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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노인 낙상 환자, 또 넘어지지 않게 다각적 치료해야 한다

중앙일보 2016.03.14 00:03 건강한 당신 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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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환자는 신체 능력이 일반 성인과 달라 몸 상태를 고려한 ‘슬로 메디신’ 개념이 중요하다. 사진은 일산백병원 가정의학과 양윤준 교수가 69세 환자에게 회복 능력을 키우는 운동을 지도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정한]


‘슬로 메디신(Slow Medicine)을 아십니까.’

[커버스토리] 노인 위한 ‘슬로 메디신’


슬로 시티, 슬로 푸드처럼 슬로 메디신이 조명을 받고 있다. 그동안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는 의료의 정석이었다.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새 검사법과 치료법 역시 슬로 메디신의 반대 개념인 패스트 메디신(Fast Medicine)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기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노인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 배경이다. 슬로 메디신은 노인 환자 특성을 고려해 무리한 치료는 피하고, 환자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패스트 메디신이 가져오는 오류를 최소한으로 줄여 삶의 질을 높이는 개념이다. 그러나 30분 대기, 3분 진료에 맞춰진 수가체계가 슬로 메디신 확산을 막고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낙상으로 척추 압박골절이 생긴 70대 이모 씨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실려왔다. 이씨는 관절질환을 전문으로 다루는 정형외과로 보내졌다. 영상검사 후 이씨는 척추 압박골절 치료에 해당하는 골시멘트 보강술을 받았다. 주저앉은 척추뼈에 골시멘트를 주입해 척추를 단단하게 고정하는 수술이다. 수술은 잘 됐고, 이씨는 다음 날 퇴원했다. 그렇다면 이씨가 받은 치료는 충분했을까. 질환이 온전히 치료된 만큼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 환자는 퇴원한 지 며칠 만에 사망했다. 일상생활 중 다시 넘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탓이다. 급성 뇌출혈로 응급실에 실려온 이씨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씨에 대한 접근방법이 조금 달랐으면 어떠했을까. 수술에서 끝나지 않고 ‘이 환자가 왜 넘어졌을까’ ‘다시 넘어지진 않을까’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말이다. 이씨가 평소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아플 때마다 소염진통제를 복용해 왔다는 것은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다. 소염진통제 중에는 혈액 응고를 막는 성분이 포함돼 있어 피가 잘 멈추지 않는다. 뇌출혈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윤종률 교수는 “요즘 의료는 분야가 너무 세분화돼 질환만 보고 접근하기 쉽다”며 “노인 환자는 수술 후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 다각적으로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령화 시대에 의료 개념 바꿔야

슬로 메디신은 ‘슬로 푸드’ ’슬로 시티’와 비슷한 맥락이다. 빨리 만들고 급하게 먹는 식문화(패스트푸드), 그리고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에서 벗어나 느림을 추구하는 취지의 운동이다. 건강한 삶의 가치가 담겨 있다. 일산백병원 가정의학과 양윤준 교수는 “슬로 메디신은 적극적인 검사 및 치료 중심의 의료에서 벗어나 현대의학이 간과할 수 있는 삶의 질 부분을 보완하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슬로 메디신의 진원지도 슬로 푸드나 슬로 시티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다. 2002년 이탈리아의 심장내과 의사인 알베르토 돌라라(Alberto Dolara)가 이탈리아 심장학회지에 ‘슬로 메디신으로의 초대(invitation to slow medicine)’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것이 시초다. 그는 기고문에서 빠른 검사와 진단, 치료로 이어지는 현대 의료를 패스트 푸드에 비유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노인 환자의 경우 심장혈관조영술, 심장스텐트 같은 적극적인 검사나 치료가 사망률을 높일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빠른 의료가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의 글은 누구보다 빠른 의료를 추구하는 심장내과 전문의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렀다.

모든 장기의 기능 떨어져 질병에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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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일반 성인과 달리 사소한 질환에도 신체 기능이 큰 폭으로 떨어져 의존적이 되고 늦게 회복되며, 회복 후에도 예전 기능을 찾지 못한다.

슬로 메디신은 노인을 성인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노인의 신체조건을 고려해 진료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1999년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저널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심부전 환자에게 ‘스피로노락톤(spironolactione)’이라는 약을 처방하면 숨찬 증상과 고혈압 치료 효과를 높이고 환자 사망률을 줄인다는 논문이었다. 스피로노락톤은 이뇨제의 하나로 심부전, 고혈압 치료에 사용한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 심부전 환자에게 이 약 처방이 늘었다. 그런데 정작 약을 복용한 심부전 환자의 신장 기능이 악화됐다. 심지어 전해질 이상으로 입원하는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기도 했다. 조사 결과, 당시 연구에 인용된 대상자는 평균연령이 65세였다. 그런데 실제 의사들이 처방한 환자의 평균연령은 78세로 밝혀졌다. 노인 환자의 조건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의료의 위험성을 경고한 사건이었다.

실제로 노인은 의학적으로 일반 성인과 아주 다르다. 30세 이후부터 각 기관의 기능은 매년 1%씩 저하한다. 근육량은 입원 환자의 경우 하루에 1%씩 줄어든다. 근육량은 면역력과 직결된다. 병에 걸리면 일반 성인보다 더 큰 손상을 입고, 회복되더라도 이전 수준의 신체기능을 유지하기 어렵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임재영 교수는 “노인 환자는 개인마다 약물반응과 치료효과가 다르다”며 “여러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치료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간의 크기는 물론 혈류량이 감소하면서 간 대사 능력이 떨어진다. 신장 사구체 여과율도 감소한다. 실제 신장의 손상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인 혈중 크레아티닌 농도는 젊은층에 비해 크게 낮다. 예컨대 같은 조건(1.5mg/dL)에서 77세 노인의 사구체 여과율은 30세의 27%에 불과하다. 사구체 여과율이 떨어지면 약물 민감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치료용으로 같은 양의 약을 먹어도 노인에게는 독이 되는 이유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선욱 교수는 “노인의 건강상태는 외줄을 타고 있는 것과 같다”며 “감염·약물·스트레스 등 모든 점에서 노인환자는 일반 환자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고 말했다.

치료 목표는 포괄적 평가 통한 기능 회복

이에 따라 국내에도 슬로 메디신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조금씩 확산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고대안암병원·경희대병원·동탄성심병원 등 일부 대학병원은 노인병센터·클리닉을 통해 노인전문 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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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몸이 노쇠해지면 만성질환이 늘어난다. 65세 이상 3명 중 1명은 세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게 된다.

노인 환자의 건강 상태를 다각적으로 분석해 개인에 맞는 치료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분당서울대병원은 만성질환 병력, 인지기능·우울증 여부, 일상생활 수행능력(ADL), 근육량, 복용 약물, 걷는 속도, 영양 상태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수술 전 포괄평가를 의무화해 수술 가능 여부를 결정하고, 복용 약을 우선순위에 따라 최소한으로 줄인다. 목표는 질병 치료가 아니라 신체의 기능 회복으로 잡는다. 김 교수는 “포괄평가를 통해 환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적의 치료를 한다”며 “이는 빠른 의료가 범할 수 있는 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슬로 메디신을 적용하기에 국내 병원의 경영환경은 녹록지 않다. 병상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입원일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노인 환자에 대한 배려는 언감생심이다. ‘3분 진료’라는 의료 풍토도 슬로 메디신의 발목을 잡는다. 김 교수는 “현행 의료시스템에서 슬로 메디신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며 “하지만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의료행태가 자리잡도록 법적인 제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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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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