겨우 빛을 살린 사진이 신문에 게재되었다.
기사의 제목은 [‘우물 속 사나이’ 희망의 시심, 어두운 세상 빛이 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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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후, 우리 일행이 ‘열린 우물’로 나오고 관람객은 ‘닫힌 우물’로 들어갔다.
열린 우물에서 이 감독의 사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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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곳을 금세 나올 수 없었다.
이 감독이 관람객을 기다려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지나치며 툭 던진 약속도 그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었던 게다.
한 참을 기다려 그들의 핸드폰으로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바깥으로 쫓아 온 팬의 사인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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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차를 한 잔 하자며 나섰다.
커피를 마시며 취재 기자가 이 감독에게 질문을 했다.
“감독이 의도한 것과 관객이 만나는 접점의 간극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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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이 감독이 맘에 둔 말을 쏟아냈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바라봤던 것은 일본의 군국주의다. 그것 때문에 찍었다. 아름다운 청년의 마음만 볼 게 아니라 아픔의 본질을 봐야 한다. 시를 쓴 이유를 봐야 한다. 우리는 아직 친일, 반일 진영싸움에 빠져 있다. 가해자에 대해 왜 책임을 묻지 않는가? 일본이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지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일파가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도 일본이 반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를 사랑할 자격이 있나?”

뜨끔할 만큼 신랄했다. 또 부끄러웠다.
윤동주, 송몽규를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를 제대로 보라는 것,
그것이 영화를 통해 그가 세상에 던진 메시지였다.
윤동주시인의 흔적을 찾는 안내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온 이유,
아마도 우리에게 이 물음을 던지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우리가 시를 사랑할 자격이 있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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